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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마라의 죽음 _ 7
2. 유디트 _16
3. 에비앙 _ 49
4. 미미 _ 80
5. 사르다나팔의 죽음 _116

해설 자살의 윤리학(류보선, 문학평론가) _121
개정판 작가의 말 _166
저자 소개
저자 : 김영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이 있다. 여행에 관한 사유를 담은 산문 『여행의 이유』와 시칠리아 여행기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으로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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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기말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에게는 세 부류의 독자가 있다. 첫째는 ‘한때 김영하를 좋아했던’ 문학 독자다. 이들은 근대 한국문학의 정서적 토대였던 낭만주의와 센티멘털리즘을 단 한 권의 소설로 격파한 김영하를 보면서 짜릿한 대리만족을 경험했다. 소재, 주제, 인물, 문체의 모든 면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과격했다. 스피드, 섹스, 수어사이드로 압축되는 서사는 전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점철되었던 20세기에 종말을 고하는 신드롬이었다.
이 소설 속 나르시시즘과 에로티시즘은 ‘소비자본주의와 후기정보화사회’의 급류 속에서 파편화된 고독한 개인이 기댈 수 있는 위안의 빈곤을 드러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성별, 직업, 국적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정신적 ‘고아’들이다. 혈연이 폭력을 합리화하고 친밀한 유대가 착취를 정당화하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무연고자가 되는 편이 차라리 안전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의 연속성을 입증해줄 관계들이 부재할 때 사람은 누구든지 쉽게 자기 삶에 대한 충실성을 포기할 수 있다. 세기말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가공할 공허의 무게에 짓눌린 부피 없는 존재들에 관한 소설, 현대인의 냉소와 우울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소설이었다.

21세기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세간의 이목을 끌며 등장해 한동안 사랑을 받던 많은 작가와 작품이 그사이 잊혀갔다. 현대 한국소설은 십수 년의 시간도 견디지 못할 만큼 수명이 짧고, 또 어쩌면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에 대한 추구도 별로 없는 듯하다. 하지만 김영하는 여전히 건재하고, 덕분에 그에게 두번째 독자군이 생겼다.
다양한 경로를 거쳐 비교적 최근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이나 여행에세이를 먼저 접한 독자들이다. 이 독자 그룹에게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파격’과 ‘도발’의 대명사였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장르와 매체를 막론하고 온갖 자극적인 서사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이 정도면 클래식’인 것이다. 동시대적 공감대를 떠나온 퇴폐와 허무의 정서는 언뜻 연극적 제스처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독자는 늘 새로운 작가의 등장에 열광하지만, 작가에게는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쓸 수 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가의 신작은 언제나 자신의 전작들에 맞서는 분투다. 그리하여 김영하의 작품 목록이 성공적으로 업데이트될수록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점점 더 과거로 밀려난다. 하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다른 어떤 소설들보다도 철저히 1990년대적이었고, 따라서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의미한 ‘시대소설’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공공재로서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많은 비평이 이 소설의 이야기 요소들을 즉자적으로 받아들여 진지하게 분석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독창적인 측면은 ‘파괴’를 유희의 한 양식으로 다뤘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표류하고 질주하고 무너져가는 인물들과 달리, 일관되게 깔끔한 톤과 매너로 자신의 일을 착착 진행시켜나가는 인물, 즉 자살안내인이 하고 있는 일은 다름 아닌 ‘글쓰기’다. 자살안내인의 다른 직업은 예술가고, 그는 잉여로서의 삶이 부과하는 권태를 견디는 수단으로 소설을 택한 인물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김영하라는 신인 소설가가 장차 무수한 독자들을 유인해 자신이 구축한 픽션 세계로 이리저리 이끌고 다니리라는, 미혹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예고한 소설이었는지 모른다.
이번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김영하는 이런 얘기를 한다. “이 소설은 한 시대의 산물이고, 세상에 나가 독자를 만난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공공재처럼 느껴진다.” 김영하의 세번째 독자는 이 공공재의 일부분으로 기능한다. 작가와 독자는 소설을 매개로 이뤄지는 ‘파괴의 역할놀이’에서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공범자다. 작가의 궁극적 목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삶의 진부함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고객인 독자는 이 노련한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일상에 박제된 ‘가짜 나’를 멋지게 부숴버리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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