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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들어가는 글: 풍경이 철학이 될 때

1 행복의 섬
2 비극의 여행지
3 공통의 관심사
4 납골당
5 화산석의 음악
6 성좌(星座)
7 그림엽서
8 해골과 유령
9 죽은 것들에 주입된 의미
10 폭파로 얻은 삶의 공간
11 분화구 탐험
12 파시즘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13 망가진 것들의 보물창고
14 해변으로 밀려온 세이렌들
15 피의 기적
16 포시타노의 예언
17 나폴리 이후

에필로그

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마르틴 미텔마이어
Martin Mittelmeier, 쾰른대학교 독일어문학연구소 명예교수. 독일 유명 출판사에서 편집자 겸 기획 책임자로 오랜 기간 일했으며, 현재 쾰른에서 작가 및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 독일과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들을 지성사 또는 지식사회학적 측면에서 조명하는 저술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토마스 만의 캘리포니아 망명 기간을 다룬 최근작 『낙원의 향수』(2025)를 비롯하여 『다다: 세기의 이야기』(2016), 『자유와 어둠: ‘계몽의 변증법’은 어떻게 세기의 책이 되었나』(2021) 등을 썼다.

역자 : 최용주
사회학 연구자. 전남대, 서울대, 미국 켄터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정부 공식기구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조사1과 과장을 지냈다. 해외의 과거사 청산 사례와 광주항쟁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관련 도서도 여럿 번역했다. 그간 옮긴 책으로는 욘 엘스터의 『책장 덮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이행기 정의』를 비롯해 『5.18 푸른 눈의 증인』(폴 코트라이트), 『나의 이름은 임대운』(데이비드 돌린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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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비판이론 100년의 역사가 시작된 그곳,
1925년 나폴리의 여름 이야기
아도르노, 벤야민, 크라카우어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태양빛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석,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화산 분화구, 해변 마을을 배회하는 유령들… 아름다운 해변도시 나폴리의 풍광을 이루는 이 이미지들은 비판이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1925년 여름, 훗날 ‘비판이론’ 또는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불리게 될 네 명의 젊은 지식인이 나폴리에 모였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천재 철학도 테오도어 아도르노, 날카로운 독설가 발터 벤야민, 아도르노를 흠모한 예민한 문예비평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그리고 마르크스에 푹 빠진 사회분석가 알프레트 존-레텔이 그들이다.

이 책은 1925년 여름 3주간 그들이 나폴리에서 겪었던 황홀하고도 기이한 지적 환영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초기 비판이론의 핵심이 된 개념들, 이후에도 숱한 해석과 억측을 불러일으킨 ‘다공성’ ‘성좌’ ‘변증법적 이미지’ 등의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한다. 비판이론은 근대적 합리성이 초래한 폭력과 소외,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위선, 현대 사회의 자기분열적 증상을 폭로하면서 이후의 사회정치철학에서 사회, 대중문화, 권력의 메커니즘을 해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개념적 도구이자 그 자체로 진리의 구현체인 ‘다공성’과 ‘성좌’가 나폴리 바다와 분화구에서 건져낸 보화임을 밝혀낸다. 하나의 풍광이 어떻게 중요한 철학적 기획으로 전환되었는지 살펴봄으로써 난해하게만 여겨지던 이론의 아잇적 모습을 알게 해준다.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환상적인 필치로 지성사의 한 챕터를 복원한 독창적인 책이다.

2024년 『뉴요커』 ‘올해의 책’ 선정도서

‘비판이론’ 또는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도 불리는 사상적 흐름은 20세기 이래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 이론 또는 사회학 방법론의 하나가 되었다. 2024년은 이 이론이 탄생한 지 100주년 되는 해.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발터 벤야민 등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비판이론 그룹은 192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결성되었지만, 그들의 이론을 성숙시킨 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 1925년 여름 나폴리였다.

미국의 신뢰받는 뉴스 교양지 『뉴요커』는 ‘2024년 올해의 책’의 하나로 이 책을 추천하면서, “나폴리의 태양 아래 합성된 비타민 D를 우리에게 보충해주는 책”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파시즘의 전체성,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개인들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현대성의 정체를 밝혀낸” 비판이론의 틀이 다름 아닌 “나폴리 바다와 분화구에서” 건져낸 것이라고 평함으로써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한다. 저자는 “풍경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이 책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밝힌다.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이론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미적 이미지와 풍경을 통해 더 분명히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획을 통해 20세기 초의 젊은 천재적 지성 네 명이 나폴리 여름의 환상적인 풍광을 어떻게 철학적 주제로 바꾸어갔는지 읽을 수 있다.

나폴리 바다와 화산이 빚어낸 비판 이론가들의 사유

저자가 나폴리의 지형과 기후 안에서 다시 복원하려는 것은 ‘다공성’과 ‘성좌’ 그리고 ‘변증법적 이미지’와 같은 개념들이다. ‘다공성’과 ‘성좌’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발터 벤야민이 공유하던 개념이자 협업의 결과물이고, ‘변증법적 상상력’(마틴 제이)은 아도르노 사상에 붙은 명예로운 호칭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없이 시도된 해설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들의 정체는 아직도 모호한 느낌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놀랍게도 초기 비판이론가들이 100년 전 나폴리에 흔히 널린 물질적 소재, 풍경, 인물, 그리고 신화와 유령들에서 이 개념들을 합성했음을 밝혀내고,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해설한다.

주류 해석에서 자주 간과되곤 하지만,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다공성’(porosity) 또는 ‘투과성’(permeability) 개념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생활양식을 포착하는 주요 개념이자 그것의 극복으로 나아가는 실마리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서 무엇이든 침투할 수 있고 어디에든 쓸 수 있는 다공질의 화산석은 모든 것의 개성을 문질러버리고 무엇과도 교환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 원리를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그러나 나폴리의 다공성은 그런 사회의 무차별성과 전체성을 깨뜨리는 소재이기도 하다. 채석장이 납골당으로 바뀌고 그곳의 해골이 장식물이 되며 나폴리의 무수한 건물로 탈바꿈하는 나폴리의 삶은 공동체적 활력과 역사성을 되찾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상상은 이처럼 사회변혁의 원리로 탈바꿈한다.

발원지에서 캐내는 ‘성좌’ ‘다공성’ ‘변증법적 상상력’의 진정한 의미

화산석의 구멍들, 또는 베수비오 산 분화구의 텅 빈 구멍을 현대성의 발원지로 보는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사유는 또한 성좌(constellation) 개념으로도 이어진다. ‘성좌’란 무의미하게 흩어진 별처럼 파편화되고 분산된 사실이 스스로 연관을 맺음으로써 하나의 별자리로서 그 진리 내용을 드러낸다는 비유적 개념이다.

저자 미텔마이어는 화산 분화구 앞에서 떠오른 아도르노의 상상력을 재구성함으로써 ‘성좌’ 개념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도구이자 진리가 되었는지 해설한다. 아도르노는 분화구에서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악마적 형상이야말로 부르주아 근대인이 마주치는 자신의 쌍둥이 자아(도플갱어)로, 근대적 계몽이 주장해온 합리성은 이 악마적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각을 통해 해체되고(『계몽의 변증법』), 화산 둘레의 끝없는 배회를 통해 새로운 성좌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슈베르트 음악, 망가진 기계, 수족관, 오디세우스, 홀로코스트…

다소 환상적으로 써내려간 이 책의 서술은 ‘성좌’ 개념이 그러하듯이 분산된 사실들에서 하나의 일관된 진리를 짜맞춰가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알프레트 존-레텔이 관찰한 나폴리의 망가진 기계와 수리 방식, 아도르노와 크라카우어가 방문했던 수족관의 풍경, 슈베르트 음악, 길버트 클라벨의 기이한 고성 재건축 등이 씨줄 날줄로 엮이어, 비판이론의 초기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하나의 큰 퍼즐처럼 짜맞춰간다.

비판이론가들의 초기 관심은 근대적 이성이 어떻게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폭력을 초래했는지, 부르주아 사회와 대중문화에 배인 상품적 논리가 어떻게 인간성의 소외와 비참을 낳았는지,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적 이상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였다. 이 책의 목적은 아도르노, 벤야민, 크라카우어, 존-레텔이 나폴리 곳곳에서 마주친 풍경에서 이런 문제의식들이 태동하였음을 밝히는 데 있다. 그것들은 또한 나폴리 풍경에서만 건져낸 것이 아니라, 이들 상호간의 치열한 ‘철학적 전투’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비판이론’의 공통분모를 뽑아낸다. 아도르노가 싸들고 온 악보들,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 원고, 크라카우어가 읽던 한 무더기의 탐정소설들, 존-레텔이 파고든 마르크스 『자본』 전질이 나폴리에서 서로 결합하였고, 이들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며 ‘비판이론’이라는 큰 그림의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아도르노와 크라카우어 사이의 은밀한 관계, 벤야민의 애정 행각, 존-레텔의 편집광적 면모 등 개인사적 비밀들을 하나하나 들추어가는 데서도 독자의 흥미를 자아낸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이 책의 면모를 “독창적이고도 은밀하다”고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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