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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빈자(貧者)의 푸딩, 부자(富者)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빌리 버드

역자 해설 ― 마음의 공명(共鳴) 울리기
허먼 멜빌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에드거 앨런 포, 너새니얼 호손과 더불어 미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소설가이자 시인. 1819년 미국 뉴욕에서 스코틀랜드계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는 외가의 도움으로 부유하게 살았으나 열 살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은행, 모피 상점, 농장 일 등을 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컬럼비아 문법 예비 학교, 올버니 아카데미 등을 다녔으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측량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스무 살에 처음으로 상선에서 선원으로 일했고, 이러한 항해 경험을 담은 『타이피』(1846)와 『오무』(1847)를 발표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문학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 글쓰기에 전념했으나 연이어 발표한 작품들의 판매가 부진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포경선에 승선했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향유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모비 딕』(1851)도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후 마지막 소설 『사기꾼』(1857)마저 혹평을 받자, 시인으로 전향해 『전쟁의 장면들, 그리고 전쟁의 여러 모습』(1866), 『클래럴』(1876), 『존 마와 다른 선원들』(1888)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866년부터 19년 동안 뉴욕항에서 세관 부검사관으로 일했다. 1891년 마지막 시집 『트올리언』을 발표하고 4개월 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멜빌은 자본주의의 물결이 밀려들어 오는 현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짚어 내며, 바다에서의 경험과 모험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비록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의 탄생 100주년인 1919년을 기점으로 작품들이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허먼 멜빌의 전기를 준비하던 레이먼드 위버가 「빌리 버드」를 발견해 1924년에 출간한 이후, 생전에 약 3천 부밖에 팔리지 않았던 『모비 딕』 또한 위대한 미국 소설의 하나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또한 시집 『클래럴』을 통해 휘트먼과 디킨슨에 이어 19세기 미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역자 : 윤희기
영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문학, 철학, 종교 등에 관심이 많아 그 분야의 글을 우리말로 소개해 왔다. 아울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글로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비평과 이데올로기』,『의심스러운 싸움』,『소설』,『소유』,『무의식에 관하여』,『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동행』,『폐허의 도시』,『예수의 생애』,『단테』,『욕망의 발견』,『정글북』,『위대한 개츠비』,『막스 티볼리의 고백』,『자기계발 수업』,『앨리스 B. 토클러스의 자서전』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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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와
풍부한 상징성을 내포한 허먼 멜빌의 대표 중단편 소설 다섯 편

「절대로 그 어떤 것도 발명하려 들지 말거라 ─ 행복 말고는 그 어떤 것도.」― 190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말년에 쓰기 시작해 미완성으로 남긴「빌리 버드」를 제외하고 모두 1851년에 나온 『모비딕』 실패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멜빌이 생계를 위해 여러 잡지사에 글을 투고하던 1853년에서 1854년 사이에 쓴 작품이다. 「필경사 바틀비」,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한 실패」 모두 잡지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당시 멜빌의 사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외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궁핍한 삶을 이어 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더 예리하게 단련된 시각으로 당시 사회의 내재된 모순과 병폐, 그리고 그릇된 인식을 보다 선명하게 바라본 결과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빌리 버드」 역시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르냐는 문제보다 사회의 질서를 중시하는 전함(戰艦)이라는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선원의 이야기를 통해, 문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문제, 즉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인 인간이 겪는 비극적 운명, 순수 세계와 경험 세계의 대립이라는 현대 사회의 딜레마를 보여 준다. 이처럼 다섯 편의 작품 모두 문명의 발전 속에 드리운 그늘과 어둠이 무엇인지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가운데, 먹고사는 일을 수월하게 해줄 문명이 오히려 많은 사람을 더 가난하고 굶주리게 만들며 사회 밖으로 떠미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멜빌은 고통의 시기를 견뎌 오면서,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 들어오는 현실을 쓸쓸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나름의 비극적 인식에 도달한 듯하다. 「행복한 실패」에서 실패를 통해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깨달음을 얻은 늙은 삼촌의 입을 통해 멜빌은 메시지를 전한다.

「절대로 그 어떤 것도 발명하려 들지 말거라 ─ 행복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필경사 바틀비」. 물질주의와 경쟁이 만연한 월 스트리트에서
인간의 고립과 소외를 그리다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 30여 년간 일해온 변호사의 사무실에 바틀비가 새로운 필경사로 들어온다. 법률 문서를 그대로 베끼는 필경사에게 필사본 대조 작업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사흘째 되던 날, 변호사가 함께 필사본 대조 작업을 하자고 말하자, 바틀비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업무인 필사마저 거부하기 시작하는데…….

노동, 인간 소외 등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 등을 주제로 한 이 소설에서, 멜빌은 현실 세계의 개인적 투쟁과 문학 세계에 대한 환멸을 바틀비라는 독특하고 예외적인 인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존재의 심연을 꿰뚫는 절대적인 부정성에 관한 강렬한 질문을 남긴다.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
성별에 따른 사회적 격차와 일에 매몰된 인간성 상실 문제를 날카롭게 제시한다

변호사나 법학원 학생, 즉 최고 엘리트만 회원이 될 수 있는 템플러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화자를 통해 총각들의 저녁 모임을 소개한다. 런던의 독신자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만 이루어진 회원들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건물에서 최고급 식사를 하고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눈다. 가히 『총각들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젊은 여자들이 고통과 슬픔을 안고 처참하게 살아간다. 바위들이 장벽처럼 둘러싼 지형과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골짜기 아래, 『악마의 지하 감옥』이라 불리는 춥고 음침한 분지에 있는 제지 공장에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연약한 처녀들이 핏기 하나 없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고통을 종이에 새겨 넣고 있다. 한마디로 『처녀들의 지옥』이다.

1849년 런던 여행에서 접한 독신 엘리트 남성들의 저녁 식사, 1851년 겨울 뉴잉글랜드의 제지 공장으로 종이를 사러 가서 겪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에서 멜빌은 총각과 처녀, 영국과 미국, 안락함과 고통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두 그룹의 삶을 날카롭게 대비한다.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가난과 자선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태도를 대조하며 그려 낸 신랄한 모순

3월에 뒤늦은 눈이 내리자 시인인 친구가 주인공에게, 이 눈이 가난한 농부에게는 『빈자의 거름』이 되고, 『빈자의 안약』으로 사용되며, 『빈자의 고약』으로도 활용된다면서, 『빈자의 푸딩』을 한번 맛보라고 제안한다. 그리하여 찾아간 산속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주인 여자는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과 주인공에게 점심으로 절인 돼지고기와 호밀 빵, 푸딩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푸딩은 곰팡 내가 나고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는데…….

이 작품은 가난과 자선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태도를 대조하며 짧은 호흡 속에 사회적 모순을 신랄하고 탁월하게 그려 낸다.

「행복한 실패The Happy Failure」
망상에 빠진 발명가의 열망과 아이러니를 그려 낸 작품

늙은 삼촌이 흑인 하인 요피와 소년을 배에 태우고 비밀스러운 실험을 하기 위해 나선다. 삼촌의 목표는 유체 정역학을 이용한 유압 장치를 발명해 늪과 습지의 물을 빠른 속도로 빼내고 비옥한 영토를 만드는 것이다. 희망에 부푼 삼촌은 함께 가기 싫다는 소년에게 불멸의 명성을 같이 나누자며 꾀기 시작한다. 멜빌은 이 작품에서 비현실적인 계획을 실현하려는 인물의 열망과 망상을 독특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빌리 버드Billy Budd, Sailor」
『모비 딕』에 이어 고전적인 두 번째 작품으로 평가받는 허먼 멜빌의 마지막 작품

18세기 마지막 10년이 끝나갈 무렵, 영국 상선에서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나 『멋쟁이 배꾼』으로 불리던 빌리 버드는 어느 날 해군으로 징집되어 74문의 포로 무장한 전함 『인도미터블』호에 승선한다. 잘생긴 외모에 온화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녀 모든 사람의 호감을 산다. 그러나 그런 빌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선임 위병 부사관 존 클래거트는, 빌리가 강제 징병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모의하게 되는데…….

멜빌이 생애 마지막에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이 작품은 묻혀 있다가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레이먼드 위버가 발견해 1924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빌리 버드」는 사회적 권위와 개인의 자유, 인간 정의와 추상적 선 사이의 비극적 충돌을 그려 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필경사 바틀비」BBC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00선

옮긴이의 한마디

오늘날 현대 사회를 진단하며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피로사회, 위험 사회, 분노 사회 등으로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가 지닌 내재적 모순과 폐단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그로 인해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여전히 먹고사는 일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인 사람이 많다.

먹고사는 일의 어려움은 예술가도 피해 갈 수 없다. 『모비 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던 멜빌의 생애를 보면, 그가 작품 활동을 하든 다른 직업에 종사하든 내내 먹고사는 문제가 머릿속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생계에 보탬을 주고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썼지만 독자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고, 평단의 평가가 좋은 경우에도 일반 독자들의 판단은 다른 듯 판매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멜빌은 현실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가운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理想)의 구도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머리는 각박한 세상을 치유하는, 모두가 어울려 사는 공동체로 향하는 험난한 길을 닦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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