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여전히 쓰이고 있는 어느 시절에 관하여
테이블 끝에 앉은 아이는 누나가 가위로 잘라준 고기를 한 점씩 받아먹고 있었다. 투정을 하거나 보채지 않았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나를 오래 바라봤다. 아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았다.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우린 곧 가족이 된다. 그 사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_56쪽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뒤 ‘나’의 엄마와 누나는 서로를 탓하고 상처를 입히며 몇 년간 인연을 끊고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둘에게 갑작스레 연락해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며 임신까지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누나가 자신의 방식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준’과의 관계를 되짚기 시작한다. ‘준’과 함께 살며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이이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둘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 변화를 꿈꾸는 ‘준’과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고자 노력하며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엇나가기 시작한 마음은 좀처럼 돌이키기 어렵다. ‘나’는 원가족과 누나가 새로 꾸려나가고 있는 가족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가족의 형태를 곱씹으며 과연 스스로가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가 속한, 속하고 싶었던, 막 꾸려지고 있는, 꾸려나가고 싶은, 이 네 가지 형태의 가정은 ‘나’의 욕망과 뒤엉키며 ‘나’와 읽는 이 모두에게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지금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었을 여러 가능성을 가정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을 꾸린다는 것과 누군가의 가족으로 있어준다는 것, 그 보편적인 어려움을 섬세하게 되짚는다.
“그 누구의 잘못도, 과오도 아닌 어떤 시절의 도착지.”
나는 그를 잊고 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를 지우고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나의 삶은 그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다시 말해 내 삶에서 어떻게 그 기억을 덜어낼 수 있을지 혼자 분투하던 시간이었다. 그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내게는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공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_159쪽
소설은 ‘나’의 과거와 현재, 이 두 시절을 포개어놓으며 어긋나고 빗나가는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그 빗나가는 지점들에 이유를 묻고 때론 달라질 수도 있었을 모습을 가정하며 화자는 외로운 길을 향해 걸어간다. 이와 같은 이해의 여정은 과거를 되짚으며 현실을 받아들여보려는 ‘나’의 슬픈 노력이자, 민병훈이 소설쓰기로 보여주는 작가로서의 서사적·미학적 시도다. 그 모든 물음을 천천히 곱씹다 마침내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조우하는 순간, ‘나’는 이 모든 빗나감에는 이유를 따져 물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민병훈이 그려내는 두 시절의 흐릿한 실루엣은 결말부로 향하며 느리게 그러나 확실히 각자의 형태를 갖게 된다. 이처럼 기억을 헤집어 이유와 방법을 고뇌하다 “여기에 있”기를 택하는 ‘나’의 태도는, 이 지난한 과정이 결국 “죽음과 이별을 통과하며 돌아보는 방식으로 삶과 사랑을 가꾸”(최진영)기 위함이었음을 아프게 보여주며 반짝이는 여운을 남긴다. 동시에 『어떤 가정』은 애틋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던 어느 시절의 기억을 소설로써 묶어 떠나보내려는 강인한 노력의 산물이자, 읽는 이 역시 “문득 잊고 지낸 기억을 반갑게 떠올”(‘작가의 말’에서)리며 마침내 인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응원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변화를 발견할 때마다 반가웠고 의지를 확인할 때마다 놀라웠다”는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이 비단 민병훈의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 또한 소설을 통해 자신의 희망을 마주하고 스스로에게도 조심스레 건네볼 다정한 인사가 되기를 바란다.
추천사
사랑의 발생이 그렇듯 이별에도 이유는 없다. 이별을 예감한다고 막을 도리는 없다. 예감한 이별이라고 예상치 못한 이별보다 덜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도 없다. 죽음과 이별에 대하여, 민병훈은 소설을 쓰며 여러 가정을 해본다. 결말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의미나 이유를 찾기 위해서도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비로소 미래를 묻고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정』은 죽음과 이별을 통과하며 돌아보는 방식으로 삶과 사랑을 가꾸는 소설이다. 두 팔 벌려 삶을 껴안을 때 죽음은 온전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까지 받아들일 때 사랑은 완전해진다. 그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수행한 뒤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의 진심어린 이야기가 여기 있다.
- 최진영 (작가, 소설가)
가족의 자살로 상징되는 해독 불가한 고통의 피해자는 민병훈의 문학적 페르소나다. 이 가면을 통해 표현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 앞에 선 자의 결벽증적 태도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의 암호를 풀지 않고서는 다가올 어떤 삶도 믿지 못하는 이 ‘고통 근본주의자’의 병변은 과거에 시달리는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과거에 트라우마로서의 가정이 있다면 그의 현재엔 기대와 의심으로서의 가정이 있다. 그 사이에서 겪는 방황이 가리키는바, 작가 민병훈의 문학적 주제는 독립이다. 시간으로부터, 관계로부터. 오래 혼잣말하던 민병훈이 기나긴 독백의 터널을 지나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다. 이 소설은 그가 터널 속에서 쓴 최후의 소설이자 세상 속에서 쓴 최초의 소설이다. 정직한 불안과 적나라한 불화의 언어로 쓴 고백록이자 소설을 쓰듯 인생을 쓰고 인생을 살듯 소설을 사는 독자적 방법론으로 완성한 비망록이다. 변화를 발견할 때마다 반가웠고 의지를 확인할 때마다 놀라웠다. 작가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작가와의 첫 만남보다 더 가슴 뛰는 사건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