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세 번 고배를 마신 무관의 제왕, 드디어 등극하다
“2011년은 필립 로스와 줄리언 반스의 해다.”
_클레어 아미스테드(〈가디언〉 지 문학에디터)
줄리언 반스의 수상은 작가 자신에게도 남다른 의미이다. 그는 28년 전인 1984년에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후보에 올랐으나, 아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 라크』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고, 1998년의 『잉글랜드, 잉글랜드』로 두 번째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 때문에 고배를 마셨다. 『아서와 조지』로 세 번째 후보에 오른 2005년에는 존 밴빌의 『그래서 신들은 바다로 갔다』와 경합하였으나, 이때도 실패로 돌아갔다. 가디언 지의 클레어 아미스테드는 ‘내가 보기에 (반스가 세번째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그날의 시상식장에서 줄리언 반스만큼 긴장한 사람은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유럽의 주요 문학상과 훈장 등을 휩쓸다시피 한,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면서도 정작 영문학을 대표하는 상에서만은 무관의 제왕이었던 작가 자신도 그간 쓰디쓴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수상하기 전, 부커상을 ‘호화로운 빙고게임’이라 비꼬기도 했다. 그리고 드디어 네 번째 후보에 올라 수상하던 날, 그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 후보에 오르는 것이 네 번째였기 때문에 사실 한시름 놓았다. 무덤에 들어간 뒤에 베릴 상" 을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부커상 후보에 다섯 번 올랐으나 결국 수상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 영국 소설가 베릴 베인브리지를 기념하여 제정한 2011년도 특별상.
또한 그는 수상 연설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노벨문학상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위대한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왜 당신이 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으냐는 질문에 보르헤스는 대답하곤 했다. ‘세상 어딘가에 나의 수상을 막기 위해 결성된 가내수공업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간간이 약간의 망상이 도질 때마다 나 역시 어딘가에 그 비슷한 사악한 조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었다.”
당신이 예감했으나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야기의 결말이 다가온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_본문 11쪽
소설은 1960년대, 고등학교에서 만난 네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인칭 화자인 주인공 토니 웹스터와 그의 패거리 친구 앨릭스, 콜린, 그리고 총명하며 지적인 전학생 에이드리언 핀. 세 소년은 그를 선망하고, 학교의 모든 교사들은 낭중지추와도 같은 에이드리언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독특한 시각을 눈여겨보고 그를 아낀다.
토니는 브리스틀 대학에, 에이드리언은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에 진학한다. 각종 소요와 문화운동, 성적해방으로 들썩이던 60년대 말. 그러나 아직 그 기운은 당시 대학생이던 이들 사이에까지 미치지 못했다. 데이트는 여전히 구식이었고, 여자친구는 결혼과 미래가 약속되기 전까지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된 토니는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계급적 격차를 느끼고 위축된다. 그리고 베로니카의 어머니로부터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걸 내주지 마”라는 묘한 암시 섞인 충고를 듣는다.
성적 불만과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토니와 베로니카는 결국 헤어지고, 어느 날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는 에이드리언의 편지 한 통이 토니에게 날아온다. 토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용인한다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보내고 그 일을 잊었다고 믿지만, 사실 편지는 그 한 통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으로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뒤, 토니는 친구로부터 에이드리언이 동맥을 그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육십대가 된 토니 앞으로 난데없이 한 통의 유언장이 날아든다.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 부인이 그에게 오백 파운드의 돈과 함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유품으로 남긴 것이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의 일기는 현재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고, 그녀는 그것을 토니에게 내주려 하지 않는다. 대체 왜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포드 부인이 갖게 되었으며, 그녀는 왜 그것을 토니에게 남긴 것일까? 그리고 베로니카가 ‘피 묻은 돈’이라 지칭한 오백 파운드의 의미는?
토니는 이 모든 걸 파헤치기 위해 베로니카를 만나러 나선다. 그리고 그는 40여 년 전에 그가 보냈던 또다른 편지 한 통과, 그것이 불러온 거대한 비극과 마주치게 된다.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으로 이끈다…
기억과 윤리의 스릴러!
당신은 누구인가? 만약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그런 적이 없다면?_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인디펜던트〉, 〈타임스〉 등 영미권 주요 매체들과 평론가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소개하면서 기억과 윤리의 ‘심리 스릴러’라는 말을 썼다. 원서로 150페이지 남짓한 이 길지 않은 소설이 독자를 몰아치는 힘과 서스펜스, 섬세하고 정교한 구성력 때문이다. 또한 결말에 다다르면, 아마도 『오이디푸스 왕』 이래로 가장 지독한 반전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장르소설의 ‘누가 범인이냐’ 정도가 아니라 존재의 근간과 살아온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무게를 지닌.
또한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은 소설적 완성도와 비극적 테마가 주는 무게로 따질 때, 반스의 이 최신작이 비슷한 길이의 노벨라(경장편)인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 필적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1인칭 화자의 시점에 의존하여 인간의 기억과 시점의 왜곡을 탐색하고, 마침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는 점에서다.
주인공인 토니 웹스터는 문학사史상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주인공 중 하나다. 그는 마음에 스친 불쾌한 인상 하나 때문에, 혹은 돌연히 마음에 깃든 한 점 의심의 그림자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곡해하고, 그들의 뜻을 왜곡하여 독자에게 전한다. 그로 인해 소설의 절반쯤 지나게 되면, 읽는 이는 토니 웹스터의 시각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작품 행간에 숨겨진 뜻을 독자적이고 객관적인 시점으로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그의 운명을 생각할 때, 이토록 단점이 많은, 그러나 우리 자신과 닮은 ‘대부분의 인생’을 동정하고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테마인 ‘왜곡된 기억’은 줄리언 반스가 논픽션인 『두려워할 것은 없다』에서 철학자인 자신의 형 조너선 반스와의 쉽지 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교사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이 (작가가 만들어낸 소설 속 허구의 역사학자인)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대답하는 지점에서 작가의 성찰은 시작된다. 우리가 인류의 진실한 도정이라 믿는 역사는 사실 역사학자 개인의 해석이 담긴 ‘허구’에 가깝다는 테마는 반스의 다른 여러 전작에서도 거듭되어왔다. 이는 대문자 역사뿐 아니라, 우리 개인의 이야기가 집성된 개인사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을 왜곡하는 만큼, 우리의 운명은 기억에 의해 잔혹하게 농락당한다.
강한 인간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잔혹한 이야기
오이디푸스 왕 이래로 가장 지독한 반전
나이 듦과 기억, 그리고 회한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사유한다._가디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 우리말로는 ‘결말의 느낌’ ‘결말의 예감’쯤 될 것이다. 끝까지 ‘감을 잡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소설의 두 가지 제목은 사뭇 반어적이다. 하지만 이 반어는 냉소가 아니라 인간적 공감에 바쳐진 것이다.
이 책은 한평생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없을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 비굴하게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주인공 토니는 젊은 시절 교사의 질문에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답하나, 노년에 이르면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고 번복한다. 줄리언 반스는 허구를 통해 이렇듯 평범하고 어리석어 발언권을 얻지 못했던 ‘대부분의 인생’, 즉 우리의 삶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인간적인 위트와 깊은 회한을 통해, 궁극의 휴머니즘으로 그것을 감싸안는다. 비수처럼 아픈 성찰과 자조가 전하는 묘한 치유력에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미래를 납득하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이 부커상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을 단순에 종식시킨 것도 바로 그런 점에서일 것이다. 길이나 가독성의 문제가 문학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기준이 될 수 없듯, 반드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으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독성’이라는 말로 문단을 떠들썩하게 했던 맨부커상 심사위원장 스텔라 리밍턴은 맨부커상 시상식장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영문학의 고전이 될 것이다. 두 번 세 번 거듭해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깊이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