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기획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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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특유의 원시 감각으로 빚어, 독자적인 색채미학을 낳은 화가를 알고 있는가. 해바라기처럼 그 자신도 열광적으로 빛과 놀아난, 진정 유희적인 화가를 아시는가. ‘유대인 화가’라고 불리기보다는 ‘세계 시민의 화가’로 불리길 강력히 원했던 사람을? 그가 바로 마르크 샤갈이다. 일찍이 피카소는 샤갈을 두고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다. 르누아르 이래 샤갈처럼 빛을 잘 이해한 화가는 없다.”고 극찬했다. 샤갈은 결코 주류에 편입되지 않고...
◆기획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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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특유의 원시 감각으로 빚어, 독자적인 색채미학을 낳은 화가를 알고 있는가. 해바라기처럼 그 자신도 열광적으로 빛과 놀아난, 진정 유희적인 화가를 아시는가. ‘유대인 화가’라고 불리기보다는 ‘세계 시민의 화가’로 불리길 강력히 원했던 사람을? 그가 바로 마르크 샤갈이다. 일찍이 피카소는 샤갈을 두고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다. 르누아르 이래 샤갈처럼 빛을 잘 이해한 화가는 없다.”고 극찬했다. 샤갈은 결코 주류에 편입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범우주적인 낙원을 일군 위대한 화가다. 그는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했지만 몇몇 시인들을 제외하곤 한 번도 그들과 진심으로 동화되지 못했다.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인 마티스나 피카소와도 그는 깊게 교감하지 못했다. 이 외로운 사내가 빛에 몰두하고 그 빛에 영혼을 바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왜 그는 외로워야 했을까. 왜 그는 종국에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을까. 고향 비테프스크에서 더 큰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보다 더 큰 도시 파리로 수없이 적을 옮겨 그림작업을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유도했던 도시는 비테프스크였는데 과연 이 초라한 도시의 무엇이, 샤갈을 그토록 흥분시켰을까. 또한 일생동안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하시디즘 유대교란 정확히 어떤 것인가.
「평단아트」는 ‘샤갈’이라는 한 예술가를 통하여, 당대의 시대상황과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고 이 예술가에게 미쳤던 사상과 이념을 고찰하기 위해 [샤갈, 내 영혼의 빛깔과 시]를 기획하였다. ‘어머니가 말하는 샤갈’, ‘샤갈이 말하는 샤갈’, ‘평론가가 말하는 샤갈’로 내용을 분류하여 샤갈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끔 유도했다. 또 본 저서는 샤갈이 당대의 유명 인사들인 아폴리네르, 말로, 들로네, 예세닌, 상드라르, 마야코프스키, 고리키 등과 관계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여유롭게 좇아가면서 샤갈만의 예민하고 소극적인 사회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샤갈이 주류 유파인 큐비즘에 넌더리를 내며 괴로워할 때, 상드라르가 “입체주의 곁에서도 넌 조용히 네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야? 라고 샤갈을 위로한 대목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샤갈이 러시아 사회주의자였던 고리키를 찾아가, 선생직을 부탁했을 때 이 민중작가가 단호히 거절한 장면도 묘사되어 있어 책의 내용을 풍성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한 나약한 유대 소년이 어떻게 세계적인 예술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하고, 18세기 러시아 목판화가 어떻게 샤갈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 희귀한 자료들을 수록하여 샤갈 그림과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자, 이제 샤갈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본질적인 기원을 찾아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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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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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 예술의 원초적인 영감은 고향 비테프스크와 하시디즘 유대교!
샤갈은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나의 부모님과 나의 아내와 나의 고향 마을에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그가 사랑한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당당히 위치한 이 행운의 도시 비테프스크는 과연 어떤 곳인가? 제1부 ‘어머니가 말하는 샤갈’에서는, 고향 비테프스크와 하시디즘 유대교라는 신비유대교가 어떻게 샤갈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한다. 예컨대 러시아의 유대인거주지역인 비테프스크는 어린 샤갈에게 대단히 원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샤갈이 “슬프고도 즐거운 나의 도시여!”라고 읊었던 비테프스크는, 지붕 위로 올라가 바이올린을 켜는 외할아버지와 푸줏간, 마을의 집달리, 행상인, 담장 앞의 돼지들이 있는 풍경으로서 샤갈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다. 특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수없이 봐왔던 도살된 암소들은 샤갈에게 슬픔과 죄의식을 안겨준다. 또한 잔인하게 암소들을 도살해놓고는, 그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샤갈에게 기이한 인상을 남긴다. [가죽을 벗긴 소]는 이런 어릴 적의 경험과 의문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이것은 샤갈이 네덜란드의 거장 렘브란트의 동명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그린 작품인데, 샤갈이 얼마나 렘브란트를 숭배했는지 책에 그 내용도 곁들어 있어 풍성하다. 예를 들어 샤갈은 자신의 1915년작 [밝은 적색의 유대인]에 렘브란트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써넣기까지 한다! 샤갈은 수탉 같은 동물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캔버스에 표현하곤 했는데 이는, 그가 하시디즘 유대교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제도권 종교라 할 수 있는 정통유대교에게서 노골적인 배척을 받던 하시디즘 유대교는 크고 작은 모든 사물과 선하고 악한 모든 사람에게서 '신성한' 불꽃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서민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한 이 종교가 샤갈을 암소와 당나귀, 수탉 같은 동물들에게로 인도한 것은 당연하다. 그가 생명에 가까운 색을 동물들에게 입히고 급기야, 이들에게 신성을 부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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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예술세계의 중심에는 벨라가 있었다. 버지니아(딸 이다의 친구), 종착역 바바와의 정열적인 사랑! 그리고 샤갈의 유일한 딸 이다의 내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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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동안 그녀의 사랑은 나의 예술을 채워왔다.”
제2부 ‘샤갈이 말하는 샤갈’에서는, 샤갈에게서 영혼을 빼앗은 뮤즈, 벨라와 그녀가 죽은 뒤 샤갈의 내조를 맡게 되는 두 여인 버지니아, 바바를 비중있게 다룬다. 언젠가 샤갈은 “내 약혼녀는 라파엘로의 성모보다도 순결하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의사의 딸과 사귀던 중 벨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녀는 샤갈의 많은 초상화에서 연인으로, 아내로, 산모로 등장하여 샤갈 작품의 아름다움에 빛을 더한다. 샤갈의 1917년작 [흰 깃옷을 입은 벨라]를 보면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서 있는 벨라의 아래에 샤갈과 딸 이다가 조그맣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샤갈의 중심에 벨라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비테프스크의 누드]에서 그림 위쪽에 솟아 있는 벨라는 다른 사물보다 유독 큰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고 [땅거미 질 무렵]에서는 화가 샤갈이 팔레트를 손에 들고 사랑하는 벨라에게 밀착되어, 결코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벨라는 샤갈에게 “유대 예술의 뮤즈”였다. 그런 벨라가 갑작스레 죽자 샤갈은 극도의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그를 위로한 여인은 딸 이다의 친구 버지니아였다. 책에서는 버지니아가 샤갈의 가정부로 들어가서 어떻게 샤갈을 위로하고 마침내 은밀한 부부 사이가 되는지, 아들 데이비드를 낳았지만 왜 버지니아는 가난한 벨기에 사진작가와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린다. [꽃다발과 하늘을 나는 연인들]을 보면 샤갈과 버지니아의 초기 열정적인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샤갈의 마지막 사랑인 발렌티나 브로드스키. “내 아버지가 청어를 운반하고 있을 때 키예프의 브로드스키 가문은 틴토레토의 작품을 사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샤갈이 이렇게 말했듯 그의 마지막 연인은 좋은 가문의 여자였고 샤갈은 명상적인 그녀를 ‘바바’라고 불렀다. 벨라를 제외한 샤갈의 두 명의 여자는 모두 아버지의 전적인 내조자 딸 이다의 소개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실상 이다는 벨라의 후임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1934년 내 딸, 이다는 18세의 나이로 그녀보다 몇 살 연상인 변호사와 결혼했다. 그러나 왠지 내 마음은 기쁘지만은 않았다.” 샤갈의 이 말은 왠지 의미심장하고, 이다가 샤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여러 가지 해석을 낳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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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찰리 채플린, 아폴리네르, 상드라르, 말로, 예세닌, 고골리는 샤갈에게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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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렇듯 샤갈도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과 교우를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