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결국 아이가 급격히 성장한 것은 할머니의 넓은 치마폭으로 상징된 자기 수용이 연결고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물살처럼 무의식의 힘이 의식을 끌고 가는 꿈의 연결을 알게 된 놀라운 순간이었다. 빠르게 성장한 아이에게 그동안의 기억과 공간을 돌려주는 장면은 내면아이가 성숙해지고 있으며, 그동안 잊어버린 자신을 다시 찾아주고 인정해 주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그 아기도 나일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여전히 어긋남과 오해가 남아 있어도 내 안의 가장 순수한 생명은 언제나 할머니의 품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다는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Part 1 _ 〈내면아이 2〉 중에서
여러 개의 방으로 이어진 동굴은 내면의 다양한 측면과 가능성이다. 녹색 투피스 옷을 입어보는 장면은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시도하는 것을 상징한다. 옷이 뒤집어지고 혼란스러운 것은 아직 스스로 명확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거나 새롭게 발견한 내면의 면모를 완전히 통합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동굴 깊숙이 이어지는 방들은 깊숙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녹색은 보통 회복, 치유의 색깔이지만 내적 성장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혼란이나 어색함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에게 녹색은 여고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선택한 옷 색깔이지만 다른 옷이 없어서 줄곧 입어야 했던 서글픈 색깔이다. 그때 녹색은 형편없는 나를 상징했고, 지겨운 색깔이었다. 그 후로 십 년인가 이십 년인가 초록색 옷은 절대 입지 않았고, 용서할 수 없는 색깔이 되었다. 내 꿈에 나오는 색깔들은 99%가 초록이다.
Part 1 _ 〈동굴〉 중에서
벽 없는 벽, 문 없는 문을 찾은 꿈은 무척 심오하며 상징적이다. 성을 향해 가는 왕과 왕비는 내면의 중요한 요소이며, 내면의 권위와 균형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는 점에서, 결국 내면의 지혜와 직관을 통해 스스로 길을 찾아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의식적인 삶의 태도에서 무의식적이고 깊은 자아로 진입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이 장면은 무의식 속으로의 진입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순간이다. 보이지 않지만 손에 잡히는 문고리는 자기(Self)로부터 오는 ‘직관의 손잡이’로 이해할 수 있다. 융의 개성화 과정에서 이 시점은 ‘자아가 무의식에 접촉하는 첫 임계점’이자 ‘정신적 재탄생’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Part 1 _ 〈문 2〉 중에서
아스팔트는 단단하게 포장된 표면, 즉 스스로 만든 겉모습으로 자기방어적 태도를 뜻할 수 있다. 그 아래로 불길이 보인다는 것은 의식 밑에 억눌린 감정과 진실이 점점 균열을 내고 드러나려는 상태이다. ‘솔직함의 문제’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이 꿈의 핵심이다. 이는 내가 솔직하다고 믿는 것조차 ‘통제된 진실’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며, 깊은 자각의 계기를 상징한다. 아마도 이 불은 자기기만의 껍질을 깨고, 더 깊은 진실로 가려는 에너지이다.
Part 2 _ 〈불길〉 중에서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자> 액자 두 개도 삼십 년 만에 버렸다. 눈동자가 어디를 보는지 모르게 텅 비어 있는 여자의 그림을 자화상처럼 들고 이사를 다녔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은 샤갈의 환상과 꿈이었지만 숨겨진 내 모습은 사무치게 자신만을 끌어안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여자들이었다. 그 모딜리아니를 드디어 쓰레기 봉지로 쑤셔 넣었다. 맹목적으로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면서, 지난 시간을 얼룩이 생긴 채로 놔두고 금이 간 상태로 놔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가 생긴 그대로 놔두고 다른 사람을 탓하면서 해결은 신의 모형들에게 넘겨버렸다는 자각을 했다.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며 찐득하게 엉겨 붙은 먼지를 쓴 신의 그림들을 버린다.
Part 2 _ 〈청소〉 중에서
최근에 나는 친구에게서 묘한 불일치, 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긴 노력 끝에 그 틈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시인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선생 딸’이어서 남들 보기에는 괜찮은 아이였지만 마음속은 사랑받지 못한 서러운 고아 같았다. 나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위악적으로 되었다. 친구에게서 본 틈은 그런 나 자신의 틈이었다. 친구의 말과 표정, 행동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어긋남은 불쾌감을 주었는데 사실 그 불일치는 내 안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과 가면 사이의 틈이었다. 나는 그 틈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왔고 그 사이에서 나 자신조차도 속고 있었다.
이 불일치는 가면이 진실을 지배할 때 벌어지는 내면의 파열이다. 무의식은 이 틈을 수선하라고 말하고 있다. 꿈속에서 수리공이 집으로 들어와 고치려는 장면은 나의 내면이 이 틈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신호다. 겉과 속이 맞지 않는 내 모습, 내면의 아이와 실제의 어른이 이어지지 않는 단절, 그 틈을 보기 싫어서 꿈에서도 수리공들을 쫓아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꿈은 이 틈을 수선해야 하고 새로운 인테리어가 필요하다고 말해 준다. 이제 내 집을 수리해야 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 변화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설고 불편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그 틈을 바라본다.
Part 2 _ 〈집수리하기〉 중에서
다음 날은 또 다른 사원을 찾았다. 사람들은 ‘새벽사원’이라고 불렀지만, 그곳은 연꽃 사원이기도 했다. 산 중턱 코끼리 형상의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이 사원으로 가려면 108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사원을 향한 중간지점에는 둥근 판을 돌려 선택된 숫자로 메시지를 받는 곳도 있었다. 남편은 49번, 나는 132번이었다. 무슨 뜻일까?
가이드가 알려준 132의 의미는 “죄업이 가득한 말을 듣지 말고 헛된 소리를 하지 말고 나쁜 감정을 일으키지 마라”였고, 49는 “죽음을 기억하며 선행을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미워하는 고통은 나를 자비롭게 바라보는 ‘또 다른 나’에 의해 껍질처럼 벗겨져야 했다. 그날 부처의 펼친 손에 헛된 말과 나쁜 감정을 내어놓는 일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밖으로 나오자, 남편이 문고리를 가리켰다. 두 개의 문고리는 모두 쥐 모양이었다. 적을 물리쳐준 쥐 떼의 전설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문고리를 쥐 모양으로 만든 사람들의 상상력이 사랑스러웠다. 내 마음의 문고리에도 쥐를 만들어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만 있으면 들어와 휘젓는 생각들과 그 부정적 상념들이 몰래 다가오지 못하도록 부적이 필요하다는 상상을 했다.
Part 3 _ 〈몽골 사원〉 중에서
문득 넓은 바다에 작은 섬 하나가 떠 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광활한 무의식의 바다에 작게 모습을 드러낸 섬은 거대한 자연 앞에 드러난 자아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단지 섬이 아니라 바다까지 포함한 존재라고 느낀다.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 것이었고, 나의 광활함은 미지의 것들까지 품고 있는 것이다. 자기(Self)는 자아(Ego)를 포함하면서도 초월하는 인간 정신의 전체성이다. 바다도 하늘도 별도 새도 자연의 모든 것이 자기(Self)의 얼굴이다.
Part 3 _ 〈물을 건너오는 여자아이〉 중에서
그림책으로 만난 죽음은 소풍처럼 가볍고 투명하게 흐르는 시냇물 같았다. 거창한 철학서보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이 작은 손의 토닥임처럼 위로를 주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여행지로 건너가는 환승역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역에 도착할 때 내 가방 속에도 잔돈과 달걀 몇 알과 강아지들을 위한 간식들이 들어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림책이 일러준 다정한 준비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은은히 빛난다.
Part 3 _ 〈그데함과 사노 요코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중에서
꿈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환하게 흐름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가 없어도 꿈이 다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꿈이 혼자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김정택 신부님의 충고가 없었다면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꿈속에 와주는 할머니 원형과 아니무스 남편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이끌고 잘 따라오는지 뒤돌아보는 역할까지 해 주었다. 꿈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생각할 수가 없다. 광활한 무의식의 상징들이 함께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기나 했을까.
〈에필로그〉 중에서
추천사
그녀의 이번 책이 내게 옴은 아마도 내 무의식의 필요에 응답한 선물로 보입니다.
내 꿈이 그 선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나를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앞서가며 걸었던 험난한 길의 여정을 지도로 만들어 우리에게 상세하게 보여 주고 있기에, 우리는 각자가 선 자리에서 나침반을 가지고 확신 있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그녀의 수고와 성취에 찬사와 감사를 보냅니다.
이 책을 펼쳐보는 분들의 꿈속에서도 이 책이 현자로, 길 안내자로, 함께 가주는 친구로, 웃음을 주는 어릿광대로 나타나 주기를 기대합니다.
김도애 _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