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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욕망으로서의 메모

1. 메모적 쓰기와 즐거움
2. 서간문이라는 메모
3. 더 많은 걸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
4. 쓸모없는 메모의 지대
5. 딴짓하는 읽기/메모
6. 메모의 운명과 잠재력
7. 달아올랐을 때 쳐라
8. 자유롭게 붙들린다는 것
9. 책이라는 메모 뭉치
10. 인용이라는 머무름에 대한 단상
11. 읽기의 능동적 수동성
12. 여백에 낙서하기: 무한 확장하는 마지네일리아의 세계
13. 메모를 하는 어중간한 포즈
14. SNS는 메모가 될 수 있는가?
15. 어찌 됐든, 무엇이든 계속 써간다는 것: 책이 되지 않는 메모들에 대하여

에필로그: 머무르고 잡아채기

저자 소개
저자 : 김지원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2013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정책사회부·사회부·문화부·뉴콘텐츠팀 등을 거쳤다. 2021년부터 2025년 중반까지 약 4년간 책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기획, 발행했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2024),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2023, 공저) 등을 썼다.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즐겁게 읽고 쓰고 해찰하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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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AI 시대의 우리는 어떤 기쁨을 놓치고 있을까?
일기, 편지, 논문, 소설, 에세이, 논픽션, 뉴스레터, 블로그, 독서노트……
무엇이든 읽고 쓰는 당신을 위한 메모의 재발견

13년 차 기자이자 2021년부터 2025년 중반까지 책에 기반한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기획, 발행한 김지원 기자의 메모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해찰’이라는 콘셉트로, 매주 서너 권의 인문/사회 책들을 오늘날의 사회적 문제와 깊이 있게 가로지르며 읽어내고 소개한 이 뉴스레터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뉴스레터로 독특하고 탄탄한 입지를 다지며 많은 구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이 뉴스레터의 바탕에는 다름 아닌 메모가 있었다. 그러나 김지원 기자에게 메모는 실용성이나 생산성보다는 즐거움에 단단히 붙박여 있다. 그는 “메모를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다르게 말하면, 메모를 할 수 없다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메모를 애정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읽기와 메모-쓰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다.
우리는 보통 어딘가에 써먹을 요량으로, 또는 잘 기억하고 저장해두기 위한 생각으로 메모를 하지만 저자는 ‘무용한’ 메모를 예찬한다. 따라서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메모는 ‘기억하기’보다는 ‘머무르기’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머물렀을 때 기억하게 된다고 말한다.

읽기와 쓰기 사이, 그 무용한 지대에 머무르는 즐거움

그렇다면 머무르는 행위로서의 메모란 무엇일까? 저자가 생각하는 메모는 읽기와 쓰기 ‘사이’의 지대다. 이 사이에 머무르는 시간의 물화가 바로 메모인 것이다. 메모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저자를 이끌었다. “독자는 과연 수동적인가? 우리는 읽기와 쓰기를 어디까지 따로 나뉜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흔히 읽기와 쓰기는 별개의 행위처럼 여겨지지만 저자에게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붙어 있다. 읽으면서 쓰고, 쓰면서 읽는다. “메모는 읽는 동시에 쓰는 사람, 텍스트에 주해를 다는 방식으로 치밀하게 해찰하며 읽는 사람의 독서/글쓰기 방식”이라는 저자의 정의가 재밌다. 이때의 쓰기는 매우 성급해 띄어쓰기 같은 건 신경 쓸 겨를도 없고 비문도 한가득이며 오탈자들이 뻔뻔하게 고개를 들면 딱 좋단다. 이러한 메모의 핵심은 단 한 가지, 뜨끈뜨끈한 사유의 순간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다. 외부의 텍스트를 만나 내 안에서 무언가가 ‘촉발’되었다면 나중의 생각으로 미루지 않고 즉각적으로 달려들어 머무르고 잡아챈다. 바로 이 머무르고 잡아채기, 저자가 말하는 메모의 전부다. 그것이 어디에 쓰일지 유용할지 오랫동안 머릿속에 기억될지 어떨지야말로 전부 나중 일이다.
메모에 대한 관점이 이렇다보니 유용한 메모‘법’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메모-쓰기 또는 정리/분류에 좋은 애플리케이션나 프로그램이라든지 메모에 꼭 적어야 하는 핵심 내용이라든지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하면 좋다든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한 줄도 쓰여 있지 않다. 저자는 일간지에 실린 대기업의 전면 광고 속 널찍한 여백, 청구서 봉투, 읽던 책의 백면을 찢어 메모하는 사람이고, 그저 더 많은 ‘여백’이 필요해서 컴퓨터를 켜는 사람이다.
물론 그도 특정 프로젝트 등을 할 때는 실용적인 메모를 쓰지만, 이 책은 그런 메모보다는 잡동사니 ‘일기’나 ‘앨범’에 가까운 메모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쓰였다. 이런 메모는 쓰는 이가 무엇이 될 것인가, 내 손에서 무엇이 태어날 것인가보다도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순전한 즐거움,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메모”라고 저자는 말한다. 메모의 재발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뤄진다.

분류나 쓸모를 고민하지 않기, 잊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여기기,
읽는 동시에 쓰기, 적극적으로 딴짓하며 안 읽기, 여백에 낙서하기……
그 모든 걸 그저 즐거움으로 하기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에너지는 ‘즐거움’이다. 저자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메모-쓰기의 즐거움을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메모는 무언가 흥미로운 것에 붙들린 순간에 머무르는 행위이기에 결코 재미와 무관할 수 없고, 그것을 잡아채는 쾌감 또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일이다. “바로 이 순간에 쓰고 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았기 때문에, 쓰는 게 즐거워서” 쓴 게 메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즐거움에는 어떤 측면에서 확실한 주관이, 즉 ‘무엇을 볼 것인가’만큼이나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판단에는 “특정한 좌표에 놓인 개인의 존재, 몸, 삶, 편견, 쓸모”가 개입한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누구에게나 유용하고 효율적인 ‘메모법’ 같은 게 존재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방법론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어떤 메모를, 왜 하고 싶은가” 궁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읽기와 메모-쓰기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메모가 자신이 붙들린 무언가에 머무르며 흐릿한 생각을 잡아채는 행위로서의 ‘즐거움’이라고 할 때, 이야기는 읽기와 쓰기에 대한 보다 폭넓은 영역으로 확장된다. 예컨대 메모적 쓰기의 즐거움에 집착한 작가들, 메모적 (즐거움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책들, ‘쓰기의 즐거움’이란 측면에서 정점에 있는 서간문(편지)과 일기, 머무르기로서의 인용, 메모 뭉치로서의 책, 딴짓하면서 읽기, 여백에 낙서하기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궁극적으로 “생성 자체의 즐거움과 가치”를 재평가한다. 그 원초적 즐거움의 첫 단계로서 메모가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챗지피티 등과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긴 글은 요약해주고 짧은 글은 길게 늘려주는 AI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환기한다.

‘메모’라는 지대에서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머무르며 잡아채는 메모의 순간은 무엇보다 자유로움의 순간이다. 읽기와 쓰기 사이에서, 쓸모를 고민하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그저 순수하게 머무르는 행위로서의 메모. 그 지극히 ‘무용한’ 메모의 지대에서 우리는 마음껏 붙들리며 딴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바로 그 몰입의 순간이 뜻밖에 ‘유용한’ 무언가로 이어진다. 저자가 “오로지 메모의 힘”으로 뉴스레터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사방에서 ‘중요하다’고 외치는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무언가 지적인 것을 그러모아 쌓아두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거의 질식할 지경이다. 메모에 대한 오래된 관심도 대체로 그러한 생산/저장 강박의 연장이었을지 모른다. 저자 역시 개인적으로도, 기자라는 직업적으로도 그러한 강박에 시달렸던 사람이기에 이 책이 재발견하는 메모가 더욱 깊이 와닿고 반갑다. 이 책으로 머무르고 잡아채는 그 원초적인 메모의 즐거움을 되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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