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아름다운 등대’ 15곳을 완주한 뒤, 나는 등대라는 존재에 깊이 매료되었다. 바다를 품고 고요히 빛을 밝혀주는 그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공식 여권에 포함되지 않은 등대들까지 하나둘 찾아 나섰다. 등대 지도를 펼쳐 놓고, 눈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다음 여정을 계획하는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설렘이 되었다.
동해안 고성에서 남쪽 해안을 따라 내려오며, 그리고 전라도 곳곳의 등대들을 틈나는 대로 찾아다녔다. 그렇게 새로운 등대를 향해 걸어가던 중, ‘역사가 있는 등대’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공식 시리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에는 근대사와 맞닿은, 100년이 넘은 등대들이 선정되었고, 그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품고 있었다. -10쪽
역사가 담긴 등대들 가운데 유독 마음을 끈 한 곳, 바로 당사도등대였다. 그 이유는 항일운동의 시발점으로 기록된 ‘소안도등대 습격 사건’ 그 실존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있는 등대’ 열다섯 곳 중 열세 번째 여정으로, 나는 마침내 당사도등대로 향했다.
당사도는 섬 속의 섬이다.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고 소안도에 도착한 후, 다시 작은 배를 갈아타야 비로소 발길이 닿는 곳. 나는 전날 완도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불그레한 가을 햇살이 바다 위로 물드는 풍경을 바라보며 배에 올랐다. 소안도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배편을 갈아타면서 선장과 돌아가는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것은 필수였다. 이 드문 여정을 함께한 이들은 인천에서 온 부부와 삼십 대 여성 한 명뿐이었다. -13쪽
부산항의 감만부두는 여느 항구와 달리, 컨테이너와 선박들이 분주히 오가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어촌의 고요한 정취보다는 항구도시 특유의 역동성과 에너지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 활기찬 풍경 한가운데, 줄무늬 옷을 입은 작은 등대 하나가 굳건히 서 있었다. 바로 제뢰등대였다.
멀리서 보아도 뚜렷한 색감이 눈에 띄는 제뢰등대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교차한 가로줄 무늬 외벽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다를 지나는 배들에 ‘여기가 길이다’라고 손짓하듯, 분명하고도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높이 6.9m, 그리 크진 않지만 묵직하고 안정적인 원형 콘크리트 구조가 세월의 무게를 버텨낸 듯한 신뢰감을 주었다. -25쪽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빛을 밝히며 선박의 안전을 지켜온 죽변등대.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제의 군사적 필요로 시작된 역사, 침략의 도구로 기능했던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여러 등대를 다니며 체감한 것은, 우리가 바다의 안전을 위해 세웠다고 믿고 있는 등대 중 많은 수가 실제로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라가 침탈당하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자원이 어떤 방식으로든 점령자의 목적에 따라 재편된다는 것. 등대 하나에도 그 증거가 새겨져 있는 셈이다. -45쪽
여행이란 언제나 비일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변수로 발걸음을 붙잡기도 하지만, 이렇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장면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피아노 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지고, 그 위로 갈매기 울음이 얹히며, 바다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노을이 물들 무렵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월광 소나타의 선율과 함께 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어선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는 모습,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불빛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일 때, 그 풍경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57쪽
섬진강 휴게소에서 버스가 멈췄다. 15분간 휴식.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 기분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대신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낯선 길 위에서 어딘가로 표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여수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던 여정이었다. 울산에서는 시간표가 맞지 않아 부산 노포동으로 이동했고,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여수행 티켓을 끊으려던 순간, ‘운행 중단’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코로나 여파로 직행이 없다는 것이다. 귀를 의심했지만 현실이었다. 당황해 매표소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데 직원이 슬며시 귀띔했다. “순천을 거쳐 가는 건 가능해요.” 그 말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바로 순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직감이 이끄는 대로 따라야 할 시간이었다. -68쪽
야구등대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서암항의 젖병등대로 향했다. 칠암리에서 연화리로 이동하는 길은 해안선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차창 밖으로 푸른 물결이 끊임없이 출렁였다. 도착하니 이름 그대로 젖병 모양을 한 등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동글고 부드러운 곡선, 하얀색 몸체에 그려진 단란한 가족 모습이 유난히 밝고 맑게 빛났다.
이 젖병등대는 저출산 문제의 극복과 다산,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3년 IUSSP ‘세계인구총회’의 부산 유치를 기념하며 건립된 디자인 등대라고 한다. 물론, 이렇게 상징적인 건축물이 저출산 문제를 곧바로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 의도와 바람만큼은 애틋하게 다가왔다. 인구 감소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기에, 정책 입안자들의 고민도 날로 깊어지고 있다. 등대 불빛처럼 선명하고 현실적인 묘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서암항 젖병등대는 2009년 9월 3일 첫 불을 밝혔으며, 높이는 3.9m. 부산광역시 기장군 연화리의 작은 포구에서 오늘도 잔잔한 파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77쪽
귀신고래는 몸길이 11~15m, 무게 최대 41t에 이르는 대형 고래다. 평균 수명은 50~60년이며, 얼룩진 회색빛 몸에 등지느러미 대신 작은 혹이 여러 개 나 있다. 현재 전 세계에 약 3만 마리가 남아 있으며, 북동·북서 태평양 해역에서 무리지어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울산 앞바다에서 귀신고래가 출현하자, 정부가 그 해역을 천연기념물 제126호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으로 지정했다. 이후 1977년 1월 3일 방어진 앞바다에서 두 마리가 목격된 것을 끝으로 공식적인 발견은 없었다. 그러나 포경 금지와 보호 정책 덕분에 개체 수가 늘어나 멸종 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84쪽
긴 방파제 끝에는 비비 꼬아 올린 듯 독특한 형태의 등대가 서 있었다. 노래까지 한다니, 우리를 위해 어떤 멜로디를 들려줄까 기대를 품고 가까이 다가갔다. 완도항방파제등대는 국내 최초로 노래하는 등대로, 단순한 조형물의 개념을 넘어 터치 패드를 통해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패드에 손을 대자 추억의 노래 <짚시여인>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어느새 ‘짚시여인’이 아닌 ‘등대여인’이 되어 음악에 맞춰 살짝살짝 몸을 흔들었다. 여인들을 춤추게 한 이 등대는 1989년 12월 13일 첫 불을 밝혔다. 높이는 15m, 전남 완도군 완도읍 가용리에 자리하고 있다. -93쪽
이호테우 해수욕장은 제주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 중 하나다. 그 해변과 멀지 않은 방파제 위에, 두 마리의 거대한 조랑말이 서 있다. 전통적인 원통형 등대의 모습을 벗고, 제주를 상징하는 조랑말을 형상화한 이 등대는 멀리서도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단장한 두 등대는 2008년 11월, ‘제주이호랜드’라는 유원지를 조성하며 세워졌다. 당시 제주분마이호랜드가 바다를 매립해 마리나항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치한 것이다. 높이 12m, 그 모습과 위용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트로이의 목마’를 연상케 한다.
방파제 끝에 두 개의 등대를 마주하고 있으면, 왜 색이 다른지 궁금해진다. 항로표지 규칙에 따르면,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올 때 오른쪽(우현)에 있는 등대는 빨간색, 왼쪽(좌현)에 있는 등대는 하얀색으로 칠한다. 이는 선박이 안전하게 항로를 찾도록 돕는 일종의 ‘바다 신호등’ 역할이다. 낮에는 색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구분한다. 빨간 등대에는 빨간 조명이, 하얀 등대에는 초록 조명이 켜져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알려준다. 이 빛은 날이 저물면 자동으로 켜진다. -113쪽
방파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등대로 향했다. 궁평항북방파제등대는 일반적으로 자주 볼 수 있는 하얀색이나 붉은색 등대와는 다른 색이었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등대는 눈에 확 띄었고, 새벽 햇살을 받아 마치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방파제 위에서 유독 이 노란 등대는 특별한 존재감으로 서 있었다.
노란 등대는 단순한 색상의 변화가 아니다. 주변에 암초나 군사 시설 등 항해에 주의가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소형 선박이 다니는 좁은 통로가 확보된 구역임을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즉, 이곳 바다는 그만큼 주의가 필요한 해역이라는 뜻이다. 바다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안전을 알리는 등대의 색깔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125쪽
간월도는 원래 섬이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속한, 약 0.73㎢ 면적의 작은 섬으로 천수만淺水灣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이제는 육지와 연결된 반도 형태가 되었으며, 섬이라기보다는 해안마을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위치상 동경 126°26′, 북위 36°37′에 위치하며, 최고지점의 해발 고도는 70m에 불과한 낮은 지형이다. 이곳에는 ‘큰말’, ‘새말’이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으며, 큰말은 가장 오래되어 큰 마을, 새말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간척 사업 이후 간월도 일대에는 99㎢가 넘는 농경지가 조성되었고, 그 넓은 들판은 대규모 기계화 영농 단지로 변모했다. 이 지역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고 인적이 드물어, 벼 수확 후 낙곡落穀(떨어진 곡식)이 많아진 농경지는 겨울 철새들에게 안성맞춤인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 결과 간월도는 조류 관찰지로도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서산 지역의 대표적인 생태 관광지로 부상했다. -130쪽 흑산도를 이야기할 때 정약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자산어보』를 집필했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주변의 해양 생물과 어촌 문화에 대한 집대성으로, 오늘날까지도 생물학과 민속학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흑산도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백성들과 소통하며 생물과 바다를 연구했던 정약전의 태도는 학문을 넘어 인간적인 통찰을 전해준다.
그가 남긴 『자산어보』의 정신은 흑산도에 남아 자연과 인간, 과학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 섬의 풍경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그렇게 등대 앞에 섰을 때, 단순히 선박을 인도하는 시설이 아닌, 이 섬이 품은 역사와 사람, 삶을 비추는 빛처럼 느껴졌다. -149쪽?
눈길을 걸어 대연평도 남단으로 향했다. 평지도 아닌 미끄러운 오르막 눈길, 걷기가 버거웠다. 결국 한 번 크게 미끄러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몹시 아팠지만, 일행들을 걱정시킬까 봐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등대가 가까워질수록 눈앞의 풍경은 점점 더 장엄해졌다. 눈 덮인 계단 위로 마침내 등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평도등대는 1960년 3월 23일 처음 불을 밝혔다. 한동안 연평도 어선들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했지만, 1974년 7월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불이 꺼졌다. 이후 1987년에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며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 2019년 5월, 45년 만에 다시 불을 밝혔다. 오랜 세월 꺼져 있던 등대가 초로에 다시 빛을 내게 된 것이다. -167쪽
살아가며 자신이 가치를 두고 행하는 일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기쁨은, 그것을 직접 해낸 사람만이 아는 깊은 충만감이다. 때로는 뜨거운 태양 아래 산을 오르고, 어떤 날은 비바람을 맞으며, 또 어떤 날은 험한 바다를 건너야 한다. 때로는 계획이 어긋나고, 그 길에서 다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여정의 끝에서 마주한 등대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고독을 받아주는 벗이며,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게 해주는 ‘빛’이다.
등대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결국,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등대의 침묵 속에서 나는 매번 삶을 다시 배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등대를 향해 걷는다. 끝을 밝히는 그 한 점의 빛처럼, 흔들려도 꺼지지 않을 나만의 신념을 따라.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