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아내는 유아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로서 나와 관면 혼배를 하고 십여 년 만에 나를 신자로 만들더니, 이어서 부모님도 신자가 되시게 하였다. 60년 전 처녀 때는 초창기 ‘레지오 마리에’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외인 집에 시집 와서 겨우 주일미사나 하면서 기도 생활만 하더니, 모시고 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구역 반장을 하면서 슬슬 발동이 걸렸다.
우리 동네 우편집배원이 별안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대방동에 있는 ‘성애병원’으로 급히 달려가 위문을 다니는 동안 가족을 통해 그분이 평소에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말을 듣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 재빨리 병자성사를 주고 그이의 주소지인 흑석동성당에 알리고, 이어서 돌아가시자 어려운 형편인 그 가족이 성당 연령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하였다. 그분의 남편과 두 아들도 그 후 신자가 되었으니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은퇴하고 양재동성당 구역으로 이사 온 후 2002년 아내는 대장암에 걸려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겨우 회복되더니,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데레사회’라는 데 들겠다기에 몸이 안 좋은 나는 극구 말렸다. 늙은 할망구가 무얼 하느냐고. 데레사회는 ‘마더 데레사’의 정신을 본받아 아픈 사람을 방문하고 돕는 일을 한다는데, 척추관 협착증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한 옆에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으면 되었지, 따로 나가서 누굴 돕겠느냐는 게 내 주장이었다.
“당신이 늘 아프니 주님께 항상 낫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면 되겠수? 나도 주님이 좋아하실 일을 해야지.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주님께서 좋아하실 일을 한다며 눈이 안 보이는 ‘근위축증’ 환자인 김젬마 자매의 집에 가끔 가서 말벗이 되어 주고, 척추 수술 후 몸져 누워 있는 벨라뎃다 할머니를 방문하는 일이 아내의 즐거움이라니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 아파트 경비원인 ‘조계형’ 씨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단독주택에만 살다가 정년퇴직 후 이곳 아파트로 이사 와 보니 가장 좋은 일은 경비원이 아파트 둘레를 쓸어서 늘 깨끗하게 해 주고 택배 물건도 받아주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면 들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조계형 씨는 가장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무슨 일인지 천주교 신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자인 입주자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하면 내 아내에게 “할머니, 501호가 불을 내서 온 아파트를 힘들게 하고 사과의 말도 없어요. 그 여자가 천주교 신자라면서”라며 불평을 하면, 아내는 자기가 한 것처럼 미안해하곤 하였는데, 그 사람이 병이 난 것이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우선 그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조 반장님께
저는 1동 807호 할머니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의사 말 잘 듣고 얼른 나으시길 진심으로 기도할게요. 아시지요? 우리 할아버지와 내가 천주교 성당에 다니는 걸.
그래서 우리 하느님께 조 반장님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가 되려면 꽤 힘들어요. 예비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하고 절차도 까다로워요. 그런데 아픈 사람은 달라요. 하느님을 믿겠다고, 병이 다 나으면 성당에 다니겠다고만 하면 외상으로 영세(세례)를 준답니다.
조 반장님, 이 기회에 천주교 신자가 되지 않으시겠어요? 그러면 우리 기도가 하느님께 더 잘 전해져서, 어떤 병이라도 꼭 나으실 거예요. 제발 얼른 나으시길 빌고 또 빌면서 드리는 말씀이니, 잘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시면 반갑겠어요.
조 반장님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꼭 만나러 갈게요. 얼른 건강해지세요.
2013년 1월 31일
1동 807호 할머니 드림
- 「안병옥, 정화조 오물을 뒤집어쓰고 만난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