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한국의 짜장면, 영국의 탕수미트볼
대한민국의 국민 음식을 뽑으라고 하면 짜장면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이 요리는 분명 중국요리인데 중국 본토에서는 산둥과 베이징 일대를 제외하면 그닥 알려져 있지도 않고, 한국에 들어온 지는 겨우 한 세기 남짓이다. 짜장면이 이처럼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데는 온갖 사연이 있다. 무엇보다 산둥의 조리법을 우리 입맛에 맞춰 수차례 과감하게 개량했고, 과도한 규제로 인해 요식업이 화교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면서 전국에 퍼져나갔다. 가격통제 품목으로 분류되어 서민 음식의 대명사가 되어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고, 중국집이 배달 문화의 선봉에 서며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기도 했다. 요즘은 마라탕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모든 식문화는 진화하지만 중국 음식의 적응력은 실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저자 퓨샤 던롭이 자라던 1980년대의 영국에서는 탕수육(정확히는 탕수미트볼)이 한국의 짜장면과 비슷한 지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찹수이나 좌종당계가 중국 음식의 대명사이자 호불호가 없는 만인의 음식이고, 일본에는 라멘과 군만두가 그렇다. 전 세계의 수많은 현지화된 중국 음식 뒤에는 한국 짜장면만큼의 뒷이야기가 있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하나, 이문화 간의 접촉으로 인해 생겨난 요리라는 점이다.
해외의 중국요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내의 중국요리가 그토록 다양한 데는 땅덩이가 크다 보니 지역에 따라 기후와 토양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 간의 접촉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퓨샤 던롭은 책에서 중앙아시아로부터 맷돌을 들여와 국수와 면요리가 탄생했던 한나라를 얘기하고, 서역과의 교류가 절정을 이루었던 당나라의 코즈모폴리턴 문화 덕분에 아직도 중국의 대도시마다 무슬림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고 알려준다.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북방의 카이펑에서 남방의 항저우로 이전하며 남북 문화가 멋지게 융합했던 13세기의 송나라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보고 싶은 중국 음식문화의 전성기였다고 말하며, 청나라의 건륭제가 강남 요리에 매료되어 만주족의 궁중요리에 적극 반영시켰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가까이는 앞서 말한 짜장면처럼 동남아, 미국, 유럽 등지의 화교들이 현지 문화에 맞춰 정착시킨 이국적 중식의 이야기도 나오고, 상하이가 ‘아시아의 파리‘이던 한 세기 전 출현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개량 양식 ‘시찬西餐’도 소개한다.
접촉하고 갈등하고 포용하는 음식
서로 다른 문화가 뜻밖의 접촉을 통해 결국 포용에 이를 때 멋진 것이 탄생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고정관념 때문에 낯설고 갈등도 겪게 마련이지만, 결국은 타협이 가능한 지점을 깨닫게 되고 그러다가 상상치도 못한 제3의 무언가가 생겨난다. 가령 퓨샤 던롭은 중원의 중국인들이 북방 ‘오랑캐’가 먹는 유제품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들이 우유를 치즈로 만드는 과정을 따라해 맷돌에 간 콩물을 굳혀 두부를 탄생시켰을 거라고 추정한다. 모든 문화는 그렇게 접촉하고 갈등하고 포용하는 과정을 거쳐 진화하는 것 아닐까. 거꾸로 말하면 외부와의 접촉이 없고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문화는 정체되거나 퇴화한다. 이 책의 한글판 부제를 ‘중화미식인류학’이라고 지은 것은 그래서다.
저자 퓨샤 던롭은 1990년대 중반 1년 예정으로 쓰촨의 청두에서 머물다 우연히 현지의 요리학교를 다니며 중국요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중국 각지의 요리를 공부하고 탐험하며 1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모험담을 정리한 2008년의 저서 『상어 지느러미와 제피Shark’s Fin and Sichuan Pepper』는 당시 중국의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 전후로도 쓰촨요리, 후난요리, 강남요리 등을 다룬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북을 펴냈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미식 투어를 조직해 서양인들에게 중국요리를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는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결실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때였다. 중국 경제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투자유치를 위해 문을 활짝 열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중국이야말로 이질적인 문화가 시끌벅적하게 부딪히던 장소였다. 오해와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서로 어울리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전제로 깔려 있던 시기였다. 퓨샤 던롭이 중국 전역의 음식 문화를 거침없이 탐험할 수 있었던 것도, 서양인이라는 사실 외에 당시의 개방적인 공기가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렇게 중국 음식에 골몰했던 30여년의 집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