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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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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다 구멍으로 천천히 뛰어내리는
소극장
그리고 예견된 미래
인지
큐브
무영
몬더그린
조도
사 인용 가정
병동 일지
그때
미래의 일들

2부 남에게 그림자를 많이 밟히면 빨리 죽어버린대
너와 나의 고양이의 대화법
여름의 끝
서향
자살 중독
엔트로피
인간 생태 보고서
멈춰버린 그러나 지속될
작은 신은 야옹 하고 울지
비(非)여름
폴리이미드 필름
드리밍 북
여학생
새로운 일
미래의 미래
눈, 눈, 눈
택시 드라이버

3부 개는 오직 개의 마음만을 가질 것
구의 일기
구의 일기
생동
올바른 생활
최근에 쓴 사랑 시는 오월달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지만 사랑할 만한 구석도 잘 알았으니까
슬픔을 키우는 사람
여름을 부탁해
서은재
우리의 책
형상기억박물관
인간은 새에서부터 시작됐다
<h1>
영원불변 유리병 여름 아이
실내 수영
변수의 힘

4부 종말이 성큼성큼 우리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게 좋아서
성당
전개
해시태그 동시대성
Error Code: 224003
동거
그 많던 ( ) 누가 다 먹었을까
눈썹 털 냄새
신드롬
메리 홀리데이
완벽한 완공식
목조건물
나무를 다음해
기계적인 사랑 시
윈터타임
컨테이너
랑
청색 누드
The last thing I said to you is don’t leave me here

해설_ 고장난 사랑 기계
하혁진(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저자 : 이영은
202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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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오래오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아마도 냉장고 흐르는 소리. 쌓아둔 필름이 하나둘 소진되는 소리.

침대맡에 웅크리고 앉았다. 한낮의 개처럼. 며칠째 열리지 않는 현관을 바라보면서. 아무도 초대한 적 없으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손발이 점차 투명해졌다.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낡은 브라운관에서는 남극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녹아내리는 빙하. 빙하를 관통한 커다란 구멍.
_「그리고 예견된 미래」 부분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과 질서를 부여받지 못한 파편적인 삶의 단면들을 시적인 언어로 치열하게 직조해낸 결과물이 담겨 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긴장, 즉 ‘영원불변’이라는 절대성과 ‘유리병’이라는 고립성, 그리고 ‘아이’라는 취약성은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인식의 틀이다. 사랑과 상실, 존재와 멸망이라는 대립적이고 근원적인 질문들은 각 시편에서 끊임없이 교차한다. 특히 ‘멸망’에 대한 감각은 이영은 시의 출발점이다. 이 시집은 종말을 향해 다가가는 시간 속에서 화자 개인의 감정과 일상을 꼼꼼히 탐색하고 기록한다. 종말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작은 붕괴이기도 하고,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멸망의 시공간 속에서도 무력하게 주저앉지 않고, 부서진 조각들을 응시하며 감정의 파편들을 수집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이영은의 시에서 사랑은 기능이나 효용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시적 주체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사랑 없는 ‘나’는 “손발이 점차 투명해”지고 “없는 사람이 되어”(「그리고 예견된 미래」)간다. 사랑 없이는 세계조차 무의미하다는, 철저하고도 근원적인 신념이 시인의 언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주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파괴적인 믿음이며, 사랑 없이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 그 진실의 자리를 향해 이영은의 시적 주체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단 있게 내딛는다.

(…) 손을

맞잡기만 해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겨우 손을 맞잡는 일 따위로 사람을 사랑해주지 않고. 결국

모든 사랑을 실패했다.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아무리 실패해도 태초에 나는 그렇게 빚어졌기 때문에
이미 실패한 일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서로를 안아도 심장이 맞닿지 않는 상대가 많았고. (…)
_「인간 생태 보고서」 부분

그렇다고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가 단순히 낭만적인 사랑을 말하는 시집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해진 서사나 결말로 환원될 수 없음을 직시한다. 사랑은 늘 어긋나며, 때로는 너무 늦게 찾아오거나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때 불쑥 나타난다. 이영은의 시는 그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랑의 순간을 세심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고요하고 차갑게 정지시킨다. 그리고 독자는 그 정지된 순간을 오래 응시하게 된다. 그렇기에 이 시집을 읽는 일은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다시 발화하는 사랑의 언어를 만나는 일이다. 시인은 말한다. “모든 사랑을 실패했다.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인간 생태 보고서」).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다. 이렇듯 이영은의 첫 시집은 사랑 이후의 시간을 다시 사랑으로 채워나가려는 치열하고 조용한 선언으로 읽힌다.
이영은의 시는 끝내 무너지고, 깨지고, 흩어질 운명에 놓인 감정들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시인은 절망과 고통의 연속 속에서도 쉽게 허무로 흐르지 않고, 감정을 뚫고 나가는 언어의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끝없이 “사랑을 했다고 설정”(「새로운 일」)한다. 그 길 끝에 놓인 것은 다음 사랑, 다음 존재, 다음 ‘나’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끝난 사랑의 이야기이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랑을 향한 예감의 기록이다. 때문에 이영은의 시적 주체는 사랑이 실패로 끝나고, 이별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붙잡을 ‘너’의 손가락이 “부러져 있”(「폴리이미드 필름」)어도, 그 손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손마디 사이로 “외출했던 희망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오”(「조도」)는 모습을, 그 비이성적인 믿음을 시어로 붙잡는다. 당신이 아직 사랑을 잃지 않았다면, 혹은 사랑이 이미 끝났다고 믿는다면, 이 시집이 당신에게 다가갈 것이다. 우리가 읽는 것은, 실패로 점철된 사랑의 언어이다. 하지만 그 언어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사랑 앞에 무릎 꿇는 대신, 사랑과 함께 존재하기로 선택한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과 멸망의 세계로 초대한다.

사랑해

너의 몇번째 사랑이 가장 큰 크기일까. 그것만은 알 수 없었지만

거실에서 일어나 남향으로 난 큰 창을 함께 닫을 때, 우리의 팔뚝으로 내려앉던 빛이나 그 빛이 남기고 간 잔상들을 되짚어보면서
그렇게 지내고 싶었어. 이런 말을 몰래 읊조리기도 했다.

등 너머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모호한 마음이 자라고 있다고 믿었다.
_「비(非)여름」 부분

물론 이 사랑은 어떤 것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타버린 잿더미 같은 말”(「눈썹 털 냄새」)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전부 타버린 탓에 오히려 “영원히 타오르지 않을 어떤 말”(「우리의 책」)이 된 사랑의 기록은, 한없이 부유함으로써 사랑의 의미가 고정되는 것을 끝없이 지연시킨다. 이렇듯 완고한 운명과 맞서며 “내 앞으로 도래할 미래가 두렵지 않았다”(「목조건물」)고 말하는 이영은의 시적 주체는, 이제야 비로소 “발목이 부러”(「폴리이미드 필름」)진 사랑의 춤을 춘다. 그리고 그렇게 시집을 덮으면 저멀리 ‘나’와 비슷한 모습의 ‘너’가 “발목을 접질린 채로”(「The last thing I said to you is don’t leave me here」) 다가와 손을 내민다. 이어질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또 한번 그 손을 잡을 것이다. 절룩거리는 사랑의 춤을 출 것이다. 그 춤은 아름다운 만큼 위태롭고, 위태로운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_하혁진, 해설에서

이영은 시인과의 미니인터뷰

Q1.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로 독자들과 첫 인사를 나누게 되셨어요. 이번 시집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요.

독자분들이 시집의 마지막 장까지 서서히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세계의 끝을 향해 가는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엮었습니다. 그 외에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이 시집을 읽고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지. 나를 모르는 사람들마저도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이상한 걱정과 불안들뿐이었어요. 물성을 획득해 누군가의 손안에서 한 페이지씩 넘어갈 시집을 생각하고 있다보면 왜인지 아주 맹렬한 무서움이 느껴집니다.

Q2. 시집의 제목이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입니다. 제목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싶으셨는지, 어떻게 시집의 제목을 결정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에 전혀 소질이 없어요. 제목 역시 길게 고민했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편집자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는데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라는 제목이 어떤지 물어보시더라구요. 생각해본 적 없는 제목이었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온 제목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감각이 좋았어요. 혼자 남겨진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공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깨지지 않고 영원히 혼자 남아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오래오래 추위에 떨며 혼자 남겨진 모습을요.

Q3. 시집의 화자들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행하면서 동시에 멸망을 바라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어요. 사랑을 하면서도 멸망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별이 세계의 종말이나 멸망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멸망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할 수 없는 결말이라기보다는 피할 수 없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 한꺼번에 끝이 나버렸으면 좋겠다고요. 정말 완벽한 끝으로요. 하지만 이별은 되도록 피하고 싶습니다. 연인에게 종종 장난스레 하는 말이 있는데, 이별보다 사별을 원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들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별은 피할 수 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니 차라리 세상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랑이 끝난 게 아니라 세상이 끝난 거니까.

Q4. 이번 시집은 봄부터 겨울까지 폭 넓은 계절을 아우르고 있어요. 그럼에도 빙하나 눈처럼 차가운 이미지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 같습니다. 차가운 이미지를 시에 적극적으로 담은 이유가 있으실지 궁금해요.

스스로는 여름의 이미지에 천착해 있다고 생각했는데 원고를 엮으면서 차가운 이미지를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왜였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추운 겨울을 가장 익숙하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얼굴에 찬 공기가 닿는 조용한 골목을 안전하다고 느낄 때도 있구요. 머플러에 고개를 묻고 눈을 밟으며 조심조심 걷고 싶어요. 얼어붙은 것은 단단하지만 쉽게 녹고 쉽게 부서지기도 한다는 것이 슬픔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네요.

Q5. 마지막으로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를 만날 독자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영은입니다. 독자분들께 첫 시집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쁘고 무서워요. 저는 이상하게 유독 마음이 기우는 시 한 편만 만나도 시집 읽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영원불변 유리병 아이』를 읽으며 마음이 기울어지는 시를 한 편이라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꼭 모든 사랑을 이루실 수 있기를요.

시인의 말

어차피 다 무너지고 겨우 끝에 도달하면 다시 시작되는 그래서 영영 끝을 알 수 없는 사랑만 남겠지

2025년 10월
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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