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어깨를 두드리는 눈송이가
두 눈 가득한 설경으로 번지는 시간
148개의 겨울 단어가 옮기는 불씨로
온기를 일구는 우리들의 겨울 이야기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내 안에 머물러 있던 어떤 이야기를 돌보게 한다면 그것은 책이 건네는 용기일 것이다. 용기를 쥐고 우리는 과거를 구조하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우리 곁을 떠나가지만 계절에 대한 기억은 켜켜이 남는다. 남겨진 계절 속에 내려앉아 추억을 숨 쉬고 있는 단어를 이야기로 정의 내리는 『겨울어 사전』이 출간되었다. 이 사전은 우리 곁에 이야기로 나타나는 책이자 자기 안에 머물러 있던 겨울 풍경을 돌보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올여름 출간되었던 『여름어 사전』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었던 만큼, 계절에 관한 단어와 이야기로부터 새롭게 정의 내리는 일은 자연스럽게 겨울로도 이어졌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아침달 편집자들과 아침달 출간 저자 23명, 독자 16명의 원고가 함께 수록되었다.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몫의 단어를 골라 이야기로 의미를 다시 쓰며 어우러지는 일은 모닥불 앞에 모여 함께 불을 쬐는 일처럼 단란하면서도 각자의 불씨를 떠올리게 한다. 겨울이라는 생각 위에 서서 떠올린 단어는, 우리가 지나온 어떤 겨울을 반추하게 하고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게 만든다. 사전적 정의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의미로 뻗어 나갈 수 있게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한 계절을 돌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 된다.
‘겨울 냉면, 겨울잠, 구세군, 눈사람, 동지죽, 딸기, 붕어빵, 새벽송, 슈톨렌’ 등 겨울에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단어들로부터 ‘가나다순, 결국, 긍휼, 무덤, 복도, 사랑, 시, 이름, 추억’ 등 어떤 계절에 속하지 않고도 우리 곁을 맴돌았던 단어들이 겨울이라는 외투를 입고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기도 한다.
이번 『겨울어 사전』에 수록된 총 148개의 단어들은 148번의 정의, 148개의 질문, 148번째 겨울, 148겹의 눈송이, 148개의 성냥개비, 148권의 책이다.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눈송이처럼 내려 우리에게 어떤 장면을 일으키는 이 둘레를 넉넉하게 느껴보시길 바란다. 편집자와 작가, 독자 모두가 단어로 합심해 겨울이라는 둘레를 지키며 쓴 『겨울어 사전』은 당신의 이야기에 노크를 하고 기다린다. 당신의 겨울을 궁금해하며 오랫동안 품어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음이 저 스스로 걸어 나가게, 때로는 달려 나가도록.”(「고백」)
책 속에서
“사람의 마음에도 겨울눈 같은 것이 있겠지. 내어줄 것을 다 준 후에도 마지막까지 간직하는 것. 살아내느라 얻은 생채기를 보듬고 있는 시간 주머니 같은 것. 다시 살아갈 힘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겠지. 그 안에 어떤 빛깔이 숨어 있을까. 제 이름과 꼭 닮은 모습으로 피어날 여린 순을 기다리며 겨울을 사는 나무처럼, 사람들도 그런 시간을 살고 있겠지.”
─「겨울눈」 중에서
“어째서 겨울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행일까. 겨울이 눈물의 배경이 되기에 적합한 계절인 걸까. 잔인하게도 눈물겨운 이야기로 이 계절의 혹독함을 잠시 망각하게 하기 위함일까. 곧 봄이 올 거라는 말은 어떤 위로도 될 수 없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들에게는.”
─「눈물겹다」 중에서
“딸기는 살아 있다는 생각. 겨울에 홀로 켜는 빨간 전구.”
─「딸기」 중에서
“우리는 지금 잘 흩어지기 위한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모여 있는 사람들은 곧 헤어질 사람들. 헤어지기 위해 더 부드러운 팔짱과 손짓을 개발하는 중이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퇴근은 내게 도리어 밝고 경쾌한 이별을 가르쳐준다.”
─「퇴근」 중에서
“숨김없이 드러내고 싶어지는 말과 마음들을 가진 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농담과 장난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설렘부터 존경과 감사로 굴린 건강한 마음이 저 스스로 걸어 나가게, 때로는 달려 나가도록.”
─「고백」 중에서
“우린 다시 고통의 자리를 찾으러 갈 거야. 다름 아닌 살아가기 위해. 살아갈 의지를 포획하기 위해. 결국 다 괜찮아지기 위해 숱한 고통이 필요할 거야. 나쁘다는 건 아냐.”
─「결국」 중에서
“케이크를 다 먹어갈 때쯤 석양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케이크 위의 체리를 바라보았다. 토마토나 포도의 완전한 둥긂이 아닌 어정쩡한 굴곡. 수직으로 뻗은 꼭지가 단단하고 올곧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디딤과 파임이 필요했을 것이다.”
─「케이크」 중에서
“한 해를 잘 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에 당신이 준 용기를 보태어 나는 더 멀리 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이 마음을 끝내 다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더욱 공들여 쓰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기를. 편지를 받은 당신을 웃고, 울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수상소감」 중에서
“언젠가는 우리 같이 둘러앉아 각자의 뜨개를 하며 얘기 나눌 수 있겠지. 밖은 유독 춥고 안은 따뜻한 그런 날.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줄 수 있다. 또한 오래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그날의 뜨개에 그대로 깃들어 언제까지나 우리를 감싸줄 테니까.”
─「뜨개질」 중에서
“내가 내 자신의 적이 될 때가 있다. 마음이 모자라고 가난할 때마다 느끼는 기분. 그럴 때 혹한이 찾아왔다고 표현한다. 비유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보여주고, 흐릿한 것을 기꺼이 선명하게 열어주는 비유들은 어려운 마음의 한 시절 제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혹한」 중에서
“혼자는 함께였던 적이 있어서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 혼자가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었다면.”
─「뒷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