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책 속에서 작가는 중랑천에서 꼬마물떼새를 만나고, 등산으로 탈진한 지리산 계곡에서 물까마귀와 마주쳤다. 그리고 다정하고 세심한 인사를 건넨다. 통성명을 하고 안부를 묻는다. 반갑다고 잘 지내느냐고, 살기 팍팍할 텐데 밥은 먹고 다니느냐고.
장식품이나 풍경 속 조연이었던 새들이 나의 삶 속 한 존재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이름을 알게 되고, 뭘 먹는지도 보게 된다. 아이와 함께 보았던 물닭이 내게 각인된 것처럼, 작가는 곳곳의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난 새들에게 팬심을 품고 꽤 오랜 시간 ‘덕질’을 해왔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학명을 찾아보고, 생태를 연구했을 것이다. 책은 그가 여태 긁어모은 정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한 단락, 한 단락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 뒤에야 새는 비로소 깃털을 다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다정한 벗 홍철영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성장경(MBC 100분 토론 진행자, 앵커)
이 책은 외갓집 강변을 비롯해 작가가 삶의 공간에서 만났던 다양한 새에 관한 글이자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의 기억들이 녹아있는 시화집 같다. 작가는 새를 통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친구들과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 지리산 자락 촌로의 후한 인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내 나의 지난 시절 슬프거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 생태 도감이 잊고 있었던 추억을 소환하고 우리 삶을 더 곱게 물들이리라 기대한다.
박기영(그룹 동물원 멤버,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부 교수)
자연을 지키는 문화기획가 부부가 부산의 여름 같은 책을 냈다. 홍철영 작가는 ‘여름방학 날씨’가 그리워 이 책을 썼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 가족, 낙동강 하구의 자연이 그리웠다. ‘날개가 그린 시간’이라는 제목은, 새라는 그리움에 대해, 새처럼 날아가버린 그리움에 대해, 새처럼 곱고 아름다운 그리움에 대해 말해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밀화 풍으로, 있는 그대로 새들을, 섬세한 날개들을, 지나간 자연의 시간을 묘사한 안희정 님의 그림을 눈여겨보기를 권한다.
안영노(문화기획자, 안녕소사이어티 대표, 전 서울대공원장)
책 속에서
15p.
외갓집이 있던 곳을 큰외삼촌과 어머니는 ‘새느리’라고 불렀다. 이는 ‘새’에다가 ‘세상’이나 ‘너른 땅’을 뜻하는 순우리말 ‘누리’가 합쳐진 형태인 ‘새누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한 것이다. 새누리는 현재 행정구역명으로 ‘조눌리’인데 이 지명 역시 새 ‘조(鳥)’ 자에서 온 것이다. 새누리라는 지명은 강변을 따라 넓은 모래톱이 펼쳐져 철새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고향은 이렇게 김소월 시인의 시, ‘엄마야 누나야’가 생각나는 강변과 금빛의 모래톱이 있는 철새들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가을에 강가로 가면 언제나 기러기와 외갓집이 생각난다. 아련하고 애처로운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함께....
28p.
고니와 큰고니는 사람들에게 아주 친숙하고 인기 있는 새로, 우리나라 철새도래지의 강과 저수지 등에서 관찰된다. 특히 큰고니는 낙동강 하구 지역에서는 아주 대규모로 무리 지어 월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니는 큰고니들 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데 야외에서 관찰하면 큰고니와 구분하기 쉽지 않다. 흔히 부르는 백조(白鳥)의 순우리말이 고니이며, 고니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기러기목의 철새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아주 큰 새인 고니류는 어린 새일 때는 털 색깔이 회색빛을 띠다가 다 자라면 완전히 흰색의 아름다운 새가 된다.
37p.
어렸을 때는 도심의 하천이나 시골의 연못 같은 데서 집오리들을 볼 수 있었다. 낮에는 물 위에 떠 있다가 머리를 물속에 넣고 자맥질하며 무언가를 먹곤 했다. 그런데 이 오리들이 밤에는 어디에서 쉬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인가, 저녁 무렵 어느 하천변을 걷다가 궁금증이 풀렸다. 그곳에는 작은 선착장처럼 나무 기둥을 세워 만든 구조물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나무로 만든 조그만 닭장 같은 집이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가자, 물 위에 있던 오리들이 땅으로 올라와 깃을 다듬고는 그 안에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쉬는 것이 아닌가! 오리 주인이 와서 몰아넣지 않아도 저녁이 되면 알아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46p.
환경 변화에 민감한 논병아리나 뿔논병아리와는 달리 사람들이 만든 인위적인 공간에 제법 잘 적응하며 사는 새가 있는데 물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요즘에는 강이나 연못, 저수지는 물론 바닷가에서도 물닭을 보는 일이 흔해졌다. 물닭은 검은색 몸통에 하얀색의 부리가 특징적인데 “저 까맣게 생긴 오리는 뭐예요?”라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는 어른들은 드문 것 같다. 물닭은 예전에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근래에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관찰되고 있다. 왜 그런지 조사가 필요해 보이는데 인간들과 함께 사는 것에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물닭은 농경지 부근의 저수지나 습지, 생태공원의 연못 같은 곳에서도 다른 조류들 틈에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3p.
강 하구는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철새들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풀이 무성하고 나뭇잎이 우거져 장애물이 많은 여름보다는 철새들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이 잘 보이는 겨울이 새들을 관찰하기는 좋은 환경이다. 겨울철새들은 보통 가을이 깊어 갈 무렵 찾아와 봄에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반면 여름철새들은 봄이나 초여름에 남쪽에서 찾아와 번식을 한 후 다시 월동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1년 내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텃새들이 있다.
69p.
이런 맹금류를 보는 것은 어린 소년들에게 모험심을 자극하는 굉장한 경험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산에 올라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하늘소 같은 큰 갑충류를 잡는다거나 맹금류를 보는 일이 친구들에게 우쭐하게 내세우는 무용담이 될 수 있었다. 아스팔트인지 콜타르인지 모를 시커먼 것을 칠해 놓은, 나무로 만들어진 높은 전봇대 위에서 쥐를 잡아먹고 있는 솔개, 말똥가리,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를 제법 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바닷가 가까운 동네에서 살았는데, 전봇대 꼭대기에서 쥐나 비둘기를 잡아먹는 솔개를 종종 볼 수 있었다. 특히 날씨가 스산해지기 시작하던 11월부터 겨울 동안에 많이 보였다.
73p.
아버지에게서 들은 매사냥에 사용된 매는 참매가 아닐까 생각된다. 해안이나 강 하구의 새들을 주된 먹이로 삼던 매, 즉 흔히 말하는 송골매는 평야가 펼쳐진 곳에서 사냥에 이용하기 좋았을 것이고, 참매는 수풀이 우거진 산악 지대에서 매사냥을 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해안이나 평야 같은 넓은 장소에서 작은 새를 사냥하는 매는 길고 좁은 날개 구조를 지녀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다. 반면 참매는 장애물을 순간적으로 피해 나가며 단거리 스피드를 내기 좋은 날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많이 헷갈리는 부분이기는 한데 매는 매과이지만 참매는 수리과에 속하는 새이다.
83p.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바다와 산이라면 김해가 고향이었던 어머니는 강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 갈 때 낙동강을 건넜던 기억이 선명해서일 게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었던 강가 둑길에서는 수많은 새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가을부터 겨울까지의 낙동강 하구는 철새들의 천국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한 새들도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겨울철 낙동강 하구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맹금류 중에는 참수리가 있다. 수리류 중에서도 대형으로 굉장히 보기 드문 새이지만, 겨울에 강 하구나 갯벌 같은 데서 웅장한 자태를 간간이 보여준다. 노랗고 두꺼운 부리와 하얀색의 어깨와 꼬리가 특징인 참수리는 강 하구에서는 하늘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렬한 노란색 부리와 동그랗고 매서운 눈을 가진 참수리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을 하고 있다.
90p.
계절에 따라 사는 곳을 이동하는 새들, 즉 철새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철새와 여름철새로 나뉜다. 새들의 습성에 따라 멀리 북쪽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은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겨울철새가 있고, 반대로 겨울 동안 추운 날씨를 피해 따뜻한 남쪽에서 지내다가 여름에 우리나라에 오는 여름철새가 있다. 이런 새들은 여름과 겨울 동안 자신이 머무를 곳으로 이동한다. 철새들 중에는 이동 거리가 아주 먼 새들이 있다. 도요새류가 대표적인데 여름에는 북극에 가까운 시베리아, 알래스카 등 툰드라 지대에 있다가 겨울에는 아주 먼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까지 이동하는 새들도 있다. 이런 새들은 이동 거리가 너무 길어서 중간에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잠시 머물며 쉬었다가 가는데 이렇게 중간에, 주로 봄과 가을에,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새들을 철새 중에서도 나그네새라고 부른다.
97p.
꼬마물떼새는 새끼를 기르면서 둥지와 새끼를 보호하는 데 특이한 방법을 쓴다. 알이나 새끼가 있는 곳 근처에 천적이 나타나면 어미 새는 마치 날개나 다리를 다친 것처럼 허우적거리거나 비틀거리는 행동을 한다. 그러면 천적인 침입자는 그 행동을 보고 어미 새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든다. 그렇게 어미 새는 계속해서 침입자를 둥지로부터 먼 곳으로 유인하며 잡힐 듯 말 듯 도망가면서 알이나 새끼를 보호하는 행동을 한다. 생존을 위해 새들이 천적으로부터 자신이나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이러한 행동을 의상행동(擬傷行動, broken wing disp.lay)이라고 한다.
109p.
그야말로 조용한 절간에 어디선가 ‘딱딱 딱따그르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머리 위쪽에서 나고 있었고, 소리 나는 곳을 찾아보니 높은 나무 위에서 오색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고 있었다. 큰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매달려 오르내리며 나무를 쪼아댔다. 경내에서는 목탁 소리보다 빠른 박자의 딱따구리 소리가 제법 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색딱따구리는 멀리서도 구분하기 쉬운 새이다. 도시의 야산이나 공원의 큰 나무가 있는 곳에서도 종종 보이곤 한다. 딱따구리는 어린 시절부터 TV 만화영화로 접해 익숙한 이름이다.
딱따구리류의 새들은 절 근처나 야산의 큰 나무에서 자주 보곤 하는데 주로 나무의 높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딱따구리 중에서 비교적 낮은 곳까지도 내려와 먹이를 찾는 종류가 있다. 그것은 청딱따구리인데, 부산의 한 생태공원에서 큰 풀이 우거진 버드나무 아래쪽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130p.
어머니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병이 깊어 갈수록 조금씩 기억과 감정을 잃은 무표정한 얼굴로 변해 갔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동요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기억하고 노래로 부르곤 하셨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하고 있을 때에는 과연 지금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어떤 세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자신에 대한 기억마저 점점 잃어 가는 슬픈 병세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기억을 떠올렸을까? 동요는 고향을 노래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강과 들, 마당에 핀 꽃들과 담장에 앉아 지저귀는 작은 새들 - 이런 풍경들이 어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인간이 마지막 숨을 다하는 순간까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추억의 장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