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언제나 강하다고 믿었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보았다. 슈퍼맨 같은 존재도, 아니
그 어떤 존재라도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무력해진다는 걸, 아버지도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p.25
7미터 길이의 원목 책상에 나란히 앉아 시간의 흐름을 함께 나누는 일. 어머니의 모습은 내 안에 남았다. 끊임없이 배우고, 멈추지 않던 사람. 그래서 나도 지금 여전히 배움을 좇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운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p.29
어릴 때처럼 할머니, 동생 그리고 나는 둥글게 앉아 밥을 먹었다. 어린 나와 동생에게 언제나 밥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소리치던 할머니가 밥을 조금 남겼다. 나와 동생은 할머니에게 밥 남기지 말고 다 드시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p.45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화해란 어쩌면 그렇게 단순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누군가가 그 손을 거절하지 않는 것. p.48
우리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때에 누군가에게 위로와 안정을 줄 수 있는 존재
이다. 험한 세상이지만, 이 세상에 하나의 생명을 할당 받아 그 자리를 온전히 보전해 나가며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 p.64
〈보이지 않는다고 빛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서울의 밤하늘에도 별은 존재한다. 지금 어둠 속에 있을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초라해 보이고, 비참하고, 하찮아 보여도,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빛나지 않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존재다(과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실제로〉 일종의 전자기파, 즉 빛을 내뿜고 있는 존재이다). p.69
이방인으로서의 16개월은 나에게 외로움보다 자유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자유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는 하늘을 나는 대신, 마음의 좌표를 넓히며 살고자 한다. 혹 언젠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다시 낯선 땅에 서게 된다면, 나는 그곳에서도 이방인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p.90
매일 30킬로미터를 걸으며 (혹은 달리며) 오로지 나의 발소리와 숨소리만을 들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나와 대화했다. 사소한 걱정, 무거운 질문, 덧없는 상상, 그리고 아무 생각도 없는 무(無). 그때 처음으로 〈사색한다〉는 말의 의미를 체감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행복으로 향하는 사색이었다. 나는 그 시간 덕분에 내 안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고 믿는다. p.95
「역시 민혁이는 못하는 게 없다니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작게 웃었다. 이번에도 잘 해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나는 보이지 않는 벽 안으로 들어갔다. 실패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처럼. 급발진한 자동차처럼 멈추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의 삶.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어디든 부딪혀야만 멈출 수 있는 속도였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겉으로는 고요한 백조처럼, 물 아래에서는 쉬지 않고 허우적대며. p.97
그 울적함의 근원이 〈완벽주의〉에 있었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을 향해 나아갈 때, 그 끝에는 언제나 죄책감이 있었다. 밤을 새워 일하다가 낮에 한 시간 눈을 붙여도 그 달콤함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자책이었다.
(중략)
〈완벽하지 않음〉을, 조금 덜 완벽한 나를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 온전한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 p.100
그건 분명 실연은 아니었다.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아직은 시작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였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실연보다 더 깊은 상실감이었다. 잠시 우울에 잠겼지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럼 할 수 있는 걸 하자. 공부하고, 성장하자. 언젠가 한 번의 기회가 온다면, 그때 멋진 사람으로 서 있자.〉
그 결심 하나가 나를 지탱했다. 그리고 훗날, 정말로 그 기회가 찾아왔다.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