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그동안 서클을 유지했던 세력들이 서로 협력해 더 큰 공개 조직으로 노동 현장 운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합의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조직이 민주노조를 지원하는 공실위(인천 지역민주노조건설공동실천위원회)였다. 지금 생각해도 공실위를 만든 것은 인천 지역 노동운동권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위탁으로 성공회대에서 작성한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에서도 “인노협 결성과 관련 공실위라는 조직을 유의해서 조사 ㆍ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소견을 적고 있을 정도이다. 공실위에는 그룹별로 홍보와 교육, 문화를 중심으로 파견하였다.
1부?안재환 _ 〈인천 지역 정치활동〉 중에서
이처럼 경찰과 검찰이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몰기 위해 여러 짓을 하였는데 그중 제일 많이 써먹는 수법은 대개 세 가지 조작 방법이다.
첫째는 아예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생짜로 만드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는데,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만드는 것이 하나이며, 억지 추측으로 어떤 행위의 목적과 동기를 전혀 사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이다. 앞의 방법은 창립 준비 모임에서 안재환이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고 만든 것 등이다. 뒤의 방법은 각종 유인물을 만든 동기와 목적을 경찰이 멋대로 지어서 갖다 붙인 것이다.
둘째는 특정한 용어의 뜻을 왜곡 날조하는 방법이다.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해 경찰이 만든 의미가 그것이다.
셋째는 책자 내용 중 특정한 부분만 의도적으로 선택, 인용하여 그것을 그 책자의 전체 내용인 양 왜곡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심지어 인용 부분이 전체 내용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어서 책자를 전체 내용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의 책자로 둔갑시키는 일도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경찰과 검찰은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몰기 위해 불법연행, 허위자백 강요와 내용 조작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1부?안재환 _ 〈인노회에 대한 탄압〉 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일은 원적산 아래에 닭과 오리를 길러서 음식물을 먹도록 했는데 이게 평상시에는 냄새나 바닥의 분변과 오물을 처리하기 괜찮았다. 하지만 장마 시기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2.5톤 트럭으로 싣고 온 음식물쓰레기 통을 진흙탕과 빙판길을 밀고 올라가야 했다. 밀려오는 음식물쓰레기 양은 대책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양재덕 의장과 상의해서 대량 농장을 만들기로 했다. 집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서 검단, 김포 농장에 닭과 오리, 기러기와 돼지까지 길러 음식물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중간에 음식물쓰레기를 발효해서 지렁이를 기르고자 했던 박남수 선배와 부평구 양묘장을 활용하기도 했다.
1부?안재환 _ 〈IMF와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그리고 마을 운동〉 중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열기를 넘어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개헌 운동과 관련된 논쟁을 종식시키고 기존 헌법을 고수하겠다는 전두환의 4.13호헌 조치, 이어 5월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조작되었다는 발표가 있자 전 국민의 사악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결국 이 분노는 유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고 야당, 재야, 학생들의 민주대연합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교내에서는 4.13호헌 조치에 반발해 14일 채플 후 ‘호헌 철폐를 위한 서울신대 기도회’를 가졌고, 이어 약 30명의 학생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18일 금요채플 이후 단식 농성을 마무리하며 집회를 가졌는데, 약 400명이 참여해 가두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5.18 때는 인부대협 활동으로 성심여대와 함께 광주 망월동을 방문, 전남대에서 연합 추모 집회를 가졌고, 5월 말에는 고대에서 전대협 수도권 출범식에 참여하기도 했다.
2부?이성수 _ 〈학생 민주화운동〉 중에서
3개월 정도 지나서 조장이 면담을 하자고 해서 사무실 한쪽의 상담실로 갔다. 조장은 나를 소개만 해주고 나갔다. 키는 중간 정도에 단정한 옷차림으로 수수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였다. 자신은 정보과 형사로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평국전자에는 학생 출신 여성이 있었는데 몇 번 만남을 했고, 몇몇 여성 동료들이 모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주 정도에는 점심시간에 식당 밥을 문제 삼아 식판을 엎자고 했다. 나도 동참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정보과 형사가 보자고 하니 떨렸다. 나에게 협박이나 의심의 눈초리는 없었으나, 나를 주의 깊게 보고 있으며 여러 정보가 나에게 모이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며칠 후 조장과 과장의 차에 실려 천안의 독립기념관으로 납치당하고 이후 도망치듯 평국전자를 그만두었다. 준비 없이 벌인 파업 시도는 작은 모임과 역량을 잃게 되는 잘못이 컸다. 보다 준비된 역량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부?이성수 _ 〈시행착오〉 중에서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와 선거 연대 단체들과 함께 계양산 골프장 저지 운동과 경인운하 반대, 인천조력발전소 반대와 영리병원 건립 반대 등 많은 사안들을 시민사회와 공조하며 막아냈다. 지방선거 전시민사회 노동계 선배님들과의 다섯 가지 약속인 성모병원노동조합 정상화와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해고자 복지투쟁,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조합의 정상화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트악기 노동조합의 요구인 원직 복지 투쟁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대 운동만이 아니라 남북문제와 인천시사편찬, 무상급식과 각종 위원회에 시민사회 전문가의 행정 참여를 통한 민관 협력을 이룰 수 있었다.
2부?이성수 _ 〈시민사회운동〉 중에서
부평구 청천1동 마을공동체 ‘맑은내마을 주민모임’의 ‘공생(工生) 공생(共生) 맑은내마을’ 사업이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2018년 하반기 도시재생 뉴딜 소규모 재생 사업’에 선정됐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사업이다. 이 사업은 마을 주민과 지역 중소 공장, 상인들이 협업해 마을 기록 남기기, 재생 계획 수립, 마을 관리소 운영, 마을 특화 환경 개선 사업, 마을 축제 기획 ㆍ 개최 등을 추진하는 사업이다. 소규모 재생 사업은 소규모 점 단위 사업에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참여해 도시재생 사업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이후 ‘공생공생, 맑은내마을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법원 등기소에서 가장 긴 이름의 법인 등기를 했다. 마을 활동가로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이 반영되어 ‘나눔과더함 부평사회적경제마을센터’의 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2부?이성수 _ 〈공동체의 온도: 마을의 상처를 꿰매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