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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 - 창비 한국사상선 10
창비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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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서문
역사의 주체로 서다

핵심저작
1장 연암 박지원, 그의 사의식과 인간의 발견
2장 우정론과 그 실현
3장 『열하일기』, 북학과 세계정세 인식
4장 사유의 전환과 인식론
5장 글쓰기의 혁신과 창조적 문학 추구
6장 변혁사상과 경세론

박지원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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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박지원朴趾源
한국 문학사와 사상사에 문제적이고 창의적인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 사상가. 시대를 거스르고 맞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전통 한문학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글쓰기를 추구하였으며, 중세적 사유를 넘는 참신한 인식을 내보였다. 『연암집』의 산문은 미적 성취가 뛰어난 작품으로 연암의 글쓰기 이론과 실천을 보여주고, 『열하일기』에는 문체와 사상에서 실학의 현실주의가 생생하게 구현되었으며, 『과농소초』에는 국가경제 구조 전체, 특히 농업을 비판 설계한 개혁론이 담겨 있다.

편저자 : 김혈조金血祚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한문학의 산문문학에 관심을 두고, 특히 박지원의 산문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정년퇴직 후 ‘연암문학연구원’을 열고 연암 문학을 계속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박지원의 산문문학』, 역서로 『열하일기』(전3권), 교감서인 『정본 열하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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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당대의 글쓰기 풍토를 단번에 뒤엎은, 시대를 앞서나간 문필가 박지원

박지원이 태어난 18세기 조선에서는 지배층의 당쟁과 맞물려 다수 양반층의 몰락이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관직의 수가 한정된 데 비해 양반의 수가 급격히 늘었고 과거시험이 공정한 선발대가 되지 못하다보니 대다수 양반들은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원 또한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아래서 반남박씨 집안의 명성과는 달리 청년기를 내내 곤궁하게 보냈다. 박지원의 대표작 「양반전」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정도를 벗어나 세력가에 아첨할 수도 없고, 또다른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박지원은 끝내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비’로서의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선비의 학문은 농·공·상을 갖추고 있기에 ‘글을 읽는 선비’라면 세상을 경영할 수 있다고 믿었고,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존재인 여성, 노비, 천주교도 등의 처지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자신의 일상을 두루 살피며 쓴 글들은 ‘하찮은 것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대단히 현대적인 산문이라 할 수 있다.
19세였던 1755년 처삼촌 이양천이 귀양을 다녀온 뒤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한동안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박지원은 시종과 이야기꾼을 불러 모아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괴로움을 달랬고, 그때 들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사회비판 의식을 담아 인물전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방경각외전』의 인물전이 여기서 비롯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양반과 하층민 간의 우정을 다룬 글들은 무척 독특하다. 문제는 조선의 현실에서 이처럼 계층 간의 우정이란 구현되기 어려웠다는 점이고, 그리하여 박지원은 서얼들과 깊이 교유하며 우정을 쌓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눈길을 돌려 천하를 주유할 호걸과 함께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박지원이 젊은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이들의 신분은 주로 서얼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포용해주는 연암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이들과 맺은 우정을 담은 글들에는 오래 눈길이 머문다. 「벗을 잃은 슬픔」 「정석치 제문」 등 친구들의 죽음에 부친 애사나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에서 보게 되는 절절한 우정담은 펼칠 때마다 그의 고통과 애정 어린 마음 씀에 공감하게 된다.
이 시기 각별한 벗이던 이희천이 국가의 야만적 폭력으로 죽임을 당했고, 이 일로 큰 충격을 받은 박지원은 세상과 단절한 삶을 살게 된다. 인간관계를 모두 끊고 셋방에 폐인처럼 틀어박혀서는 자신을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더해 당시 세도정치의 권력자이던 홍국영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자, 연암은 황해도 연암협으로 은거하게 된다.
홍국영이 실각한 뒤 한양으로 돌아온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에 동행하게 된다. 그 자신을 조선 최고의 작가로 만든 『열하일기』의 첫 페이지가 쓰이는 순간이다. 박지원은 청나라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청나라를 적국으로만 여기지 않고 세계의 문명국으로 보았으며, 그 세계 전체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의 성실한 자세는 『열하일기』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를 넘으며 더이상 봉건윤리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일까. 박지원은 자신의 글에서 “사상가, 학자, 지식인, 양반의 진지하고 점잖은 모습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경쾌하고 발랄하기도 하고, 진솔하고 구김살 없기도 하고, 호기심으로 좌충우돌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약여하게 묘사했다”.(28면) 박지원은 사절단 여정 내내 자신이 보는 것들을 범상히 넘기지 않고 무척 세밀하게 관찰하기도 했다. 중국의 집 구조, 벽돌을 쌓는 법, 각종 수레의 모습과 사용법, 말 기르는 법 등 중국의 산업과 제도 전반을 『열하일기』 전편에 구체적이고 면밀히 담았다.
『열하일기』에 실린 「허생 이야기」와 「범의 호통」은 문제적이다. 박지원 사후에 그의 손자 박규수가 연암 문집 발간을 제안받았을 때 당시 유학자들의 반응을 가늠해보고 두려운 마음에 거절했을 정도로 이 두 작품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효종 시대의 북벌론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아나키즘적인 사상의 발흥까지, 「허생 이야기」가 지닌 평론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또한 호랑이의 말에 빗대어 당대 인류문명 자체를 비판하는 과감함은 왜 박지원이 근대에 이르러서까지 ‘문제적 사상가’로 주목과 논쟁의 중심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문명 대전환의 방향을 제시한 대문호, 박지원

박지원이 선보인 새로운 문체는 곧 새로운 생각에서 나왔다. 작가 생전에도 파격적이었던 글쓰기는 21세기인 현재까지 빛을 발한다. 이 책을 엮은 김혈조 교수는 서문에서 ‘연암체’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글쓰기 이론을 몇가지로 압축해 소개한다. ‘옛것을 본받아서 새것을 창조하라’ ‘진실하고 독창적인 글을 써라’ 등, 총 일곱가지의 명제는 연암체가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전통의 글쓰기와는 판이한 문예적 글쓰기, 당대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 통찰력을 가진 선비가 지녀야 할 책임감 등 박지원이 바랐던 세계의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연암이 자신의 주체를 자각하고 역사의 주체로 서서 백성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문명국가를 기획하고 건설하려 했던 프로젝터로서 우뚝 섰던 것처럼, 이 시대 문명적 대전환에 값할 가치와 사상, 이를 연암의 저작에서 찾아내고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연암을 다시 살리는 길이고, 이 거칠고 척박한 시대를 부드럽고 기름지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책임은 연암의 글을 읽는 이 시대의 고독한 사람에게 주어진 몫일 터”(46~47면)라고 편저자는 말한다.

문명전환의 과제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의 도전적 기획

지구기후와 자본주의가 불가분의 위기를 맞닥뜨리고 각종 갈등이 팽배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떠맡은 과제는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이 모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환’이라는 강력하게 실천적인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삶의 전망과 지침이 필요하며, 전망과 지침으로 살아 작동할 사상이 절실함을 뜻한다. 그런 사상을 향한 다급하고 간절한 요청에 공명하려는 기획으로서, 창비 한국사상선은 한국사상이라는 분야를 요령 있게 소개하거나 새롭게 정비하는 평시적 작업을 넘어 어떤 비상한 대책이기를 열망하며 구상되었다.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서구사상은 오랜 시간 세계 지성계에서 압도적 발언권을 유지하는 한편 오늘날의 위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대응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그 강력한 위상의 이면에 강고한 배타성과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서구가 가진 위상은 돌이킬 수 없이 상대화되었고 보편의 자리는 진실로 대안에 값하는 사상들의 분투에 열려 있다. 이 시점이야말로 유·불·선의 회통이나 개벽사상 등 한국사상 특유의 사상적 기획이 한국사상이 전지구적 과제를 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보태기에 더없이 적절한 때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 사상가들의 사유에는 역사와 현실을 탐문하며 새로운 삶의 보편적 전망을 구현하려 한 강인한 실천성,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일과 개개인의 마음을 닦는 일이 진리를 향한 단일한 도정에 있다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져 있다. 한반도의 경험과 지혜가 응축된 사상적 활력을 드러내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문명전환의 개벽적인 사유와 실천의 지평을 열어가는 데 의미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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