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기술은 우리를 구했는가, 아니면 바꾸었는가
코로나19를 통과한 일상의 기술들, 그 사회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기술은 남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단순한 보건 위기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감각, 사회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팬데믹 테크놀로지』는 그 격변의 시간을 관통하며 우리 곁에 있었던 다섯 가지 기술-마스크, QR 코드, 화상회의 시스템(Zoom), PCR 검사, 백신-을 다시 호출한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기술의 성능이나 효율이 아니다. 저자는 이 기술들이 어떻게 우리의 몸과 행동을 규율했고, 공공성과 책임, 배제와 불평등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드러냈는지를 차분하게 추적한다. 팬데믹을 ‘사건’이 아니라 ‘경험’으로 기억하려는 시도이자, 기술을 사회 속에서 다시 사유하려는 인문학적 탐색이다.
마스크, 상품에서 공공재로
한때는 개인이 필요에 따라 구매하던 소모품이었던 마스크는 팬데믹과 함께 공공재가 되었다. 저자는 마스크의 긴 역사-가면에서 의료용 보호구로, 그리고 방역의 상징으로-를 짚으며, ‘누가 먼저 쓰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사회적 갈등으로 번져 갔는지를 보여준다. 마스크 착용이 도덕적 의무가 되는 과정, 그 이면에서 발생한 차별과 배제의 장면들은 기술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QR 코드와 증명의 일상화
출입을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야 했던 시간들. QR 코드는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효율적인 도구였지만, 동시에 ‘증명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이 장은 디지털 기술이 안전을 명분으로 어떻게 새로운 경계를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접근성의 문제, 감시와 관리의 일상화는 오늘날의 디지털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연결의 기술, 새로운 단절
화상회의 시스템 Zoom은 거리두기 속에서도 일과 관계를 이어 주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기술이 만들어 낸 새로운 피로와 불균형에도 주목한다. 화면 속 만남은 과연 사람답게 만나는 것이었을까. 연결을 가능하게 한 기술이 동시에 또 다른 단절을 낳는 역설을 통해, 우리는 기술이 인간관계의 질을 어떻게 바꾸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PCR과 백신, 과학과 신뢰 사이
PCR 검사와 백신은 팬데믹 대응의 핵심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장은 과학적 사실만으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검사 결과가 개인의 일상을 규정하는 방식, 백신을 둘러싼 오래된 불신과 갈등은 기술의 성공 여부가 사회적 맥락에 달려 있음을 일깨운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낸다.
기술의 사회사를 읽는다는 것
『팬데믹 테크놀로지』의 가장 큰 성취는 기술을 ‘발명과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역사’로 읽어낸 데 있다. 저자는 특정 기술을 영웅화하지도, 무조건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기술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부담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팬데믹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통해, 기술의 분배와 통제, 책임의 문제를 사유하는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책의 독서 포인트
이 책은 팬데믹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어떤 기술에는 쉽게 적응했고, 어떤 기술에는 불안을 느꼈는가. 일상의 사소한 물건과 시스템이 어떻게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기술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 또한 돌아보게 된다. 인문학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사례 중심으로 서술된 이 책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기술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