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갑질’과 ‘을질’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
국내 기업 노동 분야를 선도해온 변호사가 바라본
직장 내 괴롭힘의 현재와 미래
직장 내 괴롭힘은 더 이상 일부 조직의 예외적 문제가 아니다.
2019년 제도 도입 이후, 괴롭힘은 법의 언어가 되었고, 신고는 일상적 선택지가 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정착될수록 현장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은 분명해졌지만, 동시에 조사 절차의 공정성, 판단의 기준, 제도의 남용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은 그 질문들 앞에서 단호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저자는 괴롭힘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감정의 진폭과 제도의 구조를 동시에 바라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보다 어디서부터 판단해야 하는지를 먼저 묻는다. 법 조문이나 판례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사례들을 통해 괴롭힘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확장되고, 또 어디에서 흔들리는지를 차분히 짚어낸다.
특히 이 책은 ‘괴롭힘’이라는 이름이 붙기 이전의 상태, 즉 제도로 포섭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수많은 괴로움의 층위에 주목한다. 미세한 무시와 배제, 평가와 관계의 긴장, 성과와 정체성의 충돌은 모두 제도 이전의 문제이자, 제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저자는 이러한 회색지대를 외면하지 않고, 조직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범위를 냉정하게 정리한다.
또한 이 책은 피해자 보호와 피신고인의 방어권, 신속한 대응과 절차적 정당성 사이의 충돌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긴장 관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조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의 구조를 해부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괴롭힘 사건이 왜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될 수 없는지, 왜 판단이 곧 윤리의 문제가 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통찰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결국 조직의 문화와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제도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으며, 판단을 대신해 줄 수도 없다. 구성원의 인지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일수록, 조직은 그에 상응하는 대응 감수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현재를 넘어 앞으로의 기업 환경까지 내다보게 한다.
이 책은 답을 빠르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언어와 기준을 제공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둘러싼 논의가 감정과 단정으로 치닫고 있다고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은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