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세 겹의 시간
그 여행의 시작과 끝
「나이트 트레인」에 서술된 시간은 세 겹의 층위를 가진다. 첫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소설가인 ‘나’의 시간, 바로 DAY 9200~9286의 시간이다. 두 번째는 여행기를 표방하는 이 소설의 실질적인 서술 시간인 1999년, 21일 간의 유럽여행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여행기간 동안 ‘나’가 썼던 소설 속의 시간이다. 이 세 겹의 시간은 이 소설을 액자 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액자까지, 세 개의 서사적 층위를 이루며 이어진다.
허구적 서사인 소설과 사실적 서사인 여행기 사이에 놓인 문지혁의 소설 「나이트 트레인」의 독특한 지점은 그 첫 문장에서부터 다시 고찰되어야 한다. '1'로 번호 매겨진 서술이 시작되기 전, 서사에 집중하는 독자가 순간적으로 놓치기 쉬운 그 날짜. 바로 ‘DAY 9200 서울’ 말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다시 첫 문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거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여행 아닌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은, 그의 서사 전체가 하나의 여행기임을 보여주는 한편, 그의 여행이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 종료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25년 전 3주간의 여행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그의 서사가 ‘DAY 9200’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므로 사실 이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을 현재진행형으로 업로드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무려 9200일 동안 지속된 여행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류수연(문학평론가)
25년 전에 시작되어 9286일 만에 마침표를 찍은 그의 여행, 그 종착점은 어디인가? 분리수거를 하며 아내와 함께 하는 일상, 바로 그곳이다. 거기에서 ‘나’는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의 현재를 마주한다. 그것을 환기하는 것은 더 이상 E라는 이니셜로 호명되지 않는 그의 아내 은혜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깨닫는다. 오래전 시작된 그 여행의 진짜 목적, 그것은 바로 ‘고잉 홈’이었음을.
저자의 말
어느 고단한 밤에 눈을 감으면 나는 아직도 유럽 어딘가를 향해 가는 야간열차 3등칸 꼭대기 침대에 누워 있다. 온종일 더위 속에 땀 흘린 몸은 찝찝하고, 덜컹이는 열차는 척추 위로 밤새 선로를 그린다. 깊이 잠들지 못한 채 현실과 뒤섞인 꿈 아닌 꿈을 꾸다가, 눈을 뜨면 열차는 언제나 낯선 도시에 들어서는 중이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거기에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세상의 비밀을 알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과,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의 비밀도.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우리가 발견하는 건 세상의 비밀이 아니다. 오직 우리 자신의 비밀뿐.
결국 그 비밀이 우리를 또 다른 여행으로 안내할 것이다. 당신과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