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지역을 다시 묻다
─ 지역의 뜻과 세계를 보는 눈
이 책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지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세계정치를 지역이라는 눈으로 다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책은 지역을 고정된 땅덩이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계와 인식, 제도와 실천이 쌓이며 만들어지고 바뀌는 단위로 본다. 이 첫 물음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된다.
구성의 장점도 여기서 드러난다. 첫 장은 지역 개념을 풀어 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가 중심 틀의 한계를 짚고 새로운 지역연구가 무엇을 겨냥하는지 또렷이 보여 준다. 지역격, 지역성, 지역색 같은 개념도 이 자리에서 제시되어 뒤의 글들을 읽는 데 길잡이 구실을 한다. 덕분에 독자는 각 장의 논의를 흩어진 주장으로 받지 않고 하나의 큰 흐름 속에서 따라갈 수 있다.
우리 국민에게 이 문제의식은 더욱 절실하다. 강대국 경쟁, 동아시아 질서 변화, 초국경 문제를 날마다 마주하지만, 이를 국가 대 국가의 구도로만 읽기에는 이미 세계가 너무 복잡해졌다. 이 책은 그 복잡함을 외면하지 않고, 한국의 국제정치학이 더 넓고도 세밀한 시야를 갖추기 위해 무엇을 새로 물어야 하는지 차분히 일러 준다.
흔들리는 세계질서를 읽는 법
─ 동아시아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
이 책은 지역 개념을 세운 뒤 곧장 현실 세계의 큰 문제로 나아간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미국이 이끌던 질서 이후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중국의 전통적 질서 구상은 오늘 어떤 뜻을 갖는가 같은 물음이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책은 추상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세계정치가 실제로 어디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붙든다.
구성상 강점은 서로 다른 시선을 한데 묶어 보여 준다는 데 있다. 한 장은 동아시아를 전체와 부분의 관계 속에서 읽어 보자고 하고, 다른 장은 다권역 질서의 도래 가능성을 살핀다. 또 다른 장은 중국적 지역 개념의 역사적 변형을 더듬으며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짚는다. 각 글은 논지가 다르지만, 세계질서 변화 속에서 지역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함께 밝힌다는 점에서 분명한 결을 이룬다.
한국에서 이 논의가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동아시아 한복판에서 세계질서의 충돌을 가장 예민하게 겪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지역을 단지 배경으로 두지 않고 질서 형성의 주된 무대로 읽어 내는 작업은 학문적 의미를 넘어 현실 인식의 힘과도 이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지역연구를 새로 세우는 방법
─ 관계, 해석, 서구 중심 넘기
책의 뒤쪽은 지역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집중한다. 특수한 사례를 다루는 지역연구가 어떻게 넓은 논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지역의 형성과 발전을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또 서구 중심 시각을 넘어서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차례로 묻는다. 이로써 책은 앞선 논의를 받쳐 줄 방법의 문제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부분의 장점은 연구 방법을 딱딱한 절차 설명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역사 재구성의 관점, 관계를 바탕으로 한 지역 형성의 틀, 얽힘의 지역연구 같은 제안이 살아 있는 논쟁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독자는 단지 주장만 읽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역연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책 전체가 이론과 방법을 분리하지 않고 맞물리게 짜였다는 점도 돋보인다.
학계에서 이 대목은 특히 값지다. 지금까지 지역연구는 종종 개별 사례의 축적에 머무르거나, 반대로 큰 이론의 부속처럼 다뤄지곤 했다. 이 책은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다. 지역을 더 넓은 세계정치의 일부로 읽으면서도, 각 지역의 역사와 관계를 지워 버리지 않는 길 말이다.
『세계정치WORLD POLITICS』 시리즈
국제정치에 관한 이론과 같은 기초적인 연구에서부터 군사와 안보, 정치경제, 환경과 과학기술 등의 기능적인 분야와 주요국의 외교정책, 동아시아 국제 관계 등 지역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세계정치』 시리즈는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사회평론아카데미가 펴낸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이 과도한 정책지향성을 극복하고, 세계정치의 보편성과 동아시아와 한국의 경험과 관점을 균형 있게 바라보면서 한국 국제정치학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에 발간된 19권(젠더와 세계정치), 20권(국제정치학 방법론의 다원성), 21권(동아시아의 보편성과 특수성), 25권(국제정치사상: 다원적 접근과 보편적 교훈)은 2014년, 2015년, 2017년 연속으로 세종도서 학술부문(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어 『세계정치』 시리즈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