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1.1. 1. 미국 초기 해운정책의 기초: 차별적 제도와 재정적 현실(1789-1817)
1.1 식민지 시기의 미국해운
독립 이전의 식민지시기 미국에서는 해양 무역이 일찍부터 발전하였고 해운은 식민지의 경제적 주요 요소였다. 비록 영국 상인들이 미국내 경쟁자들과의 경쟁을 제한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기에 식민지의 해양 활동에 일부 제한이 있었지만, 의회는 식민지 주민들이 그들의 무역을 발전시키도록 허락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상업적 이유와 국방상 목적의 결합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해양 무역을 억압하게 되면 식민지 경제를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영국에서 제조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감소했을 것이다. 식민지로의 높은 수출량은 잉글랜드 제조업체에게 큰 이익을 주었고 영국 전체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또 미국 독립전쟁 당시 식민지 조선업은 영국 국적 등록선박의 약3분의1을 공급하였다. 당시 영국 해군은 선원 양성을 교육기관이 아닌 상선에서의 승선실습을 통한 양성에 의존했기 때문에, 식민지 해운의 쇠퇴는 전시에 영국해군이 활용할 수 있는 훈련된 선원의 풀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식민지에서 해양 무역의 감소는 선원들을 다른 직업으로 내몰게 되는 결과를 유발하게 되고 젊은 남자들이 선원이 될 수 없도록 방해했다. 따라서 상업적 및 안보적인 고려에 따라서 실시되는 지금까지 미국 해사정책의 기초가 되는 요소들은 식민지 시기에 유래한 것이었다. 즉 국방과 상업 양면을 고려하여 영국이 식민지 무역과 조선업에 간섭하지 않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 해운 및 조선 산업의 발전을 허용했던 정책들은 결국 식민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영국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식민지 경제의 번영은 독립군에게 자금을 제공하였고, 식민지 조선소는 전쟁 노력에 필요한 상선과 군함 모두를 생산했다. 식민지의 무역 활동은 영국과의 해상 전투를 위한 해군과 민간 전투선으로 함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선박과 선원 풀을 제공했다. 미국상선대가 조직되고 최초로 참여한 전쟁은1775년부터1783년까지 계속된 미국 독립전쟁이었다. 1775년6월12일 메인주 마키아스에서 시민들이 영국의 스쿠너군함인 HMS Margaretta을습격하여이를나포했다. 필요한보급품이절실한상황에서해당군함을보스턴으로가져가영국병영을만들목재를수송하고필요한물품을받거나, 그렇지않으면굶는것중선택하라는것이었다. 그들은독립이라는대의를선택하고영국군의명령을무시하고싸우기로선택하였다. 이소식이보스턴에전해진후, 대륙회의와여러식민지는사략선(privateers)이라불리는민간소유무장상선에포획권(Letters of Marque)을발행했으며, 이들은적의상선을약탈하기위해전함으로장비를갖추었다. 이러한무장민간상선은미국동해안전역과대서양건너편에서영국의보급망을교란시켰고, 미국상선대의전시역할은여기에서시작되었다고할수있다. 이는미국정부기관인해안경비대(1790)와미해군(1797) 두기관보다앞선일로민간상선대(Merchant Marine)가해군이나해안경비대와같은공적인역할을수행하게된이유를설명하는데역사적근거가되고있다. 따라서 해사산업은 미국의 탄생에 전략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 역할의 본질은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