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 책은 삶의 빛나는 무대에서 밀려나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마다의 이유로 짙은 겨울을 걷고 있는 이들은, 상처를 숨기는 대신 서로의 아픔을 가만히 비춰보며 천천히 봄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상처를 마침내 언어로 꺼내어 놓는 인물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스스로의 슬픔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슬픔은 우리를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서로를 가장 깊게 이어준다’는 소설 속 말처럼, 지금 캄캄하고 추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책은 가장 따뜻한 손길이 되어줄 것이다.
- 페스트북 편집부
책 속에서
피아노 없는 삶은 색을 잃은 흑백 필름처럼 무미건조했고, 하루하루는 망가진 톱니바퀴처럼 겉돌 뿐이었다. 살아 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져 갔다. 숨을 쉬고 걸음을 옮기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몇천 년 전에 얼어붙은 채 육신만 남아 어두운 얼음 속에 잠든 차가운 미라처럼 쓸쓸히 비참한 시간에 갇혀 있었다.
- p.21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지만, 마음 깊은 어딘가에 아주 희미한 불빛 하나가, 마치 잊고 있던 약속처럼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이 고통과 슬픔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p.94
종혁은 조용히 문을 열고 작업실을 나섰다. 차갑던 공기가 다시 한번 그의 뺨을 스쳤지만, 이번에는 그 바람 속에서 묘한 생기가 느껴졌다.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잠그고 천천히 길을 걸어 나갔다.
- p.129
겨울의 긴 어둠을 지나 마침내 봄날의 환한 빛 속으로 걸어 나오며, 진형은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지만 그 상처를 안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움트고 있다는 것을.
- p.150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고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예외였다. 세상은 어느새 몇 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냈지만, 소영의 마음속 시간은 여전히 엄마가 떠난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 그들의 진심 어린 위로에도 소영은 그저 희미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 p.175
‘그러던 어느 날, 제 앞에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잿빛이던 제 세상에 처음으로 색이 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신의 작은 미소와 친절한 말 한마디가 마른 땅에 내린 봄비처럼 제 마음에 스며들었지요.’
- p.186
언젠가 겪었던 가장 차가운 슬픔을 지나, 이제는 누구보다 따뜻한 미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서로의 손을 잡아준 네 사람의 앞날에는 분명 희망의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마치 방금까지 함께 바라보았던 촛불처럼, 때로는 흔들릴지라도 쉽게 꺼지지 않을, 은은하고도 강인한 빛이었다.
- p.324
네 사람은 굳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깨달았다. 지난날의 모든 상처와 슬픔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아픔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 있음을. 슬픔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을 갈라놓는 고통이 아니었다.
- p.335
미국에서의 삶이 길어질수록 한국의 독자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물리적 거리가 생기니 오히려 본질이 보이더라고요. 제가 건네고 싶은 건 어떤 유용한 ‘정보’가 아니라 곁을 내어주는 ‘마음’이라는 걸요.
- 작가 인터뷰
슬픔이란 본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견뎌지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조언을 들을 때보다, 내 고통이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고 느낄 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요. (...) 치유는 답을 얻는 순간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회복되는 찰나에 시작된다고 믿어요.
- 작가 인터뷰
사람들이 상담실이나 책을 찾을 때, “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잠시 쉬고 싶어서” 올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치유가 극적이거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세수하거나 밥을 먹듯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작가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