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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원만 빌려줘
(알 수 없음)
우리가 될 수 없는

에세이 마침표도 없이,
해설 끝끝내 ‘우리’가 되지 않음으로써―최진석
저자 소개
저자 : 안보윤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 7의 고백』 『밤은 내가 가질게』, 중편소설 『알마의 숲』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여진』 등이 있다. 자음과모음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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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참혹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부서진 자들이 취하는 아득한 거리감

첫 번째 소설 「이만 원만 빌려줘」는 자살을 결심한 ‘나’가 온라인에서 만난 김동주라는 사내와 동반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 떠나온 여정을 진술한다. 숱한 가짜 죽음 희망자들을 만나며 타인의 불행을 구경해온 ‘나’는, 현실의 모든 끈을 끊어낸 듯한 동주에게서 진짜 절망을 보게 된다.

김동주 씨는 그들과 달랐어요. 현실과 연결된 수많은 실이 있다면 김동주 씨는 그걸 차근차근 모조리 잘라내며 걸어온 사람 같았죠. 실밥 뭉치처럼 곳곳이 비어서 언제 흩어져도 상관없다는 듯 무감했어요. 보자마자 알겠더라고요. 이 사람은 진짜구나. 이번에는 진짜, 끝을 낼 수 있겠구나.
_ 「이만 원만 빌려줘」 15~16쪽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기묘한 사건 하나가 숨겨져 있다. 동주가 ‘나’를 만나기 전, 어린아이를 유괴하였고 그가 요구했던 몸값이 고작 ‘이만 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액수는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로는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의 지독한 부채감을 증언한다.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는 불모의 세계에서 작품은 값싼 위로를 건네는 대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다 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으라 종용한다. 그리하여 타인을 끝내 알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남겨두는 이 거리 감각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존엄의 단초를 발견한다.

씁쓸한 교차로에서 말없이 스쳐 가는
번역되지 않은 고통들

숫자로 치환된 세계의 폭력성은 두 번째 소설 「(알 수 없음)」의 주인공 오영의 일상을 통해 상시적인 비극으로 변주된다. 좁은 고시원을 전전하는 오영은 스스로를 “칠천 원짜리”라 자조하며 살아간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난 동생 이서의 죽음 앞에서도, 오영은 타인에게 감정을 쏟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견딘다.

약한 것들, 가여운 것들, 불쌍한 것들, 그런 것들의 미래는 다만 잘 썩고 잘 타는 것. 향이 코끝에서 타고 있는 것처럼 눈이 맵다.
_ 「(알 수 없음)」 54쪽

이 작품은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오영의 복수극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서늘한 자각이 서사의 완결을 계속해서 유예한다.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기어코 ‘알 수 없음’으로 내버려두겠다는 윤리적 안간힘. 이러한 모럴이 작품이 마무리된 뒤에도 독자를 끊임없이 사유하게 만든다.

파국과 절망의 기록을 통해
헝클어진 세계에 남기는 연대의 단초

세 번째 소설 「우리가 될 수 없는」은 유괴범 동주로부터 이만 원이라는 몸값으로 풀려난 뒤 어른이 된 정우의 시선으로 세계를 응시하는 이야기이다. 다만 정우가 겪은 진정한 외상은 동주가 아니라, 어머니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정우의 어머니는 정성껏 키워낸 제 아이가 고작 이만 원으로 환산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을 종종 떠올린다.
―네 차림새가, 네 몰골이, 네가 얼마나 거지 같아 보였으면 고작 이만 원을 달라고 하니.
엄마는 놀이터 흙바닥이나 마트 선반에서 내 손을 거칠게 뜯어내며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더럽게.
그러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내뱉곤 했다.
―제발 이만 원짜리같이 굴지 좀 마.
_ 「우리가 될 수 없는」 112쪽

삶의 가치와 의미가 화폐로 계산되고 환산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이조차 잔혹한 가해자로 전락하고 마는 세계에서, 작가는 “진심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사람을, 세계를, 무수한 선택 속에 숨어 있는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실의와 좌절로 가득한 세 편의 이야기에 앙금처럼 가라앉는 조용한 희망이 있다. 저자가 언급한 “반드시 회복되리란 믿음”, 안보윤의 이번 작품에서 그 희망이 드러나는 부분을 찾는 것도 묘미일 테다. 그렇게 독자는 “부서뜨리기 위해 믿고 믿기 위해 부서뜨리는 기이한 반복 속” 추락하는 일 외에, ‘연대’라는 선택지가 있음을 깨닫는다.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는 묵언(默言)과 절망의 기록을 통해 가장 역설적인 윤리와 협력의 실마리를 벼려내는 것. 소설가 안보윤의 신작이 우리에게 건네는, 묵직하고도 서늘한 통찰이다.

작가의 말

진심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사람을 세계를 무수한 선택 속에 숨어 있는 선의를 믿어야 한다, 믿어야만 쓸 수 있다, 반드시 회복되리란 믿음이 있어야만 마음껏 부서뜨릴 수 있다, 부서뜨리기 위해 믿고, 믿기 위해 부서뜨리는 기이한 반복 속에 나는 있다,
― 에세이 「마침표도 없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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