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산 이오덕
그가 남긴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기록
이 일기는 이오덕이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살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써 내려간 42년의 기록이다. 그가 남긴 일기 아흔여덟 권에는 자신이 뜻한 바대로 살고자 한 한 사람의 절실함과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43년 동안 초등 교사로 살아온 그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으며, 어린이문학과 우리말 살리는 일을 하며 세상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간 그의 일기는 시대를 기록한 보고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은 교사를 그만두던 1986년까지 교육 일기, 글쓰기 교육과 우리말 바로 쓰기 같은 사회 운동을 활발하게 하던 1998년까지, 무너미로 옮겨 가 돌아가시던 2003년까지, 이렇게 모두 3부로 편집했다.
꾹꾹 눌러쓴 일기에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한없이 여린 마음이, 하루하루를 시인의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고생하는 가족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 인간 이오덕이 오롯이 담겨 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하지만 ‘내 갈 길을 가야지’ 하며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마지막 병이 찾아오고 죽음이 가까이 오는 순간에도 깨어 있고자 하는 마음으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한 걸음씩 걸어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먼저 살다 간 어른의 하루하루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98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 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나 다시 한 권으로 읽는 《이오덕 일기》를 펴낸다. 이제 선생님 일기를 한 권 정본으로 세상에 내놓는 마음이라 홀가분하다. 만드는 과정이 길고 지난했던 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지금은 4시 5분 전,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때 묻고 찌그러진 조그만 책상들이 60여 개 나란히, 꼭 아이들이 귀엽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뒤편에는 오늘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다. 거기에는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온갖 모습들이 재미있는 선과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전시판 밑에는 조그만 손으로 주물러 짜서 걸어 놓은 걸레가 널려 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온갖 희망과 걱정과 슬픔을 안고 67명의 어린 생명들은 이 교실을 찾아올 것이다. 교사라는 내 위치가 새삼 두려워진다. 이렇게 괴로운 시대에 내가 참 어처구니없는 기계가 되어 어린 생명들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된다.
두고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_1962년 9월 21일, 15쪽
42년의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_1986년 2월 27일 일기에서, 294쪽
지금 저녁 10시 반, ‘밖에서 들어온 말의 문제’란 원고의 중요 부분을 거의 다 썼다. 모두 약 190장. 앞으로 10장 정도만 쓰면 한자 말과 일본 말 문제는 다 쓰게 된다. 이것을 발표할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아무 데도 싣겠다고 하는 데가 없다. 없어도 계속 써야 한다. 안 되면 조그만 책자로라도 만들고 싶다. 우리 말을 지키고 살려 나가는 문제가 얼마나 큰가를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내 남은 목숨을 여기다 걸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제저녁에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사람도 못 쓰는 시, 나만이 쓰는 시를 꼭 쓰고 싶다. 내 외로움, 아픔, 그리고 고난당하는 생명을 나는 노래하고 싶다. 내가 아니면 그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짓밟혀 죽어 가는 생명들을 나는 노래해야지. 아름다운 그 생명을 노래해야지.
_1988년 2월 14일 일기, 339-340쪽
오늘 종일 집에서 작품을 읽으면서, 내년에 옮겨서 살게 될 곳과 집을 생각해 보았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좀 넓은 방 하나와 조그만 방 하나 그리고 부엌과 화장실, 이런 집을 다음 달에는 지어 놓고 싶다. 큰방에는 책을 모두 갖다 놓고, 작은방은 내가 자는 곳이다. 겨울이면 이 작은방에 장작으로 군불을 때 놓고, 온종일 이불 덮어쓰고 책 읽고 글 쓴다. 남쪽으로 난 영창은 나지막하게 해서 방바닥이 아침부터 환하게 볕이 들어오도록 하고 싶다. 여름이면 채소를 가꾸고, 가을이면 산에 올라가 밤을 줍고…. 내가 평생 그리워하던 그 삶을 70 고개를 넘어서야 실현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어린애처럼 가슴이 뛴다. 아, 어서 한 해가 갔으면 좋겠다.
_1995년 1월 29일 일기, 438쪽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또 다른 한평생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또 한평생을 살았으니 그것을 대강이나마 적는다.
“선생님, 더 얘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암이란 말 듣고 내 마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아주 평온했어요. 하루하루 쇠잔해져서 이제는 다시 일어날 수 없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죽을 준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살 만큼 살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연과 헛된 욕망 다 버리고 또 다른 저세상으로 가는 것 참 즐거워요. 내가 죽을 때는 조금도 슬퍼 말고, 모두 웃으면서 흙에 묻어라, 그날은 기쁘게 잔치를 해라고 해요.”
아직도 오늘 하루 내 인생은 많이 남았다.
집에 와서 누워서 음악을 듣고, 하루 일을 대강 적고, 정우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이야기를 하고, 발 목욕을 하면서 앞으로 서둘러야 할 일을 의논했다. 내 삶의 한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_2003년 8월 19일 일기, 575-5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