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개별 기기의 성능에서 사용자 경험의 개선으로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산업에서 기능과 서비스를 대폭 확장하고 AI까지 적극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경험이 기대만큼 달라지지 않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는 사용자 경험의 문제를 단순히 개별 기술의 완성도나 기능의 확장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기업들 사이에서 단편적으로 경험의 외피를 다듬는 방식으로는 구조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확산하면서, 더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일상에서 우리는 매일 운동 기록을 스마트워치로 측정해 분석 결과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사무실에서 태블릿으로 하던 작업은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이어간다. 길을 걸어가며 습관처럼 이어폰으로 듣던 음악은 집에 도착하면 오디오 시스템으로 연결하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거나 선명한 화면의 TV로 가족들과 함께 본다. 사용자가 체감하는 하나의 경험은 이미 여러 기기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다중 기기 환경에서 사용자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개별 기기의 성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이들을 처음부터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의 설계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각 기기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며 각자도생하는 가운데, 사용자는 기기 간의 끊어진 흐름을 직접 연결해야 하는 시스템 통합자 역할을 강요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기 수의 증가는 곧 사용자가 감당해야 할 조작과 판단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기술의 풍요가 오히려 경험의 복잡도를 높이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저자들은 기기 간의 단절은 단순한 사용상의 불편을 넘어 고도화된 기술의 잠재력이 실제 사용자 경험의 가치로 온전히 전환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개별 기기가 아니라 사용자의 목적을 중심에 두고 서로를 인지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기 연합으로의 전환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왜 AI에게 전적으로 판단을 맡기지 못하는가
지금까지 대부분의 서비스 구조에서 AI는 자동화 도구에 가까웠다. 검색을 대신하거나 추천을 제공하고 문장을 생성하거나 특정 작업을 자동으로 실행하는 방식이다. AI는 사람이 정해 놓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며, 무엇을 언제 실행할지 이미 결정된 가운데 그중 일부를 빠르게 처리하는 부품에 불과했다. 그 결과 개별 단위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나, 분리된 프로세스를 통합하고 전체 흐름을 조율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저자들은 이러한 구조에서는 AI가 전체 사용자 경험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조율자가 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단위 업무의 자동화만으로는 통합된 경험 구조를 구축할 수 없으며, 경험의 혁신을 위해서는 기술적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사용자 행동 전반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의 핵심은 AI가 단순히 더 많은 일을 기계적으로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자의 목적을 기준으로 판단이 이루어지는 지점을 서비스의 바깥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이는 어떤 기능을 실행할지, 어떤 서비스를 거쳐야 할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특정 결과를 다음 단계로 넘길지를 개별 서비스의 논리가 아닌 전체 경험 흐름의 관점에서 결정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상위 구조가 전제될 때, AI는 특정 기능의 자동화를 수행하는 도구를 넘어 여러 자동화 요소를 유기적으로 엮어 하나의 완성된 경험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AI 오케스트레이션은 개별적인 자동화 기술을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교하게 설계된 자동화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개별 서비스 안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자동화 기능이 풍부할수록 오케스트레이션이 전체 경험의 흐름을 지휘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재료도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자동화된 재료들만으로는 전체 경험의 완성도를 보장할 수 없으며, 그 재료들을 어떤 순서와 조건으로 배합하여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상위의 조율 구조가 필요하다. 이 상위의 통제 구조가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AI 오케스트레이션의 실체다.
기술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용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법
AI가 사용자의 목적을 기준으로 여러 서비스와 기능, 상태를 엮어 경험 전체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구조가 보편화되면, 단순히 기능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경험의 차원이 근본적으로 전환될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는 경험 환경의 물리적 확장이다. 미래의 사용자 경험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경계를 넘어 물리적 공간과 상황 전반으로 확장될 것이다. 생활 환경 지능의 도래로 기존의 화면 중심 인터페이스는 음성이나 시선 혹은 제스처 같은 다양한 감각이 융합된 멀티모달 환경으로 진화한다. 기술이 환경과 맥락 속에 내재화되어 사용자가 경험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비가시적 기술 환경이 구축된다.
둘째는 산업 생태계의 재편, 즉 서비스 공생이다. 경험의 기준이 기능에서 목적으로 바뀜에 따라, 단일 기업이나 서비스가 독자적으로 완결된 가치를 제공하는 방식은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 대신 이종 산업과 서비스가 표준화된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실시간 교환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초연결 연합 모델이 부상할 것이다. 시장의 경쟁 단위는 개별 기능의 우열에서 어떤 연합체가 사용자의 목적을 단절 없이 완결하는가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만약 사용자가 더 이상 기술을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되고, AI가 사용자의 행동을 예측해 경험의 흐름을 설계하는 환경이 실현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개인은 기술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기업은 이러한 환경을 이용해 사용자의 선택을 교묘하게 유도하며 이익을 극대화하려 들지 않을까? 나아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주체가 사회와 개인의 행동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
저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기술들을 통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기술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기술을 주체적으로 활용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