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어휘 설명에 곁들인 대한민국 현대사.
이 땅의 민주주의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왔는가!
‘공화국’의 어원이나 유래를 설명하기는 쉽다. ‘삼권분립’이나 ‘대의제’를 사회교과서처럼 건조하게 서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휘들이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고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설명하는 건 간단치 않다. 해방 직후부터 12.3 불법계엄까지 이어져온 우리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다뤄야 하기 때문인데, 글쓴이는 마치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듯 편안한 말투로 그 사건들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재현해낸다.
“삼권분립이 없는 세상이란 어떤 곳일까?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통해 삼권분립 원칙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어. 이른바 ‘국가긴급권’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비상국무회의가 국회 기능을 대신했어. 심지어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지명하고 법관을 임명하는 터무니없는 권한까지 부여했지. 삼권분립의 원리가 완전히 깨져버린 거야.” (‘삼권분립’ 중)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만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계엄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24년 12월 3일 밤이었어. 윤석열 대통령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했던 거야. 처음엔 다들 ‘이게 실화인가?’ 싶었지. 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없는 불법적인 계엄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린 시민들은 곧바로 국회로 몰려갔고, 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냈어. (…)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는 언제든 누구에 의해서든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켜낼 더 견고한 방어막이 필요하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지.” (‘계엄’ 중)
이런 흐름은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이어진다. 글쓴이는 ‘혁명’ ‘쿠데타’ ‘탄핵’ ‘국가폭력’ ‘시민혁명’ ‘저항권’ 등을 설명하면서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소환한다. 이를 통해 각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다.
어휘 설명에 현대사 수업을 곁들인 듯한 서술 방식을 통해 글쓴이가 전달하려 하는 바는 명확하다. 사전에 겨우 몇 줄로 설명되어 있는 그 말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그 어휘에 깃든 정신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화국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공화주의에 대한 위협을 방관하지 않고, 헌법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헌법 정신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 어휘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올바른 이해가 민주주의의 강력한 버팀목이 되는 셈이다.
미래의 시민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
청소년은 정치와 무관하지도, 무관심하지도 않다!
정치 주체로서 시민의 능동적 역할은 정치적 격변기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일상적 관심과 감시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고 건강한 정치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머지않아 ‘유권자’가 될 청소년 독자들에게 정치 어휘에 담긴 정신과 가치를 알려주는 궁극적 목적 또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시민은 누군가의 지시나 통치를 덮어놓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야.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과 주장을 펴면서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지. 권력자가 잘못하면 매섭게 비판하고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며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이들이야.” (‘국민과 시민’ 중)
“생각해보면 선거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 독립된 개인으로 참여하는 것도, 그 표가 모여서 세상을 움직이고 바꿔낸다는 것도! 그러니까 유권자들은 열심히 선거에 참여할 의무가 있어. 특히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꼭 참여해야 돼.” (‘선거’ 중)
물론 청소년들의 정치적 관심이나 참여가 꼭 투표권과 연동되라는 법은 없다. 만18세 이전이라도 얼마든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어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옳지 않다. 건강한 정치의식이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을 터, 청소년들에게는 적절한 정치적 경험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알아서 그렇게들 하고 있다. 과거 그들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12.3 불법계엄 직후 5만여 명이 참여했던 ‘청소년 시국선언’을 언급하며,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뭘 안다고 그러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시국선언은 꼭 공부를 많이 했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어른들만 하는 건 아니야. 청소년도 나름의 생각과 지식이 있고, 무엇이 옳은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어. 4.19 혁명 때는 전국에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시위에 나섰지. 5.18이나 6월항쟁 때도 마찬가지였고. 청소년들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기들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권리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두자.” (‘시국선언’ 중)
아마도 책의 주제에 해당할 이 대목은 글쓴이가 미래의 시민들에게 건네는 든든한 격려이자 당부다. 어른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