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강원의 풍경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 책은 강원을 그저 아름다운 곳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동해 논골담길의 경사는 전망 좋은 언덕일 뿐 아니라 그 비탈을 따라 밀려 올라가야 했던 사람들의 생활사이며, 정선 아우라지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절경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가 된다. 풍경은 언제나 사람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영월. 이 책에서 그곳은 화제의 배경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로 읽힌다. 장릉과 엄흥도의 묘를 따라 이어지는 이야기는 단종의 비극을 과장되게 소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엄흥도의 선택이 어떻게 한 고장의 기억으로 남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 흐름은 태백에 이르러 더욱 깊어진다. 산업유산의 공간인 태백은, 이 책에서 강원의 검은 시간과 흰 시간이 함께 포개진 장소로 읽힌다. 저자는 철암 탄광의 역사를 떠올리며 검정의 묵은 때가 벗겨진 뒤의 내일을 생각하는 한편, 겨울이면 주차된 차의 문을 열지 못할 만큼 눈이 쌓이는 고원 도시의 생활 감각을 생생하게 불러낸다. 태백의 겨울 하늘 아래서 새하얀 눈과 순도 높은 검정 밤하늘, 그 위로 쏟아지는 별빛의 향연을 마주하는 장면은 이 책 전체에서도 유난히 오래 남는 대목이다. 강원의 설경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렇게 혹독한 계절을 견디며 살아온 삶의 무게가 그 안에 스며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놓치지 않는다.
강원을 이루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힘은 강원을 자연 풍경의 집합이 아니라 문화와 생활의 총체로 그려낸다는 데 있다. 그 중심에는 강릉단오제가 있다. 강릉단오제는 외지인의 눈에는 며칠간의 축제처럼 보이지만, 강릉 사람들에게는 계절의 리듬과 지역의 신앙, 시장의 활기와 사람들의 체취가 한꺼번에 살아나는 생활의 장이다. 단오절의 술을 빚기 위한 봉정미를 모으고, 수리취떡을 나눠 먹고, 남대천 둔치로 며칠씩 출석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들은 왜 이 축제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한 지역의 삶 그 자체인지 절로 느끼게 한다.
강릉의 커피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커피 유니버스’라는 제목이 과장이 아닌 것은, 저자가 강릉의 커피를 단지 카페 몇 곳의 성공담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안목해변의 보잘것없는 커피 자판기에서 시작된 전설, 안목 커피 거리의 성장, 강릉을 ‘커피 도시’로 만들어낸 축제와 로스팅 문화, 그리고 더덕에서 방점을 찍는 온갖 라테의 등장까지, 이 책은 강릉의 커피를 한 도시의 취향과 시간이 빚어낸 독특한 생태계로 읽어낸다.
이 책은 강원으로 들어가는 길 또한 섬세하게 조명한다. 옥계, 한계령, 내린천, 홍천의 휴게소들은 목적지로 가는 중간 정차지가 아니라 공기의 밀도와 빛의 결이 바뀌는 경계의 장소이고, 예밀리의 포도 향과 예밀 와인은 운탄고도의 산길 한복판에서 농밀한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장면이 된다. 예밀리가 단순한 경유지가 아니라 오감이 깨어나는 목적지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감각은, 이 책이 왜 평범한 여행서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원의 절경에는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강원의 풍경은 엽서처럼 납작하지 않다. 경포호와 향호, 청초호와 영랑호, 송지호와 화진포 같은 석호들은 고요한 물빛 뒤에 바다의 기억을 품고 있다. 물은 잠잠하지만, 그 안에는 바다였던 시간과 육지로 붙잡힌 시간이 함께 잠겨 있다.
육백마지기와 안반데기, 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언덕 삼대장’은 이 책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살아난다. 평창 미탄면의 육백마지기에는 샤스타데이지와 하늘과 구름, 청옥산과 탐방객의 움직임이 한 장면 안에서 겹쳐지고, 안반데기는 우묵하고 널찍한 지형이란 이름의 유래부터 별 보기 명소이자 차박 성지로서의 현재까지 함께 품는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또 어떤가. 여름의 배추밭 장관만이 아니라 사륜구동 차량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오르는 길의 난이도와 정상에서 한꺼번에 열리는 광활한 파노라마가 강원의 높은 얼굴을 드러낸다. 이 장면들은 예쁘다기보다 압도적이다. 척박한 토양, 높은 고도, 강한 바람과 극단적인 계절이 이 풍경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가 남긴 강원의 이미지처럼 이 책의 문장들도 감정을 함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바다와 호수, 고원과 휴게소, 축제와 탄광촌이 각자의 속도로 스며들며 하나의 분위기를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강원은 더 이상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라, 높은 곳과 깊은 곳, 검은 삶과 흰 계절, 축제의 열기와 쇠락의 그림자, 커피 향과 흙냄새가 함께 뒤섞이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 책은 강원을 ‘소개’하기보다 강원이라는 장소를 다시 ‘읽게’ 만든다. 그야말로 ‘모든 날의 강원’이다.
추천사
이재후 (KBS 24기 아나운서)
매주 금요일 새벽, KBS 본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뮤직뱅크에 출연하는 자신의 가수를 응원하려는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이다. 이 책은 그 줄과 닮았다. 강원의 산하를 향한 사랑으로 펄펄 끓어오른다. 눈부신 설악과 장엄한 태백. 산 하나, 언덕 하나 버릴 곳 없는 강원에서 우리 만납시다, 뜨겁게.
이지연 (KBS 26기 아나운서, MC)
그는 내가 아나운서로 첫발을 내디딜 때 만난 첫 사수였다. 일에는 엄격했고 마음만큼은 늘 진심이었다. 강릉에서 제주로, 다시 강릉으로 이어진 그의 삶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참 영리하게도, 또 용감하게도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가족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유연함을 유약함으로 말할 줄 아는 낭만파. 그의 따뜻하고도 냉철한 시선으로 발견한 강원의 매력 속으로 독자 여러분도 한번 깊이 빠져보시길 권한다.
한석준 (KBS 29기 아나운서, MC)
모든 것은 스토리다. 제품에도, 서비스에도, 심지어 사람에게도 스토리가 필요한 시대다. 강원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한 도시의 골목에, 한 마을의 풍경 속에 어떤 스토리가 숨어 있을까. 이 책에 담긴 이야기의 10퍼센트만 알고 있어도 당신은 이미 강원도를 잘 아는 사람이다. 아직 아니라면, 지금부터 강원도를 알아갈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다이어리를 펼칠 것이다. 강원도로 떠날 수 있는 날을 찾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