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나만의 리듬으로 걷는 도쿄,
커피 한 잔에 담긴 우연의 기록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대신 발길 닿는 대로 훌쩍 떠나는 여행이 있다. 떠나기 전날 겨우 짐을 꾸리고, 바디용품은 여행지에 도착해서야 구입하고, 걷다가 피곤하면 구글맵에 ‘コ?ヒ?(커피)’를 검색해 리뷰만 살펴 카페 문을 여는 것. 저자 손정승의 도쿄 여행은 그런 식이다. 그에게 도쿄는 여느 유명 관광지처럼 소화하기 버겁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흥미를 끄는 도시다. 현실에서 버려지지 않는 마음이 있을 때, 물리적 거리를 두면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비행기표를 끊게 만드는 곳. 그렇기에 저자에게 도쿄는 탈출지가 아니라 회복지다.
그런 도쿄에서의 카페는, 여행이라는 ‘쉼’ 속에 다시 한번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한다. 굳이 유명 가게를 찾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저자는 아침 카페에서는 ‘모닝구 셋토’를 먹으며 전날의 일기를 마무리하고 하루 예산을 점검한다. 오후 카페에서는 발의 피로를 녹이며 주변 사람들을 관망한다. 밤의 카페에서는 하루를 무사히 보낸 안도감을 타인과 조용히 나눈다. 마스터가 내려주는 드립 커피를 마실 때도 있지만 체인 커피의 익숙함에 편안해지기도 하고, 돈이 떨어지는 여행 끝 무렵에는 편의점 커피도 충분한 낭만이 된다. 그때의 카페는 도쿄를 통째로 들여다보는 창이다.
카페 밖에서도 여행은 계속된다. 음반 가게를 순회하며 좋아하는 밴드의 음반을 찾고, 작은 잡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빈티지 찻잔을 고른다. 꽃집에서 미모사 한 단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정주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도쿄의 복잡한 전철 환승에 진땀을 빼고, 카페에서 빈 잔을 치워가는 직원의 의도를 오해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여행자로 돌아온다. 저자의 도쿄는 그 두 곳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저자가 도쿄에서 모아 온 기억들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평범한 장면들 안에 도쿄라는 도시의 결이, 그리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려는 한 사람의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남는 것은 카페도 도쿄도 아닌, 발걸음을 조금 늦추고 걷는 한 사람의 뒷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