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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거대한 교체
망각의 공장
배제 체계
편리한 거짓말
뿌리 찾기인가?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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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소피 베시Sophie Bessis
역사학자이자 ‘지중해의 양심’으로 불리는 비판적 지식인. 파리 1대학교(판테온-소르본)에서 ‘북반구-남반구 관계와 발전의 경제학’을 가르쳤다. 초기에는 경제적 불균형과 식량 안보 문제에 집중했으나, 점차 역사학과 문화비평으로 지평을 넓혀 서구 문명의 위선적 보편성과 탈식민주의 담론을 정교하게 다듬어왔다.
또한 국제인권연맹FIDH 부사무총장을 역임하며 이론적 비판을 넘어 실재하는 인권 문제와 여성 권익을 위해 투쟁해왔다. 이는 그의 글이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에 발을 붙이게 된 중요한 배경이다. 유네스코UNESCO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의 자문가로도 활동하면서 발전도상국들의 사회 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1947년 튀니지 카르타고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의 배경은, 서구가 전유한 ‘유대-기독교’라는 개념 속에 매장된 ‘유대-아랍’의 기억을 복원하고, 오늘날의 이스라엘인(신히브리인)과 역사적 유대인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포착해내는 날카로운 통찰의 원천이 되었다.
2000년에 펴낸 『서구와 타자들, 우월주의의 역사L’Occident et les autres, histoire d’une suprematie』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전문 학술 활동 외에도 파리에서 발행되는 아프리카 전문 시사주간지 『죈느 아프리크Jeune Afrique』(젊은 아프리카)의 편집국장을 지내는 등 비판적 저널리즘을 통해 대중의 정신자세를 일깨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역자 : 주명철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로 한국서양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40여 년 가까이 프랑스 혁명과 18세기 사회를 연구해왔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시리즈(1, 6권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5, 8, 9권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를 비롯해 『서양 금서의 문화사』, 『지옥에 간 작가들』, 『파리의 치마 밑』,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과 마리 앙투아네트 신화』, 『계몽과 쾌락』,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등이 있고, 『새로 쓴 프랑스 혁명사』(2024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이야기와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프랑스 혁명』(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 등 앙시앵레짐과 프랑스 혁명 관련 책을 비롯해 『빅 아틀라스』(2026),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세계전쟁사』(2025), 『기술 봉건주의』(2025) 등의 교양서를 여러 권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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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서구의 정체성 담론 뒤에 숨겨진 위선을 이토록 차갑고 정교하게 도려낸 책은 없었다. 현재의 중동 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지침서.
『르 몽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 도구로 타락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선택적’으로 기억하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보고서.
『라 크루아』

소피 베시는 ‘유대-기독교’라는 안락한 명칭이 사실은 타자를 배제하기 위한 날카로운 칼날이었음을 증명한다.
『프랑스 앵테르』

‘유대-기독교’라는 용어는 서구가 죄책감을 덜기 위해 설계한 정치적 가공물이다

또다시 불거진 ‘유대-기독교 vs 이슬람’이라는 ‘기획된 충돌’이 중동을 집어삼키고 있다(이번 ‘중동 전쟁’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무려 다섯 번째다). 현 패권국인 미국이 이스라엘과 강력한 전략적 동맹을 유지하며 개입함에 따라 전 세계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나온 소피 베시의 신간 『만들어진 뿌리』는 작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후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중동 전쟁으로 더욱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지중해의 양심’으로 불리는 비판적 지식인 소피 베시는 이 책에서 ‘유대-기독교’라는 용어가 어떻게 서구의 오래된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제이자 이슬람을 배척하는 강력한 무기로 기능해왔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그는 서구 사회가 스스로를 정의할 때 항상 언급하는 ‘유대-기독교’라는 용어가 사실 수천 년 된 전통이 아니라 1980년대 전후에 일상화된 현대의 정치적 산물임을 폭로한다. 그리고 그 기제의 핵심이 바로 ‘은폐·전유·배제’임을 역사적 사실로 증명한다. 서구가 자신들의 반유대주의 역사는 가리고(은폐), 유대교의 역사적 위상을 가로채며(전유), 이슬람을 철저히 타자화(배제)한다는 구조적 분석이 대단히 탁월한 이 책은 서구 문명의 근간을 뒤흔드는 밀도 높은 역사 비평서다.
1962년 아이히만 재판 이후 서구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공동의 책임과 죄책감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소피 베시는 이 과정에서 과거의 반유대주의가 정치적 도구인 ‘친유대주의’로 대체되었으나, 이는 유대교를 여전히 예외적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광기의 뒤집힌 형상에 가깝다고 일갈한다. 서구는 이스라엘을 ‘영원한 희생자’이자 ‘확정적 무죄 상태’로 둠으로써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씻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서구 지성계의 상징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유대인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한 인물이지만, 소피 베시는 이 책을 통해 아렌트조차 극복하지 못했던 ‘서구 중심적 사고의 한계’와 ‘식민주의에 대한 무관심’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유대-기독교’라는 가짜 연대 아래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반인권적·식민주의적 행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처럼 서구 문명을 지키기 위한 ‘구원적 폭력’으로 둔갑해버렸다.

역사의 호적에서 동방 지우기: 조작된 문명의 뿌리

저자는 1950~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문명이 ‘그리스-라틴 문명’으로 교육되었다는 점을 자신의 사례로 증언한다. 그러나 “그리스 예술은 이집트의 첫 이주민이 아티카나 펠로폰네소스의 미개한 주민과 접촉하던 시기에 이집트 예술을 굴종적으로 모방하며 시작되었다”는 진실에는 눈을 감은 채 유럽은 홀로 태어났다는 자신들의 정체성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동방과 문화적으로 연결되는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다고 비판한다.

“유럽은 스스로 경계를 긋고 ‘유일한 문명’으로 자리매김하며 형성된 이래, 자신의 정체성 구축에 해가 될 만한 모든 요소를 망각의 구렁텅이로 끊임없이 내던졌다. 설령 역사의 목을 비트는 한이 있더라도, 동방과 문화적으로 연결되는 모든 흔적을 유럽의 호적에서 반드시 지워야만 했다.” (18쪽)

심지어 오늘날의 그리스조차 고대 헬레니즘과의 연속성만을 내세우며 오스만 제국의 자취를 부정하고 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유대-기독교 문명’이라는 조작된 허상이 ‘그리스-라틴 문명’을 대체해왔다. 현재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바라보는 서구의 이중잣대가 요즘처럼 여실히 드러난 적도 드물다. 특히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보다 종교적·문화적으로 이슬람과 더 밀접한 접점을 가졌음에도, 서구는 자신들의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철저히 배제해왔을 뿐 아니라 ‘야만’으로 몰아세우는 데 골몰하고 있다. 유대인과 무슬림이 평화롭게 공존했던 과거의 역사는 빠르게 잊혔으며, 이슬람은 서구의 보편성(자유, 인권 등)에서 내쫓겨 ‘변치 않는 타자성’이라는 강고한 철창 속에 갇히게 되었다.

끊어진 연대를 다시 잇기 위한 역사적 나침반

소피 베시는 단순히 서구의 정치나 종교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유대-기독교(서방)라는 편리한 도구가 아랍-이슬람(동방) 세계에서도 어떻게 ‘타자를 축출하는 도구’로 역이용되고 있는지를 함께 경고한다. 그는 유대-기독교 담론이 현대판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되었다고 개탄하면서, 모든 평화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배타적 정체성 정치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죽음의 배제 대신 삶과 실재의 연대를 다시 회복하자고 매우 설득력 있게 호소한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과거의 희생자 대변인 역할을 버리고 ‘가해자 진영’으로 급격히 이동하며 전 세계 여론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소피 베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기존의 ‘유대인’ 개념과 현재의 이스라엘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오늘날 세계 속의 유대인들은 전체 유대인의 절반도 살지 않는 국가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어 포로가 된 형국이다.” (85~86쪽)

“이제 유대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직시해야 한다. 신앙인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인을 더는 유대인으로 보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2,000년 역사를 고의로 부정하며 고대 유대 왕국의 직계 후계자를 자처하는 그들을 ‘신히브리인’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90쪽)

이와 관련해 번역자 주명철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은 각주로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2024년 말에서 2025년 초, 전 세계 인구 약 80억 명 중 유대인은 0.2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1,570만~1,58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 인구 1,000여만 명 중 유대인 인구는 720만~730만 명이다. 1948년 건국 당시 약 65만 명이었으나 ‘나크바’[대재앙]라는 타자 박해를 통해 얻어낸 폭력적 확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의 유대인은 약 630만 명으로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많다. 캐나다에 40만 명, 영국에 31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86쪽)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 같은 비산유국 입장에서 중동 전쟁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1970년대 같은 ‘오일쇼크’가 재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중동 사람들은 물론 매일 요동치는 국제유가로 전 세계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현재 유대-기독교와 아랍-이슬람이라는 실체 없는 이분법적 도구가 서로를 축출하고 배제하는 무기로 이용되면서, 평화를 위한 ‘연대의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다. 이제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 박힌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적 실체를 바탕으로 한 온전한 사관을 재정립함으로써 나날이 격화되는 지정학적 갈등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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