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우리는 아름답고 유한한 지구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통해 지구는 여러 면에서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있든 없든 변화는 불가피하다. 지구의 역사는 변화의 역사이며,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그 변화는 급진적이다. 변화에는 종종 손실이 따른다. 어떤 손실은 비교적 미미하다. 연필을 종이에 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빈 종이는 사라지지만, 이상적으로는 새롭고 흥미로운 무언가로 변한다. 사람들이 환경에 변화를 주는 많은 이유는 개선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우리는 집을 짓기 위해 숲을 벌채하고, 더 새롭고 강력한 컴퓨터와 모바일을 만들기 위해 금속을 캔다. 이러한 변화 중 일부는 단순히 재화를 창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당한 손실을 초래한다. 우리가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또는 미처 알지 못하는 손실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처음 화석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 기후변화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환경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14쪽
과학 혁명의 기계론적 철학은 과학적 탐구에 접근하는 방식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철학과 인간의 자기 이해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계론과 환원주의는 존재가 기본적인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부분들을 검토함으로써 그 행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법칙을 밝혀낼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관점은 동물, 식물, 또는 인간이 아닌 자연의 다른 요소들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다소 완화된 형태로) 적용되었다. 특히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개인 개념은 개인(person)을 합리적이고 자율적이며 이기적인 존재로, 사회를 합리적 동의에 기초한 계약 관계로 서로 연결된 개체들의 집합으로 묘사했다. 토머스 홉스의 주요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는 사회를 하나의 생물체, 즉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 인간은 여러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부분들이 바로 개별적인 인격체(individual person)임을 알 수 있다. 개인은 리바이어던, 즉 주권적 통치자의 규칙과 제약에 복종하지만, 여전히 독립적이고 원자적인 개인으로 남아 있으며, 특정한 광범위한 제약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다. -32쪽
인류세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핵심 질문들, 즉 지구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의 지구 관리가 과연 바람직한 이상인지는 환경윤리학에 대한 일반적인 과제를 제기한다. 환경윤리학이 자연 세계와 관련하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와 관련된 주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를 결정할 수 있을까? 환경윤리학의 질문에 대한 “정답”이 과연 존재할까? 호랑이를 멸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을까? 어느 정도의 오염이 허용될 수 있으며, 환경 부담의 공정한 분배는 어떤 모습일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지구공학(6장 참조)을 통해 의도적으로 기후를 조작하는 것이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46쪽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제도가 가치관 형성의 배경이 되는 것처럼, 윤리 이론도 마찬가지다. 환경윤리학은 부분적으로 고전적인 서양 윤리학의 한계로 대응 차원에서 논의되지만, 이러한 서양 윤리학은 인간과 자연 세계의 관계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개념적 자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고찰하겠다. 이 장에서는 세 가지 이유로 서양 윤리 이론을 탐구한다. 첫째, 이러한 이론을 연구하면 몇 가지 중요한 도덕적 사고방식을 해명하고 현대 사회의 많은 도덕적 불일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이러한 이론이 인간의 동물·환경과의 관계에서 어떤 한계를 보이는지 이해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셋째, 환경 및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도록 서양 윤리 이론을 수정, 발전 또는 확장할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61쪽
짐작하겠지만, 일부 철학자들이 칸트 윤리의 강점으로 여기는 요소들을 다른 철학자들은 약점으로 본다. 어떤 철학자들은 거짓말 금지와 같은 정언 명령을 긍정적인 특정으로 보기보다는,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거짓말이 심각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거짓말이 옳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의 도덕 이론은 모든 가능한 행동 방식이 정언 명령을 위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즉 의무 충돌의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누군가의 자율성을 불가피하게 침해해야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현대 학자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칸트 윤리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제한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리주의가 강점을 발휘한다. 또한, 칸트 윤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보편화 가능성 검증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자기 행동의 준칙을 어떻게 정식화할까? 거의 모든 경우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보편화가 모순을 초래하는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때로는 이것이 명확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칸트는 두 가지 종류의 의무를 구분한다. 완전한 의무는 절대적이며, 불완전한 의무는 정도의 차이를 두는 의무이다. -85쪽
도덕적 관심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인간중심주의 비판가들에게 동물은 유망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결국 우리도 동물이며, 인간은 여타 동물과 공유하는 공통점이 많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동물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침팬지와 98%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한다고 추정한다. 개와 같은 다른 동물들은 손가락질과 같은 인간의 사회적 신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가축화와 관련된 진화적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리는 동물의 행동과 감정적 반응에서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되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의인화, 즉 동물에게 인간과 같은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항상 인간의 특성을 동물에게 단순히 투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특성의 인식을 반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경과학자 로버트 사폴스키는 개코원숭이가 사회적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인간과 동일한 생리적 변화를 많이 겪는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철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의 통증 행동, 생리적 유사성, 그리고 인간과의 진화적 친족 관계성이 많은 동물이 우리처럼 통증을 경험한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118쪽
레오폴드는 그의 마지막 에세이의 후반부에서 내세운 다음과 같은 격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생명공동체의 온전함,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을 때, 그것은 옳다. 그것이 그러하지 않을 때는 그르다.” 이 격언은 생명공동체 자체가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온전함,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이 도덕적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 에세이는 전체적으로 도덕적 공동체가 인류의 경계에서 끝나지 않고, 그 너머로 확장되어 “땅, 물, 식물, 동물, 또는 집합적으로는 대지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관점을 확립하는 데 공헌한다. 레오폴드의 에세이 전체에서 그가 개별 생물체를 도덕적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의 생물체와 그 비생물적 구성 요소를 포함하는 생명 체계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레오폴드 자신은 생태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생태계가 그의 핵심 관심이다. 레오폴드에게 “대지”는 이러한 개념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그는 대지를 “땅, 식물, 동물의 순환을 통해 흐르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묘사한다. -136쪽
생물학적 관점에서, 물론 단 한 명의 인간이 지구상에 (적어도 잠시 동안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유교적 관점에서, 그 인간은 가장 강력한 의미의 ‘인격체(person)’가 될 수 없다. 유교적 인격(personhood)이라는 개념은 도덕적이며, 인격은 관계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교 전통의 인(仁), 즉 인간성은 핵심 덕목이며, 인은 타인과 배려와 공감적 이해를 통해 잘 어울린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전통과 의례에 의해 구조화되며, 이는 존중, 감사, 경의와 같은 도덕적 태도를 표현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람은 일종의 도덕적 기교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우아하게 헤쳐나가며 연민과 세심함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는 인을 갖춘 사람이 타인의 분노나 원망을 유발하지 않는다거나 모든 고통과 해악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명백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람, 즉 군자는 타인과의 관계가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 독특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153쪽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이론과 환경철학, 그리고 억압 철폐에 초점을 맞춘 사회 이론과 운동에서 통찰력을 이끌어낸다. 여성의 지배와 자연의 지배가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에코페미니즘 관점의 핵심이다.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프랑수아즈 도본이 처음 사용했으며, 초기 에코페미니즘 발전은 가부장적 시스템이 여성과 자연을 모두 “타자”로 취급한다고 주장한 시몬 드 보부아르와 같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의 통찰에 기초를 두었다. 에코페미니즘 이론의 이론적 발전은 자연의 여성화와 여성의 자연화, 즉 여성과 자연 사이에 개념적 연관성이 확립되는 현상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연관성 속에서 여성과 자연은 각각 남성과 문명에 대해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캐런 워런과 같은 에코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에코페미니즘이 페미니즘과 환경주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에코페미니즘의 핵심 목표는 환경주의, 환경철학, 그리고 환경 정치 이론에 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코페미니스트들은 환경철학자들이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사회관계가 자연에 대한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근본적인 신념은 자연과 긍정적이고 비지배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문제적 지배 패턴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공통적인 여러 형태의 억압과 지배, 즉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은 모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70쪽
환경적 불의는 다른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 정착민들이 땅을 빼앗고 쫓겨난 아메리카 토착민 부족들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환경적 불의를 포함한 불의를 계속해서 경험하고 이에 저항하고 있다. 아메리카 토착민 부족은 다양하며, 그들이 직면하는 구체적인 불의의 형태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환경적 맥락에 따라 다르다. 가장 심각한 환경적 불의 중 하나는 미국 서부의 원자력 산업과 관련이 있다. 애리조나주의 나바호족 거주지는 우라늄 채굴로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며, 1950년대부터 나바호족 광부들은 허용 기준치를 90배 초과하는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이 지역에서 일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나중에 병을 앓고 사망했다. 더욱이, 핵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토착민 거주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뉴멕시코 남동부에 위치한 미국 폐기물 격리 시범 시설(WIPP)은 메스칼레로 아파치 보호구역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2012년 프로젝트가 취소되기 전까지 유카산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은 쇼쇼니족과 파이유트족의 성지를 위협했다. 유카산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공개 참여 과정은 부족의 우려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정부 절차는 기술적 문제를 강조하고 비용편익분석 틀을 사용함으로써 쇼쇼니족과 파이유트족 모두가 표명한 우려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쇼쇼니족은 유카산의 역사적 중요성과 신성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여기서 설명하는 환경적 불의 문제는 과도한 핵 부담뿐만 아니라 참여 과정의 실패와 인식의 실패를 동반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논의될 환경 정의의 측면이다. -195쪽
환경 정의 이론은 다양한 형태를 띠며 정의의 다양한 측면을 강조한다. 절차적 정의와 실질적 정의는 중요하며,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정에 대한 뚜렷한 초점은 참여와 “수용(uptake)” 문제를 가로막는 제도적, 구조적 장애물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의사 결정권자들이 소외된 집단과 개인을 포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더라도, 이러한 집단과 개인이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거나 의사 결정 과정의 배경 틀과 가정에 맞지 않는 우려를 표명하는 경우, 그들의 관점은 충분히 수용되고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특정 개인과 집단이 조롱받거나 보복당할까 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구조적 특징도 있다. 예를 들어, 근로자들이 고용주에게 더 공정한 처우를 요구하거나 권력 기관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그렇다. 1960년대에는 예를 들어,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살충제 광범위한 사용의 위험성을 자세히 설명한 책 『침묵의 봄』을 출간한 후, 화학 회사들은 그녀의 저서를 폄하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러한 공격은 카슨을 “히스테리적인” 여성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과학에 대한 그녀의 “여성스럽지 않은” 개입을 비판하기 위해 성 고정관념을 이용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카슨의 젠더 기반 사회적 불리함을 이용하여 그녀를 침묵시키고 무력화하려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제도, 담론, 그리고 정의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조건을 개발할 필요성을 밝힐 때 인정의 중요성과 정의에 대한 역량 접근 방식의 잠재적 힘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4쪽
환경윤리학은 여타 학문 분야처럼 학계 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환경윤리학에서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고찰할 때 특히 중요한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미 4장에서 언급했듯이 일부 학자들은 환경윤리학이 인간 이외의 것에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고 주장한다. 비판가들은 극단적으로 생물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가 위험한 인간혐오를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생물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적 관점이 반드시 인간혐오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스트와 사회 이론가들은 인간-자연 관계와 인간의 사회적 관계 간의 연관성을 검토할 필요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환경윤리학에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 세계 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차원에 대해 살펴보고, “환경”이 사회적 관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매개되는지 검토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18쪽
환경 및 동물 윤리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주로 육식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므로, 여기서부터 시작하겠다. 우리는 이미 공장식 축산이 동물, 인간,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 또한 생태학적 관점에서 볼 때, 먹이 사슬의 하위 단계(식물)를 섭취하는 것이 상위 단계(육류)를 섭취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이는 한 단계에서 생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극히 일부만이 사슬을 따라 상위 단계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는 페스큐 풀을 뜯어 먹어 식물의 잎을 섭취하고 그 잎에서 에너지를 추출한다. 하지만 소는 그 에너지의 전부를 추출할 수는 없으며, 더 나아가 소가 먹는 잎에는 식물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가 들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육식할 때 고기에 있는 에너지의 일부를 얻지만, 전부를 얻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나중에 고기를 위해 도축되는 동물의 성장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고기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가 섭취하는 칼로리 중 극히 일부만이 성장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기본적인 생존에 사용된다.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