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브레턴우즈 이후 80년,
세계 경제는 왜 다시 흔들리는가?
더 공정한 자본주의를 위한 경제사학자의 날카로운 제언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포한 초고율의 상호관세 조치는 세계 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930년에 이루어진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인 스무트-홀리 관세법 이후, 100여 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미국 내 제조업의 부흥과 일자리 창출, 무역 적자 축소, 국가 안보 산업의 보호 등을 목표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은 WTO로 상징되는 세계 자유무역 질서 체계를 뒤흔들었다. EU, 캐나다, 중국 등 주요 교역국들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직후, 보복 조치를 시사하며 세계 경제 전반에 긴장감과 불확실성을 더했다. 이후 상호관세 유예 조치 및 국가별 협상이 이루어지며 초반의 충격이 가시는 듯했지만, 강화된 품목별 관세 부과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 기조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특정 국가의 초강력 보호무역 조치로 국제적 긴장감이 형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33년,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67개국이 런던에 모였던 당시에도 국제적 협력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처음의 의도와 달리, 각국은 자국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가령, 영국은 파운드화를 평가절하 하고 보호관세 조치를 취했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화를 평가절하 했다. 협력이 좌초된 이후 각국의 정책은 경제적 국수주의로 향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쯤에서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두 세기에 걸쳐 위기와 변화를 거듭해온 세계 경제는 이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그 답은 그리 멀지 않은 데 있다. 역사는 늘 반복되기에 지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되돌아봄으로써 우리는 다가올 미래에 대응할 힘을 갖출 수 있다.
협력과 견제를 오가며 세계 경제 위기를 극복해온
세계 각국의 분투와 첨예한 대응의 역사
기술과 통신, 교통의 발달로 상품·서비스·자본·노동 등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지며 고도로 세계화된 환경에서는 무역 정책이나 통화 정책 등 한 국가의 경제 정책이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세계는 패권 국가인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두고 일각에서는 1930년대의 ‘근린 궁핍화 정책’을 상기하기도 한다. 이는 관세를 인상하고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등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의 경제를 악화시키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가리킨다. 당시 경제적 국가주의가 위세를 떨친 결과, 세계 무역은 위축되고 경제 권역은 블록화되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팽창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자급자족적 경제체제로 치달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 각국은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양한 국제기구를 창설함으로써 근린 궁핍화 정책을 극복하고 국가주의와 국제주의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국제주의는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국익 추구나 다름없었다. 이른바 ‘피상적 다자주의’ 혹은 ‘내재적 자유주의’의 부상이다. 이에 중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은 선진 산업국의 이익에 기반한 세계 경제 체제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신들만의 경제 권역 설립을 도모하기도 했다. 공식적 국제기구의 설립과 이들에 의한 중재, 다자화된 국제 교역 관계를 추구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진 산업국 이익에 복무했던 세계 경제 체제는 근린 궁핍화 정책의 한계를 일정 부분 해결했으나 1차 산품 생산국 및 저개발국들 입장에서는 구조적으로 편향된 기울어진 운동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1970년대 들어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중지로 인한 통화 정책 혼란과 석유 파동 등으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세계는 또다시 위기에 봉착한다. 이후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경쟁과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로 대두된다. 이 무렵 국가 간의 자본 이동은 한층 자유로워졌으며, 개방적 국제무역과 금융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초세계화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 신자유주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그 정당성에 도전을 받는다. 과도한 금융 자유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남용 및 부실자산 팽창으로 이어졌는데, 경제가 긴밀하게 연동된 상황에서 전 세계에 유통된 부실한 대출 채권은 세계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와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등 긴급하게 실시된 유동성 확대 조치 덕분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제2의 대공황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세 번째 경제 주기에 돌입한 지금, 한계를 노출한 신자유주의의 질서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상태이며 향후 어떠한 대안적 체제가 제시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국가 간 충돌과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세계,
‘더 포용적이고 더 공정한 자본주의’를 위하여
다만, 분명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다. 세계 금융 위기를 연구 분석한 영국의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는 “세계 경제 활동의 균형추가 동아시아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각국의 세계사적 역할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9년은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경제가 전 세계 경제를 견인한 역사적인 해”라고 진단한 바 있다. 문제는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부채 증가와 민족주의적 지정학을 기반으로 한 긴장 상태 유발 가능성(대만, 남중국해 문제 등)이 세계 경제에 새로운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실존적 위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과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에 달성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제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고 종전 이후 1930년대에 촉발된 갈등을 해소하고 자유민주적 자본주의 사회를 결집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IMF, 세계은행, IBRD와 같은 다자간 기구를 창설했다. 이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저개발 국가에 차관을 제공하거나 국가 간 분쟁 상황을 조율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긴 했지만 서구 중심 기구라는 비판, 법적 강제력의 결여 등 그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세계 경제 기구는 세계 금융 위기를 막지 못했다. 고도로 다극화된 세계에서 국가 간 경제적·군사적 충돌의 잠재적 위험성과 불안정성은 필연적이다. 저자는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또 다른 금융 위기를 방지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세계의 공유지’에서 벌어지는 비극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형태의 세계 경제 통치 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각국이 채택하기 쉬운 반응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식과 같은 경제적 국가주의로의 회귀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나은 대안적인 방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도한 금융화와 이로부터 야기된 경제적 불평등에서 벗어나 더 포용적이고 더 공정한 자본주의를 토대로 하는 진보적 경제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각국의 이해가 얽히고설킨 한층 더 다극화된 세계에서 인류의 공동선을 달성하기 위한 공통의 방법론을 모색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위반 시 제재가 따르는 엄격한 규칙 적용 등을 통해 모든 국제사회의 일원이 경제적 불안정과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참여할 때, 세계 경제는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두 세기를 아우르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정교한 시선으로 톺아보는 이 책은 100년의 세계 경제사를 한눈에 조망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지적인 충만감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