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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누군가 오랫동안 너를 훔쳐보았구나
피아노
열아홉
저녁의 집
신발의 질문
동그란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
도드라진 사람
오해
저녁의 꼬리

2부 깼다고 생각하는 꿈에서
엉덩이 눈
당나귀 속엔 몇 마리나 되는 당나귀가 들었을까
발목만 남았네
염소 방목장
허겁지겁
양띠
해류도 슬픔
새
구겨진 거미들
발을 만졌다고 했다

3부 누워서 하는 생각은 멀리도 간다
돌부리
폭포
경사
귤
검은 단어
자리왓
섯알오름
발끝의 사례
법랑
누워서 하는 생각은 멀리도 간다

4부 이제 누구의 건너편이 될 수 있지
독신의 나날들
혼잣말
등장인물, 그 밖의 인물
종소리 하나
옆모습
그 혐의에 질문도 포함됩니까
접어 둔 창문이 네 개
건전지
안녕, 나선
치약

5부 최고의 속도는 어쩌면 멈칫
빈말
심부름 중입니다
개양귀비와 동갑
식물의 말투
여름에 부엌
꽃씨는 언제 꽃을 설계할까
뱉은 씨앗
거기까지도 좋지만 여기까지도 좋아요
사과나무 아래서
뾰족한 소용

해설
근원적 세계에 대한 역설의 희망
―유성호(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저자 : 유수진
2015년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으며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4·3 표류기』 『선택받는 글쓰기』 『태양의 사랑』 『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서사시』 『너도 예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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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걷는사람 시인선 151
유수진 시집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 출간

“말랑말랑한 발자국 속 밀물로
꽃이 이름을 갖기 전으로 찰나의 한 점으로”

사라지는 존재들의 곁을 지키는
사물의 언어와 역설의 희망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유수진 시인의 첫 시집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가 걷는사람 시인선 151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5부에 걸쳐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매개로 존재의 조건을 탐색하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해류를 떠도는 오리,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 화덕에서 구워 낸 계절, 녹슨 못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비극적인 현실을 과장 없이 비춘다. 관념을 설명하는 대신 대상의 물성과 움직임을 따라 사유를 전개하는 시들은 사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다룬다. “씨앗은 마르는 동안 꽃을 설계한다”(「꽃씨는 언제 꽃을 설계할까」), “최고의 속도는 어쩌면 멈칫”(「사과나무 아래서」)과 같은 구절은 사물들의 고유한 속도와 리듬을 포착해 존재의 이면을 비스듬히 드러낸다.

순진한 경사도라니
그래서 잊히기도 딱 좋은 경사도들이
제주에는 많다

(중략)

밤마다 꿈의 안과 밖을 헤매고
또 달아나느라
숨느라
여전히 내려오지 못하는 사람들
─「경사」 부분

『잘 구워 낸 여름들은 유행가가 되고』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경사」, 「귤」 등의 작품에서 시인은 제주 4·3을 경사도, 귤, 녹슨 사물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접근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건을 현재의 감각으로 환기시키며, 지나온 기억과 망각의 층위를 드러낸다. “잊히기도 딱 좋은 경사도”라는 표현은 망각의 구조를 시적 형식으로 포착한 사례다. 폐허가 된 마을이나 남겨진 물건들을 통해 역사를 환기하는 서술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유수진의 시는 짧고 압축적인 시편과 산문적 호흡의 긴 시편을 오가며 다양한 리듬을 만든다. 「뾰족한 소용」, 「돌부리」처럼 세계를 응축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엉덩이 눈」, 「당나귀 속엔 몇 마리나 되는 당나귀가 들었을까」처럼 긴 호흡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시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다양한 정서와 형식을 균형 있게 담아낸 이번 시집은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깊고 다정한 유행가가 되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이다.

시인의 말

동그란 사람

두 나무토막 사이에 피는
엄지손가락만 한

불꽃처럼

당신과 나 사이에 피는
엄지손톱만 한

시처럼
2026년 5월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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