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식품 라벨을 둘러싼 기업, 정부, 소비자 간 힘겨루기의 역사]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이것은 왜 오렌지주스인가』는 묻는다. 우리는 왜 음식을 고를 때 ‘맛보지’ 않고 ‘읽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읽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복잡하고도 미묘한 식품 라벨은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눈에 잘 띄는 “영양정보”라는 제목 아래에 매우 밋밋하게 식품 성분들이 나열돼 있으며, 흰 바탕에 검정 글자(혹은 검정 바탕에 흰 글자)가 고등학교 어휘 수준으로 표시된 공간. 포장지 다른 곳에 표시된 다채롭고 화려한 색깔의 제품 정보와 확연하게 대비돼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만,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같은 영역”.
이 식품 라벨은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막후에서 마케팅, 디자인, 영양학, 심리학, 소비자 전문가들이 은밀하게 내린 의사결정을 근거로 하는 복잡한 정치적 내막을 암호화한 것이다. 이러한 합법적이고 과학적인 라벨이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쓰는 수백만 개의 가정용품에 붙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를 지나면서 식습관과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가 커졌는데, 이에 대중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1990년대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FDA의 영양성분표 표시면이었다고 보통 설명한다. 하지만 FDA 영양성분표 표시면의 기원은 20세기 전반기, 미국 포장식품 경제가 시작되면서 FDA가 식품시장을 규제하는 핵심 기관으로 떠오르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사용하여, 그 기원인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21세기 정보화 시대까지 쭉 짚어간다. 큰 틀에서 이 책은 미국 식품 규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그 속에서 20세기를 관통한 순수식품이나 GMO 관련 논쟁, 사카린이나 시클라메이트 같은 유해물질 논란 등 식품 관련 논쟁을 살펴본다. 더불어 비타민 광풍이나 콜레스테롤 논쟁, 기능성 식품, 영양강화식품 관련하여 대중들의 건강과 식품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도 추적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 기아와 영양실조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운동과 대응, 소비자중심주의의 출현 등을 통해 식품 및 식품 경제가 사회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유기농과 동물복지, nonGMO, 방사선 조사 식품 관련하여 위험사회와 대안 식품 운동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는다.
[정보화 시대에 올바르게 식품을 먹는 법]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품 라벨은 정보의 조합이다. 즉, 식품 라벨과 식품 규제의 역사를 좇는 이 책은 누가, 왜, 어떻게 정보를 다루고 차지하려고 하는지, 그 영향과 결과는 무엇인지 추적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원서 부제는 “정보화 시대, 미국의 식품 규제Regulating Food in America in the Information Age”다. 즉, 이 책은 “FDA가 규제에 접근하는 방식의 광범위한 여행 과정, 즉 식품표준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정보 라벨을 통해 정보를 표준화하고 그럼으로써 식품 정치에서 바라보는 ‘정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수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를 설명한다.”(396쪽) 저자는 FDA의 식품 규제를 세 단계로 구분해, 1) 역사학자 벤저민 코언이 “변조의 시대”라고 부른 1880-1920년대에는 불량식품에 첨가된 유해 화학물질을 추적하는 데 집중했으며 2) 저자가 “표준의 시대”라고 부른 1930년대-1960년대에는 식품표준을 개발했으며 3)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정보의 시대”에는, 식품 라벨 표시를 비롯해 정보의 규제 쪽으로 식품 정책의 중심점을 점점 옮겨갔다고 정리한다.
사실 숫자로 된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마음 놓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백오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식품 정보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그에 의지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이클 폴란이 말한 “진짜 음식”, 즉 “증조할머니가 보고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음식”만으로 살아갈 수 있던 세상은 이상향에 가까워져버렸다. 현실을, 숫자로 설명되는 세상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이 책은 미국 식품 규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영양성분표 및 디지털화된 식품 정보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책 앞머리에 “한국어판 길잡이글”을 쓴 김태호(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각종 수치를 꼼꼼히 따져서 그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행위가 우리를 현명한 소비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객관식의 함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가, 어떻게 서너 개의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겠는가? … ‘무언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가두는 틀일 수 있다. 반대로 ‘고르지 않는 것’ 또는 ‘하지 않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제품과 숫자에 지배당하지않는 삶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10-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