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퇴근이 가능한 돌봄과 퇴근이 없는 돌봄 사이,
두 아들의 당원병을 돌보며 의료·교육·복지의 사각지대를 기록한 간호사 엄마의 에세이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였던 저자는, 두 아들이 선천성 희귀난치질환 ‘당원병’ 진단을 받는 순간 가족 간병인이 된다. 병원에는 퇴근이 있었지만, 집에서의 돌봄에는 퇴근이 없다. 이 책은 ‘퇴근이 가능한 돌봄’과 ‘퇴근이 없는 돌봄’을 모두 경험한 간호사 엄마의 에세이이며 동시에 병원 밖 의료 현장의 현실을 정면으로 기록한 이야기다.
돌잔치 이후 영유아 검진에서 던진 작은 질문이 반나절 만에 동네 병원에서 종합 병원으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어진다. “간 수치 정상 범위는 0~30인데 아이는 1900.” 그 밤, 검색창에서 마주한 설명과 문장들, 새벽 세 시 아이의 울음과 분유 200mL. 일상이 ‘저혈당 쇼크’의 신호였음을 깨달은 이후로부터 간병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긴장 속에서 이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단 이후의 삶은 ‘관리’라는 이름으로 계속된다. 당원병은 치료 약도 수술도 없고, 관리 방법은 오직 식이요법이다.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하기에 감기와 장염조차 쉽게 위기가 된다. 수액의 종류와 용량을 예민하게 조절해야 하고, 희귀질환이라는 이유만으로 병원이 언제나 쉽게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입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시간, 부족한 정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검사와 관리, 늘어만 가는 지출과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간호사였을 때는 보이지 않던 돌봄의 빈틈도 가족 간병인이 된 뒤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커가는 아이가 기관을 옮겨야 하는 시기, 유치원과 학교는 또 하나의 문턱이 된다. 옥수수 전분과 대체 간식이 ‘외부 음식’으로 분류되어 제한되고, 소풍이나 체육대회 같은 외부 활동에서는 식이 시간을 놓칠까 ‘자진 결석’을 고민하게 된다. 점심을 해결하지 못해 엄마 차 안에서 식사한 아이의 이야기, 운동 중 저혈당 쇼크로 쓰러질 수 있는 위험 앞에서 필요한 도움을 알리는 ‘네 통의 편지’(담임·보건·교장·영양사). 이 에피소드들은 환자의 돌봄은 가족 개별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복지·교육 제도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중심은 절망이 아니다. 저자는 “왜?”라는 질문을 붙들고 무너졌던 시간을 지나,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질문을 옮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이 문장은 견디라는 명령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결심이다. 혼자 감추고 버티던 저자는 환우회의 연결 속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고, 마음을 나누며, 아이들 또한 같은 친구를 만나 자존감을 회복해 간다. 국내에서 단 한 명뿐이라는 전문의의 24시간 응답, 어린이집 교사들의 세심한 손길, 먼저 걸어온 부모들의 경험이 모여 ‘퇴근 없는 돌봄’의 밤을 덜 외롭게 만든다. 2023년 환우회의 정식 출범과 2024년 특수식 지원, 2025년 9월 특수 옥수수 전분까지 확대되는 변화는 ‘국가가 이 질환을 알고 있다’는 위로가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도 보여준다.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이 에세이는 공감과 위로를 넘어 돌봄을 구조의 문제로 확장한다. 우리는 환자를 어디까지 책임지고 있는가. 돌봄의 무게는 누구의 몫으로 남아 있는가. 이 사회는 희귀질환 가족의 삶 앞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질문이 이 책의 끝에서 독자를 붙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저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