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논어를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당신에게,
공자의 말이 아닌 공자의 삶으로 들어가는 산책이 시작된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흔히 험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여겨진다. 낯선 글자들이 발목을 잡고, 주석의 무게가 등을 짓누르며, 시대의 간극이 독자를 자꾸 밀어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어를 '읽어야 할 책'으로 알면서도 책장 깊은 곳에 고이 모셔 두곤 한다. 저자 최동식은 바로 이 벽을 허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한문 고전 번역 교육을 이수하고 수십 년간 교육 현장에서 후학을 가르쳐 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가 택한 방식은 '학술적 엄밀함'과 '친근한 서술' 사이의 균형이다. 논어의 원문과 한자 어원을 꼼꼼히 따지면서도 글은 시종일관 수필처럼 흐른다.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도 공자가 살았던 구체적인 장면과 인물 이야기 속에 녹여 낸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춘추시대의 허름한 마을길을 공자와 나란히 걷고 있게 된다.
이 책이 여타 논어 해설서와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공자를 신격화하거나 진부한 교훈으로 박제하는 대신, 홀어머니를 모시며 가난 속에 공부하고, 뜻을 펼칠 나라를 찾아 수십 년을 떠돌며, 아들과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 앞에 무너졌던 한 인간으로 공자를 복원한다. 성인(聖人)의 언어가 비로소 인간의 말로 들릴 때, 그 말이 오늘의 독자에게도 심금을 울린다.
내용의 현재성도 주목할 만하다. '대신(大臣)과 구신(具臣)'을 논하는 장에서 저자는 오늘의 정치 현실을, '연부역강(年富力彊)한 사람들'에서는 일자리와 항심(恒心) 사이에서 흔들리는 현대 청년의 고뇌를 읽어 낸다. 2,500년 전의 언어가 2026년의 물음에 직접 응답한다는 사실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생생하게 증명된다.
예수·석가·소크라테스와의 사상적 비교를 통한 공자의 현세주의적 세계관 분석, 습(習)자의 어원에서 배움의 본질을 끌어내는 섬세한 문자 풀이, 향사례(鄕射禮)와 무력 문화의 대비를 통해 덕치와 예의 의미를 짚어내는 논증 등 책 곳곳에 저자의 내공이 깊게 배어 있다.
논어는 어느 나이에 읽어도,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읽어도, 자신의 생에 비추어 다르게 빛난다. 그 산책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가장 믿음직한 길동무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남들에게 칭송받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칭찬받았을 때 기뻐하고 무시당했을 때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수 있는 것이다. 칭찬을 좋아하고 비난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은 흐르는 물을 역류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하게 여기지 않고 이를 태연히 참아내는 자세는 군자가 아니면 견지하기 어려운 일이다.
-40쪽, 〈2장 배움과 수양의 길〉 중에서
“남을 위해 일하면서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는가(爲人謀而不忠乎, 위인모이불충호).
벗과 사귀면서 진솔하지 못한 일은 없었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 여붕우교이불신호).
충분히 소화하지도 못한 것을 경솔히 남에게 전한 일은 없었는가(傳不習乎, 전불습호).”
증자는 이 세 가지를 날마다 되물으며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마음과 언행을 단속하려고(守約, 수약) 노력한 사람이다.
-79쪽, 〈2장 배움과 수양의 길〉 중에서
“사람이 인(仁)하지 않으면 예(禮)가 무슨 소용이며 악(樂)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人而不仁如禮何如樂何, 인이불인여예하여악하).”
여기서 예악(禮樂)은 단순히 예절이나 음악만을 가리키는 뜻이 아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따르며 질서와 조화를 이루게 하는 모든 제도와 절차를 아우르는 말이다. 인(仁)이 없으면 그 모든 일상의 예법과 절차들이 무의미하고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허식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이다.
-94쪽, 〈3장 인간다운 삶의 원리〉 중에서
공자가 한마디로 “회사후소(繪事後素)”라고 대답하자 자하는 단번에 알아듣고 “예는 뒤에 오는 것이군요(禮後乎, 예후호)” 라고 대답한다. 즉 예절이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일 뿐 인간관계의 본질이 아니며, 우선 마음속에 거짓이 없는 정성스러운 뜻을 지니고 나서 형식으로서의 예를 차릴 수 있을 때 그 예(禮)가 빛을 발한다는 말이다. 속으로는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차리는 예는 허례에 불과할 뿐이다.
-103쪽, 〈3장 인간다운 삶의 원리〉 중에서
선비뿐만 아니라 모든 군자에게 공자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사고방식은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대신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함으로써 실마리를 풀라는 충고이다. 논어에는 대략 같은 뜻을 지닌 비슷한 문장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구저기(反求諸己), 즉 ‘돌이켜 자기에게서 허물이나 책임을 찾는다’는 말로 요약되는 문장들이다.
-120쪽, 〈3장 인간다운 삶의 원리〉 중에서
공자는 끝내 안회를 잊지 못하고 두고두고 그를 회상하였다.
“아! 나는 안회의 학문이 진보하는 것만 보았을 뿐 멈추는 것을 보지 못했노라(吾見其進也未見其止也, 오견기진야미견기지야).”
공자는 일찍이 죽고 사는 일은 천명에 달려있다(死生有命, 사생유명)고 말하였다. 아무리 소중한 제자라 한들 그 죽음을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245쪽, 〈4장 공자의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