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저자 계영자(桂永梓) 교장 선생은 길림성 반석시에서 태어나 1982년 연변대학 조문(朝文)계를 졸업한 이후 대련시 조선족 학교에 부임하여 평생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일해 왔다.
중국내 소수민족인 조선족은 현대 중국을 건설한 혁명 대열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며 또한 민족적 풍속과 전통을 간직하고 전승하는데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풍토 속에서 열정적으로 후대 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저자의 일상 경험과 감동을 다룬 글이며, 현대 중국 내 조선족 문화와 풍속을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결혼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회적 인간 관계와 직업상의 업무 태도에 이르기까지 절절하게 느끼게 만든다. 결코 피상적이지 않으며, 은은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우리 민족이 겪은 비운의 역사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에서도 서서히 걷혀가고 있음을 보게 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족 문화의 새로운 미래는 세계적으로 발양되고 있음을 더욱 느끼게 된다.
계영자 선생의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됨으로써 먼 옛날부터 근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온 우리 문화와 풍속을 사랑하고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깊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 속에서
어머니는 내 인생의 길잡이
나는 큰 영예를 받을 때마다 항상 어머니를 떠올리군 했다. 전국민족단결진보선진 칭호를 받았을 때도 그랬고 중화인민공화국 창건기념장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우리가 세방살이를 할 때의 집주인인 몽골족 부부는 어머니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조선족 여성은 어쩌면 그렇게 착하죠? 자신도 아끼던 김치며 찰떡까지 우리에게 주다니요. 또 얼마나 부지런하고 총명하다고요. 어느새 몽골어까지 배워냈구요!”
어머니는 한어를 표준적으로 잘했을 뿐만 아니라 몽골어도 알았던 것이다.
어느 해 겨울, 길림성 휘남현의 한족 마을에 수전을 개간하러 갔을 때였는데 구들이 막혀 연기가 부엌 아궁이로 나오자 부모님은 집주인한테 따지지도 않고 즉시 구들을 뜯어 다시 놓고는 부뚜막을 손질한 후 굴뚝까지 다시 만들었다. 행동이 잽싼 어머니는 아버지와 일손을 잘 맞추었다. 부뚜막까지 깨끗해진 것을 본 초면의 이웃들은 조선족 여성이 알뜰하고 부지런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밤을 새다시피 하며 등불 밀에서 바느질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어두운 등불 밑에서 겨울옷의 솜을 꺼내 봄옷으로 만들어 우리 네 자매에게 입혀주군 했다. 어린 내가 어머니한테 졸리지 않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잠이 적다고 말했는데 나는 어른이 되여서야 그 말의 진실 여부를 알았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에 어머니는 나의 아들을 보살펴 주려고 대련에 오게 되였다.
어머니는 손자를 돌보는 한편 집안일을 착실하게 하면서 무언의 행동으로 나에게 바른 여성의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내가 쉬는 날이면 어머니는 아침 일찍 바다로 가서 미역을 건져오군 했다. 더 좋은 미역을 더 많이 건지려고 애쓰다가 해질녘이 되여서야 젖은 미역을 가득 짊어지고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는 바깥 빨래줄에 미역을 걸어 놓았는데 바람 불 때면 마치 오선보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는 생신한 제철 미역을 고향 친구들에게 부쳐 주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고 개탄했다.
2년후, 어머니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나는 옷과 구두를 사드렸다. 좋은 것이 생기면 항상 자식들한테 나누어 주는 어머니의 성미를 잘 알기에 이번만은 누구에게도 주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어느 해 추석, 대련시 조선족노인협회에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와 노인절 경축모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한테 축하연설을 부탁하는 것이였다. 마침 그 때 어머니가 우리 학교를 찾아 왔는데 쪼글쪼글한 얼굴이 까맣게 타고 앙상한 손등에는 구불구불한 혈관이 툭 튀여나와 나는 가슴이 저려났다. 어머니는 큰 비닐주머니에 고추장과 된장, 무우오가리 등을 가득 담아가지고 왔는데 헌웃을 입고 누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런 차림으로 대련에서 사는 노인들과 함께 있으니 더욱 유표하게 안겨 와서 나는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그 때는 너무너무 행복해서 어머님께 안겼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심정이였다. 비록 웃차림은 초라했으나 어머니의 아름다운 내심 세계는 이 딸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을 첫자리에 놓고 자신을 제일 마지막 순위에 놓았습니다. 다섯 자식중 둘이나 대학교 공부까지 시켰고 젊은 시절에는 공장에서 작업반장까지 지냈셨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이 딸의 마음 속에서 제일 훌륭한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의 옳바른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이 딸이 어찌 이런 자리에 설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를 앞자리에 모셔놓고 강단에 올랐지만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꺽 메었다. 그러나 간절한 기대가 담긴 어머니의 눈빛을 보는 순간 격정이 조수마냥 덮쳐 왔다.
“천하의 부모님들이여, 그대들은 불타는 청춘을 조국과 가정에 몽땅 바치시고 지금은 굽은 허리와 메마른 손 그리고 백발만 남았습니다. 그대들은 거미처럼 자식한테 혼신을 바치는 것을 락으로 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은 우리 어린시절의 푸른 하늘이였고 그대들의 넓고 따뜻한 품은 우리 젊은 시절의 휴식터였으며 그대들의 굽은 허리는 우리가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튼튼한 디딤돌이였습니다. 그대들의 희망과 기대는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원천이였고 그대들의 불굴의 분투정신과 소박한 마음은 우리들의 보귀한 정신 재부로 되였습니다. 하기에 그대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제일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나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렸다. 나는 수많은 박수소리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박수소리가 가장 힘차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연설이 끝나자 나는 어머니 옆에 다정히 앉아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는 자애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었다.
“우리 딸 참 장하구나.”
“저는 어머니의 딸이 잖아요!”
나는 떳떳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왔는데 나는 단 한번의 연설로 어머님에게 기쁨을 안겨준 것 같다. 그래서 영예를 따낼 때마다 더더욱 내 인생의 길잡이이신 어머니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