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여든 두 해 동안 이토록 파고든 한 마디.
그 깊은 질문 앞에서 인류는 백 년 동안 멈춰 섰다.
평생을 두고 같은 질문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톨스토이는 스물네 살의 청년 시절부터 죽음을 앞둔 일흔일곱까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같은 질문 앞에 다시 서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무너지고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 그가 손에 잡은 펜의 무게는 늘 그 물음의 무게였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1852년부터 1905년까지 써내려간 단편과 중편 가운데 청년 톨스토이가 자전적 회상으로 한 작가의 일생이 한 권 안에 흐른다. 1880년대에 톨스토이는 깊은 내면의 위기를 겪었다. 이미 세계가 그의 이름을 알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가.’ 명성도 재산도 가족도 그 물음에 답해주지 못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농부들이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그들이 묵묵히 살아가는 방식에서 톨스토이는 자기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본다. 그 이후로 그는 농부처럼 살기로 한다. 직접 밭을 갈고 구두를 짓고, 농부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야기를 글로 옮겨낸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절반이 그렇게 태어났다.
백여 년 전 러시아 한복판에서 솟아난 이야기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 독자에게 어떻게 가 닿을 수 있을까. 우리 일상은 톨스토이의 인물들과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일과 직책으로 가득 찬 하루가 우리를 정신없이 떠밀고, 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기 전까지 우리는 자기 인생에 한 번도 정직하게 멈춰 서지 못한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한 관리가 마지막 사흘 동안 비로소 자기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은 시대를 건너 그대로 우리에게 도착한다.
「가짜 어음」에서 한 장의 위조된 종이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며 여러 생을 차례로 무너뜨리다가 한 사람의 회개에서 흐름이 뒤집히는 장면은 우리 손에서 시작되는 작은 결심 하나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한 세기를 사이에 두고도 같은 질문이 같은 무게로 우리 앞에 놓인다.
이번 단편선의 작업 방향은 한 가지다. 원전의 호흡과 무게를 그대로 살리되 현대 한국 독자가 한 호흡에 따라갈 수 있도록 문장의 결을 다듬는 일에 공을 들였다. 톨스토이의 문장은 본래 농부의 입말처럼 단단하고 짧다. 그러나 한 세기 전 러시아 농촌의 풍습어, 화폐 단위, 종교적 배경어가 그대로 옮겨질 때 호흡이 한 번씩 끊긴다. 본 책에서는 흐름을 흩뜨리지 않는 선에서 한 줄짜리 괄호 주석을 두어 그 단어 옆에 작은 등을 켜두었고 은자, 물라, 키르기즈, 차르, 이엉 같은 단어들이 본문 위에서 한 호흡도 잃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도록 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일생을 통째로 담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단편 스물 한 편이 이렇게 한 권 안에 모일 때 우리는 한 작가가 평생을 두고 한 질문 앞으로 거듭 돌아온 그 발자국을 한 호흡에 따라가게 된다. 그 발자국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질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 물음 앞에 이번에는 우리가 한 번 멈춰 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