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가장 가까운 타자 일본,
그리고 가장 먼 질문으로 남은 인도”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질서와 균열 사이』는 이 두 질문 사이를 오래 걸어가는 책이다. 일본과 인도라는 전혀 다른 두 문명을 오가지만, 결국 저자가 끝내 들여다보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이다.
책은 광복절 일본 여행이라는 다소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인철이라는 인물을 따라 일본 열도를 걷는 동안, 오노다 히로오와 천황의 그림자, 혼네와 다테마에, 일본인의 종교 감각과 집단주의, 야스쿠니 신사와 전쟁의 기억 등이 차례로 호출된다. 저자는 일본을 단순히 비판하거나 동경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이 있으면서도 끝내 이해하기 어려운 이웃으로 바라보며, 그 틈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 또한 함께 비춰 본다.
특히 지리산과 동학농민혁명, 조선의 몰락과 공동체의 의미를 짚어 가는 대목에서는 일본을 향하던 질문이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왜 조선은 무너졌는가. 우리는 무엇을 반성했고, 또 무엇을 끝내 외면해 왔는가. 일본을 들여다보던 시선은 어느 순간 한국 사회의 깊은 내면을 향한다.
그리고 책은 다시 인도로 향한다. 언뜻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일본과 인도를 한 흐름 안에 놓는 이유는, 서로 다른 문명을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질서를 마주함으로써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인도에서 저자는 갠지스강과 카스트, 힌두와 불교, 타지마할과 카주라호를 지나며 문명의 구조를 다시 묻는다. 일본이 설명되지 않는 질서의 사회라면, 인도는 삶의 표면 위에 질서가 드러나는 세계였다. 신과 인간, 계급과 욕망, 삶과 죽음이 겹겹이 얽혀 있는 풍경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가치와 구조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어떤 질서 속에 살고 있는가. 그 질서는 무엇을 보게 하고, 무엇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역사서 같다가도 철학적 사유로 깊어지고, 인문 에세이 같다가도 문명 비평으로 확장된다. 때로는 한 편의 소설처럼 풍경과 기억이 흐르고, 때로는 오래 눌러 두었던 질문들이 독자를 붙든다. 그리고 질서와 혼돈, 문명과 역사,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래 서성인 끝에, 저자는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인 질문 하나를 남긴다.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자신을 지탱하며 살아가는가.
책 속에서
그렇게 인철은 ‘왜 사과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북알프스를 향한 여행길에 올랐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일종의 순례였다. 오노다 히로오라는 이름이 처음 각인되었던 중학생 시절의 잔상, 그의 귀국 소식을 접하며 품게 된 불가해함, 그리고 그 불가해함의 바닥에서 만나게 된 일본이라는 존재. 그 모든 것이 여행의 배경이자 동력이었다.
짐을 꾸리는 손끝이 유난히 무거웠던 건 그 때문이다. 산을 오르기 위한 배낭이 아니라, 생각을 지고 가는 배낭 같았다. 북알프스는 ‘가까운 일본’의 다른 얼굴을 보여 줄 수도 있고, 오히려 그 질문을 더 깊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철은 알았다. 어떤 질문은 책상에서가 아니라, 발을 옮기는 길 위에서만 조금씩 풀리기도 한다는 것을.
눈 덮인 고산을 오르며, 혹은 한적한 역의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일본이 감추고자 했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땅을 밟는 행위 자체가 인철에게는 하나의 사유이고, 고요한 대면이었다. 일본의 사과 없는 역사, 무릎 꿇지 않는 국가, 그들이 품고 있는 불편한 서사를, 지금 이 땅 위에서 다시 읽어 보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어쩌면, 진정한 질문은 ‘일본은 왜 사과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그런 일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인지도 모른다. 그 응답은 책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눈빛과, 우연히 들른 전시관의 패널 하나, 혹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노인의 짧은 한마디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이제, 인철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단지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 아니라, 질문을 짊어진 인간이 다시 현실을 건너는 방식으로서의 여행이다. (104~105쪽)
일본은 오래도록 하나의 질서를 완성해 온 사회다. 신과 인간, 위와 아래, 안과 밖은 비교적 분명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질서는 대개 드러나지 않은 채 작동한다. 일본의 신들은 고샤 한편에 머물며 삶을 압도하지 않고, 사람들은 설명 없이도 각자의 자리를 안다. 제도로서의 신분은 사라졌지만, 위치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사회의 저변을 이룬다.
인도를 이 글 안으로 불러온 이유는 일본과 닮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신들은 삶 전체를 관통하며, 종교는 일상의 바깥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그 신성은 신분의 경계와 직접 맞닿아 있고, 삶의 자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가시적으로 규정된다. 인도에서 질서는 숨겨지지 않는다. 거리와 노동, 시선의 높낮이 속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질서의 노출은 문화적 성향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인도는 사회·문화적으로는 오랜 시간 공유된 범주로 존재해 왔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쇼카 왕조를 제외하면 지속적인 통일 왕조를 거의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이 땅에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강한 정치적 민족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다. 삶을 조직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카스트였고, 질서를 유지한 것은 중앙 권력이 아니라 촌락이었다. 인도의 사회는 철저히 신분과 마을을 중심으로 한 자족적 구조 속에서 작동해 왔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인도의 ‘민족’이라는 관념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식민지 지배 이후에야 비로소 형성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세포이 항쟁을 거치며 싹튼 민족의식은, 근대라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하나의 개념으로 굳어졌다.
인도는 민족 개념이 결코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조건 속에서 구성된 근대의 산물임을 이해하기에 가장 분명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인도인들이 영국 식민지의 유산을 대하는 복합적인 태도 또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89~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