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저자들은 스스로를 당당히 폴리아모리라 선언하고, 국내에서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번역·소개되고 있는 폴리아모리에 관한 개념의 재정립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관한 국내 첫 보고서이자 심층 탐구서이다. 인터뷰와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해 만난 수많은 한국 폴리아모리들의 실제 삶을 생생히 구성해 놓음은 물론, 인문/철학적 이론적 전거를 통해 이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부각시킨다. 저자들 스스로가 젊은 20대이며, 성소수자 이슈를 포함하여 폴리아모리적 삶에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연애라고 하면 당연히 단 한 사람...
저자들은 스스로를 당당히 폴리아모리라 선언하고, 국내에서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번역·소개되고 있는 폴리아모리에 관한 개념의 재정립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은 폴리아모리에 관한 국내 첫 보고서이자 심층 탐구서이다. 인터뷰와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해 만난 수많은 한국 폴리아모리들의 실제 삶을 생생히 구성해 놓음은 물론, 인문/철학적 이론적 전거를 통해 이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부각시킨다. 저자들 스스로가 젊은 20대이며, 성소수자 이슈를 포함하여 폴리아모리적 삶에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연애라고 하면 당연히 단 한 사람과의 일대일 연애 구도를 떠올린다. 대중 매체가 전달하는 사랑과 연애는 모두 그러한 모노아모리monoamory의 구도이다. 하지만, “왜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다양하게 변형된다. “난 애인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 “다른 사람도 좋아지는데, 내가 나쁜 걸까?” 등의 죄의식 섞인 내면 갈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폴리아모리polyamory의 개념은 이 질문들에 대한 유쾌한 답이 될 수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폴리아모리와 다자 연애는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폴리아모리는 정확히 번역하자면 “다자간 사랑”에 가깝다. 다자 연애는 연애라는 명시화된 관계를 다수 둔다는 뜻이지만, 폴리아모리는 접속connection과 변용affection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을 생성할 때 발생하는 ‘사랑’의 능력을 지닌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폴리아모리는 아주 자연적 상태이고, 윤리와 제도에 의해 형성된 모노아모리 문화야말로 자연적인 상태가 아니다.
존재가 존재와 접속하여 변용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자연적 능력이다. 접속하고 변용하는 현상은 특정 존재에게만 한정해서 발생하지 않고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변용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이 발생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흐름은 고정관념, 억압, 배타, 차별, 권위 등 슬픔의 정서를 유발하는 것들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관계망이 성숙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불특정다수 타자와의 접속에서 무시로 발생하는 것이고, 본인의 자각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폴리아모리일 수밖에 없다. 연애란 문화적(또는 심리적) 요인으로 관계를 명시화하는 것일 뿐이다. 특히 모노아모리의 연애 구도는 문화적 강박관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폴리아모리라면 사실 모노아모리는 불안감, 집착, 질투, 두려움 등의 심리 기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부정적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대일 연애를 없애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애의 구도를 지향하든, 자신과 타자의 다자간 사랑 욕망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다자간 사랑 욕망이야말로 ‘특이성을 사랑하는 공동체’의 가장 근간이 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모노아모리가 상식으로서 여겨지는 문화권 내에서 사랑에 대한 일종의 윤리적 규정을 전복시키는 개념으로서 ‘폴리아모리’에 대하여 분석해 나간다. 이 책은 바로 폴리아모리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것이 윤리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을지 추론해 보며, 마지막으로 모노아모리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오해들을 수정하거나 제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 책을 쓰기까지
이 책의 1장에는 ‘폴리아모리’에 관한 7가지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직접 만나 인터뷰하여 채록한 기록들이다. 이처럼 저자들은 한국에서 폴리아모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고자 했고, 또 이들과의 주기적 만남을 통해 폴리아모리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으려 했다.
폴리아모리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우리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여러 명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상상력 자체가 우리에게 부재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리감일 순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그대로 선입견이다. 직접 들어본다면 생각 외로 아주 평범한, 이미 겪어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낯선 사랑의 문턱들 앞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청년이자 LGBT(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이로써 겪고 배워 체화한 많은 입장들이 있다. 이 입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폴리아모리는 성소수자인가?”, “폴리아모리를 윤리적·사회적 문제로 봐야 하나?” 등의 질문이다.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정식화하는 과정에서 폴리아모리가 난교, 중혼, 바람둥이라는 오해와 편견을 풀어보고자 하였다. 저자들은 폴리아모리라는 주제를 젠더적 관점으로 근본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되,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성소수자 문제, 여성 문제가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폴리아모리가 모노가미 사회 시스템과 갈등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라를 무너뜨릴’ 치명적인 위협으로도 생각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가족과 육아의 문제를 폴리아모리적인 관점으로 논의하면서 폴리아모리가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성숙시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갈등과 공존
과거에는 이 주제가 ‘사랑의 인문학’이나 ‘사랑의 사회학’ 혹은 성 담론의 일부로 다루어졌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이를 성소수자 운동이나 여성 운동에 종속된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소수자 문제와는 별개로 사랑과 연애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에 관한 인식의 확대로 이어졌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폴리아모리로서의 삶을 강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긍정성을 믿는 저자들은, 폴리아모리적 사랑이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는 생태적 지혜가 될 것이라 본다. 어떤 한 종교는 동성애 다음 차례로 폴리아모리를 공격한다고 전제하는데, 저자들은 이에 대해 반박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다. 폴리아모리적 삶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겠다는 의도이다.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새롭게 마주치게 될 삶들이다. 폴리아모리들과 함께 살게 될 사회를 위한 일종의 예고편이 될지도 모르겠다. 폴리아모리로 살아가겠노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
-선택한 사람들
이 책의 구성
1장에서 저자들은 몇몇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라는 것을 느끼고 알고 정체화해 가는 과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2장에서는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불리는 폴리아모리가 타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하는 동시에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하는 새로운 사랑의 방식임을 밝힌다. 특히 이것은 유일성에 제약되지 않고 컴퍼션의 감정을 느끼는 사랑의 잠재성 자체이며 따라서 문어발와 폴리아모리는 동일한 개념이 아님을 언급한다. 저자들은 폴리아모리의 유형인 비이, 트라이어드, 쿼드, 폴리피델리티 등을 설명한다.
3장에서 저자들은 헬렌 피셔와 스피노자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폴리아모리가 자연 그 자체의 상태이며, 문명적으로 모노아모리가 구축된 것임을 주장한다. 이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들뢰즈의 강렬도, 가타리의 횡단성, 프루스트 소설에서 드러나는 성좌의 사랑을 논거로 든다. 이러한 폴리아모리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사랑이 결코 연애 관계, 인간 관계, 언어 관계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 가령 비연애주의자, 동물과 식물, 언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또한 본래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귀결은 질투와 집착이라는 정서, 다양한 섹슈얼리티 내에서의 병리학과 범죄학,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추상적 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