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기생충은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생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적어도 한 종류 이상의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기생충들에는 기생충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이 또 있다. 기생충은 독특하고 희귀한 생물이 아니라 지구 생명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보편적인 생물’이다. 지구와 생명체들은 기생충으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사람 회충은 하루 약 20만 개의 알을 생산한다. 중국 사람들의 대변에 섞여 나오는 회충 알의 무게는 연간 약 1만여 톤에 달한다. 쥐에 기생하는 촌충이 하루 생산하는 알은 25만 개, 한 해에 1억 개가 넘는 알을 만들어 낸다. 이 알들이 모두 생존해 성충이 된다면 약 20톤이 넘는 촌충이 된다. 지구 표면이 얼마나 많은 기생충 알들로 뒤덮여 있을까. 또한 생태계의 먹이 그물 안에서 각각의 생물이 맺는 관계의 75퍼센트가량이 직간접적으로 기생충과 관련이 있다. 즉,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와 소통하는 방식의 넷 중 셋은 기생충을 통한다는 뜻이다.
기생충의 기상천외한 생존 전략 이야기
기생충이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한 방법의 기발함과 다양함인데, 이는 SF 영화나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숙주 조종이다. 기생충은 중간숙주를 조종해 그 다음 숙주에 잡아 먹히게 해, 자신은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숙주로 정확히 옮겨 가기도 한다. 물을 싫어하는 귀뚜라미는 연가시에 감염되면 물에 빠져 자살한다. 성충이 된 연가시가 귀뚜라미의 몸에서 나와 물로 돌아가 짝짓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치벌이라는 기생 말벌의 유충은 티린티나 나방의 애벌레 안에서 애벌레를 먹이 삼아 성장한다. 충분히 성장하면 몸 밖으로 나와 고치를 형성하는데, 이때 숙주였던 애벌레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고치 위로 실을 내뿜어 더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다른 위협이 다가오면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면서 각종 포식자를 쫓아낸다. 기생 말벌이 부화하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애벌레는 죽음을 맞이한다.
신화의 모티브 기생충
인간의 역사 속에 남겨진 기생충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기생충이 이렇게 폭넓은 영향을 미쳐 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구급차의 옆면을 보면 지팡이를 뱀이 휘감고 있는 상징이 있다. 이는 미국의학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를 비롯해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 다양한 의학 협회들을 상징하는 표시다. 이 상징에 등장하는 지팡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지팡이다. 여기서 뱀은 메디나충을 의미한다. 과거 ‘불뱀’으로 불리던 메디나충을 막대기에 감아 빼내는 모습을 뱀과 지팡이로 형상화한 것이다. 유충에 오염된 물을 마셔 감염되는 메디나충은 1년가량의 잠복기를 거쳐 다리를 통해 알을 낳기 위해 빠져나온다. 성충이 피부를 뚫고 나와 산란을 하는 과정에서 마치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그리스에서는 메디나충증의 원인을 ‘불타는 바다뱀’에 물렸기 때문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구약 성서에도 이 메디나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 민수기 21장 6~9절
소외된 기생충, 소외된 사람들
현재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으나 이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진 질병을 소외 열대 질환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서 약 13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질병들로 고통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대 질환의 위험 지역에서 벗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환이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나 상당히 드문 질병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소외된 질병’들은 여전히 연간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 열대 질환으로 고통받는 지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에 비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치료약의 개발이나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질병들이 가난과 소외의 상징이 되어 버린 셈이다. 아프리카에서 발병하는 치명적인 질병인 수면병(체체파리를 매개로 전염된다)의 경우 에포르니타인이라는 효과적인 약물이 발명되었음에도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양산되지 못하다가, 선진국에서 제모제의 원료로 사용되면서 양산되기 시작했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사무엘 보울스 외, 『자본주의 이해하기』, 302쪽)는 기생충과 인간의 경쟁 이면에 놓인 정치경제적인 요인을 잘 보여 준다.
끝나지 않은 기생충과의 달리기
붉은 여왕의 달리기(먹고 먹히는 경쟁 관계의 생물들은 항상 함께 진화하고 있으므로 얼마만큼 진화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진화의 상대적 위치는 같다는 이론)가 말해 주듯이 기생충과 인간의 달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간이 박멸?정복했다고 믿었던 기생충들이 좀 더 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송 수단의 발달로 인해 동아시아에 서식하던 흰줄숲모기가 미국과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아프리카 여행자들이 늘면서 원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하던 수면병에 아시아인이나 유럽인들이 걸리기도 한다. 외부에서 들어온 조류 말라리아로 갈라파고스펭귄의 개체 수가 급감했으며, 지구온난화는 기생충의 매개체인 모기의 활동 범위를 확대했다.
따라서 이 책은 기생충 질환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약 몇 알로 박멸할 수 있다고 보는 기존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런 관점은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빈곤이나 정치 불안 등)를 못 보게 하거나, 기생충에게 강한 진화의 압력을 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필자는 질병 매개체를 관리하고 사람들이 위험 지역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며, 빈곤과 사회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고, 개발 과정에서 환경문제를 고려하는 등 좀 더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덧붙여 필자는 기생충 학자답게 기생충 자체가 갖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기생충을 통해 오랜 옛날 인류의 이동이나 생활사를 연구하는 고기생충학, 약한 말라리아로 신경매독 치료하기, 곰팡이로 해충 퇴치하기, 돼지 편충 알로 난치병인 크론병 치료하기와 같은 사례는 기생충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이른바 ‘기생충학의 황혼’으로 불리는 시대에 아직도 기생충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기생충이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함으로써 기생충과 기생충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