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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1부 - 아버지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삶의 신비는 경험해야 할 사실이다
말들은 황금빛 황홀을 만들었다
여행은 나와 가장 가까워지는 길이다
아버지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형욱을 만나다
그대 몸은 안녕한가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살았을까
오직 사파에 복종했다
여행은 언제나 현역이다

제2부 - 토문재 편지

고기 한 근 끊어야겠다
순정한 언어를 만나고 싶다
토문재 편지
예쁜 여자가 좋다
너를 안 보고는 못살 것 같은 날엔 바다로 간다
토문재 아침
명옥헌 가는 길
땅끝으로 가는 버스

제3부 - 나의 카렌시아

우울한 날엔 코케허니
밤의 위로, 믹스 커피
쾌남 루트
정오의 코스타리카
카렌시아
아침을 여는 에스프레스
고래 알고 가거래이
봄날 오후의 각성, 만델링

제4부 - 아버지는 위대한 문장이다

아버지는 위대한 문장이다
누굴 원망하랴
그리운 건 언제나 멀리 있다
가슴 아프게
사람 그렇게 보냈다
마당으로 나온 장자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세요
나는 아버지의 별이었다

제5부 - 어느 방향을 보고 있어야 하나요

슬프고 좋소
어느 방향을 보고 있어야 하나요
그 섬엔 동백이 피고 있겠지
절정 이전의 언어로
어디에서든 웃는 사람
오늘은 어디 있노
북위 18.090
오후 4시의 문장
저자 소개
저자 : 김종희
꿈꾸는 미학자 김종희 선생는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199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수필이 당선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나는 날마다 신화를 꿈꾼다』, 『돌탑에 이끼가 살아있다』, 『사랑도 기적처럼 올까』, 『슈만의 문장으로 오는 달밤』이 있으며 인문채록집 『기억 장소 그리고 매축지 1, 2』, 『구술생애사로 경험하는 인문학』 등이 있다. 현재 문화예술공간 「빈빈문화원」을 운영하면서 전국 미학강사로 바삐 활동하는 가운데, 국제신문 인문학 칼럼과 계간 《사이펀》 편집위원으로 왕성하게 즐거운 늙음을 베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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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저자의 말

아직도 모르는 오솔길이 있어 아름다운 게 인생이라면,
사람이 아름다운 건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만난 땅끝 사람의 말에도 오솔길이 있었다.
동그랗게 말린 말끝이 소라껍데기에 고인 바다처럼 자꾸만 귀 기울이게 했다.
나는 땅끝 사람들의 말에 빨려들었다.
홍옥을 깨문 듯 사근사근한 맛에 해초처럼 감겨들면서 가끔 갯벌을 봤다.
어제 지나온 길을 봤다.
아버지의 궤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책 속에서

<아버지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희안하지. 여행지에서 여행을 떠나는 설레임이라니. 사파로 가는 새벽.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때처럼 자다가 깨고 또 자다 깨어 시계를 본다. 머묾과 떠남이 일상이라지만 여행 속의 여행이 섬 속의 섬으로 가는 뱃길만큼 두근거린다.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욕실의 불빛이 빠져나온다. 올드시티 오래된 호텔을 다녀갔을 사람들... 이 객실도, 객실의 새벽도 불빛으로 명멸을 거듭하다 마침내 사라지는 기억이라면 나는 시인의 언어로 명멸했으면 좋겠다. 계절에 맞추어 피는 꽃처럼 그 계절이면 떠오르는 시의 한 구절이 되어도 좋겠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는 박인환의 시 속에서 가을이면 명멸하는 버지니아 울프...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타협하는 대신 스스로 오두막이 되어 오직 자신으로 살아냈던 그녀는 인간의 의식이 흘러가는 방식을 문장으로 표현했다지. 밤보다 어두운 생을 건너는 동안 놓치지 않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몸부림이 내게로 건너오는 새벽이다.

아버지,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노년에는 날이 저물수록 더욱 불태우고 몸부림쳐야 하니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영화 ‘인터스텔라’에 인용되었다던 딜런 토머스의 시를 열었다. 늙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순순히 늙음을 받아들이지 말라던 울림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메아리가 되었다.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수상 소식을 들은 앤서니 홉킨스도 치매로 떠난 아버지의 무덤에서 그 시를 읊었다니 시란 영감으로 오는 치유 언어인가 보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의 전부를 잃어버린 울아버지도 걸었을 새벽을 지금 나도 걷고 있다. 아버지는 모든 감각이 소멸된 상태로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맏이의 거듭된 실패와 기울어지는 가세, 설탕 녹듯이 사라지는 가산... 허물어지는 자식을 봐내야 하는 아버지의 육체가 속으로 말라가고 있다는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뇌의 한 부분이 쪼그라들어 죽어가는 줄 몰랐으니 아버지의 치부를 내보이지 않으려는 엄마의 신경은 그만큼 예민해졌다.
아버지의 감각이 통점을 시작으로 미각, 인지능력까지 소멸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이 찢어져 피가 흘러도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맛의 기능을 상실했으니 상한 음식을 구별하지 못했고 익은 것과 날것을 또 구별하지 못했다. 뜨겁고 찬 것을 가리지 못했으니 화상을 입었고,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알지 못해 하수구를 첨벙거리기도 했다. 그렇게나 정갈하던 사람의 한 생이 산채로 죽어갔다.
맏이의 손을 잡고 신부 입장을 하는 막내가 당신 딸인 줄도 몰랐고, 방금 탄 솜 같은 옷을 입고 혼주석에 앉아 있어도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닳을까 싶어 보는 것도 아깝다던 막내를, 혀로 핥아 코딱지 빼내고 눈곱을 떼 주던 막내를 알아보지 못한 채 결혼하던 그해 가을 방외로 가셨다. 오직 나의 육신과 나의 정신으로 살아낸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그때 아버지는 보여주었다.
하노이에서 사파는 먼 길이라 침대 버스로 이동한다. 이곳은 06시를 앞둔 시간. 하루를 살아낼 사람들이 아침을 준비한다. 요란한 모터사이클 굉음도 지금은 잠든 시간. 어디든 아침은 고요한가 보다. 호텔에서 마련해준 도시락과 물을 챙겼다. 큰 짐은 맡기고 가벼운 트레킹 차림으로 소풍 가듯 누워서 간다.
누워서 가는 길은 한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누워서 타는 버스는 장의차였고, 누워서 타는 가마는 상여였으니 누워서 가는 길은 주검의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누워서 버스를 탄 지금은 반드시 걷는 것만이 생은 아님을 경험한다. 나는 누웠어도 논. 사람, 집, 마을... 상점의 불빛은 서서 반짝인다. 오직 누운 것은 침대칸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러니 지금 나는 누워있는 휴경지다. 적어도 사파에 정박하기 전까지 나는 휴경지다.
살아가는 일은 위대한 여정이다. '누구나 마음이라는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마음에 따라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고,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기도 한다' 존 밀턴의 문장은 길 위에 서면 더욱 절실하게 파고든다. 어떤 의미로 보는가는 가치의 발견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사파로 가는 길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신비보다는 저마다 걸어야 할 생에 대한 공감이라면 적확하겠다. 삶의 과정이란 늙어간다는 것 그러니 순간순간 내 마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심지를 돋우어야 할 일이다.
논밭이 푸르다. 하늘은 광대하다. 잿빛 날에도 논둑엔 모내는 사람들이 걷고 있다. 논 가운데 하얀 비석의 묘지들은 까마귀 울음으로 침묵하고 첨벙대는 써레질에 만찬의 불빛이 깃든다. 풍경을 보면서 나는 마른 빵을 씹었다. 저녁엔 푸른 휴경지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하얀 포도주를 마셔야겠다.

<토문재 편지>

시골의 시간이란 저마다의 생체리듬으로 말한다. 땅끝 해남. 글을 토해내는 집 〈토문재〉에서 가을을 마중하는 중이다. 길 끝에 닿아야 새길이 보이듯 끝은 곧 시작이라는 일상의 말이 땅끝에서는 곡진한 문장으로 펄럭인다.
이곳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온 길을 본다. 해남버스터미널에서 281번 버스 타고 오던 길에 보았던 이정표를 하나씩 하나씩 접는다. 바다가 감싸고 있는 마을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한다. 물빛이 달라지는 시간. 인간의 관념을 들이대지 않아도 저절로 그러한 때, 토문재에서는 사람의 말은 내려놓아도 좋다. 해가 오는 곳과 해가 가는 곳을 따라 눈이 가고 발이 가면 그만이다. 애써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도 그냥 보고 그냥 들으면 된다.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감으면서 바람이 흐르는 길에 더불어 흐를 뿐이다.
버스도 드문 이 길엔 사람보다 풀벌레가 먼저 일어난다. 새벽 풀벌레 소리는 풀처럼 부드럽다. 바다가 풀어낸 안개에 온몸을 부비며 내는 풀벌레 소리는 그래서 몽환이다. 몽환이 건네는 직설에 흐트러진 육체를 바로 세운다. 풀벌레 소리가 잦아들 때면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새소리가 오던 곳으로 귀를 열고, 눈을 열고 걸음을 연다. 한 몸처럼 들고 다녔던 전화기도 밀쳐두고 소리가 시작된 숲을 우두커니 본다. 하염없이 본다.
새벽엔 비가 다녀갔나 보다. 댓돌 아래 둔 운동화가 비에 젖었다. 마루 끝에 앉아 끈을 풀었다. 관념이란 묶인 운동화 끈처럼 나를 결박시킨다. 끈을 풀어 젖은 신발을 말리듯이 내가 가둔 나를 풀어준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불편함이 주는 평온을 느리게 느리게 익힌다. 이곳에선 바람도 말을 한다. 아니 흔들리는 모든 것이 말을 한다. 바람의 말은 분석하려 들면 이내 부서지고 만다. 사람의 언어가 박제된 관념을 만든다면 바람의 언어는 언제나 야생으로 있다. 형태 없는 바람의 말은 형상이 되어 날마다 새로운 문장을 토해낸다.
인근 너른 밭엔 참깨 꽃이 한창이다. 보라빛이 밀어내는 하얀 깨꽃은 한낮 땡볕 아래서도 고소하게 핀다. 너울너울 이파리 아래 자리 잡은 호박은 펑퍼짐한 엉덩이를 깔고 수더분하게 익고 있다. 옥수수는 붉은 수염으로 속내를 보이고, 녹두꼬투리는 까맣게 변색을 시작했다. 종일토록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말은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사람만이 문장을 가지는 게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의 길 위에 저마다의 문장을 가진다.
아침 6시, 농부의 출근 시간이다. 칠순의 밭 주인은 유모차를 밀며 비탈을 올라온다. 밭머리에 이르러 허리를 편다. 비에 넘어진 고춧대는 끈으로 묶어 세우고, 제멋대로 뻗어 나간 호박 넝쿨을 거두면서 밭고랑을 살핀다. 제 빛깔로 익은 작물은 거두고, 고루고루 볕이 들도록 틈을 열어준다. 애써 채운 속이 속절없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밖의 때를 알아, 안의 때를 살피는 농부는 작물의 문장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섬세한 감각으로 미세한 자연의 떨림을 알아 작물을 헤아려주는 사람이다.
공책만 한 스폰지를 밭고랑에 깔고 키 낮춘 할매, 녹두를 딴다. 안개가 밀어내는 먼 뱃고동과 덤불에서 떨어져나오는 녹두 소리에 고요가 일렁인다. 안개 짙을수록 한낮은 더욱 뜨겁다. 손이라도 보탤 양으로 슬몃 녹두 덤불을 잡고 앉았다. 여느 콩보다 작은 녹두 알이 녹황색으로 익었다. 여남은 놈이 한통속이라며 농 아닌 농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다. ‘요놈이 요래 익을 때까지 얼마나 갑갑할까요잉. 다글다글 여물어가는 일도 쉽지 않으요잉’ 콩 따듯 톡 떨어지는 할매의 말이 주련처럼 걸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을 멈추었다. ‘하나가 비틀고 나가버리면 다른 놈도 못 익어.’ 할매는 녹두의 문장을 한꺼풀 한꺼풀 풀어주었다.
녹두밭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현상과 공동체의 운명 같은 사회언어들이 할매의 녹두밭에서 놀고 있었다. 부분과 전체, 개인의 욕망과 딜레마, 상호 신뢰, 아름다운 연대라는 말들을 한 뼘 안 되는 녹두꼬투리가 품고 있다. 모두가 잘 익어가는 세계는 부당함과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 노동이 제대로 가치를 얻어야 하며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야 한다.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않을 때 누군가의 위로는 불안을 견딜 수있는 힘이 된다. ‘요놈이 요래 익을 때까지 얼마나 갑갑할까요잉’ 나만 힘들면 세상이 밉지만 나만큼 힘든 사람이 많다 생각하면 그것이 또 위로가 된다. 이 세상에 나를 알아 헤아려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아는 게 없다는 땅끝 마을 할매는 오늘도 아침 6시 출근했다.

<땅끝으로 가는 버스>

나의 외로움은 보여도 타인의 외로움은 모른다. 치열한 생의 의지가 때로는 욕망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욕망이란 살아내는 힘이다. 어찌할 바 없는 현실이라 주저앉아버리면 결국 죽음 앞에 서는 일이다. 삶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 꿈의 끝이 죽음이니까. 더 이상 꿈꾸지 않을 때 남은 시간의 기대조차 걷어내는 것이 죽음이다.
기대란 욕망을 뿌리로 성장한다. 더 이상 꿀 수 없는 꿈은 북어포 껍질 벗기듯 메마르게 나로부터 박리된다. 박리된 꿈이 후라이팬 위에서 다글다글 쓸려 다닌다. 나무주걱이 지나갈 때마다 모로 붙어 길을 피한다. 이리저리 부딪치는 마른 껍데기에서 몽돌 소리 부서진다. 달아올라 펄펄 끓는 팬 바닥이 껍데기들의 무간지옥.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명태의 꿈은 아니었을 터... 짜내도 더는 짜 낼 게 없을 때까지 달달 볶이는 껍데기의 처지를 보며 나는 나를 볶아댄다.
살아내느라 힘든 건 명태뿐이 아니다. 침 한번 삼키고, 눈 한번 질끈 감고... 막걸리 한잔 마시면 속이 진정되더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안 맞을 때도 많다. 안 맞다고 틀린 건 아니니까 맞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로 했다. 일주일 가라앉힌 막걸리병을 꺼냈다. 조심조심 뚜껑을 딴다. 마개를 돌리다 ‘딴다’라는 말을 붙잡았다. 술병은 열어 마시는 것보다 따서 마시는 맛이 좋다. 술이 주는 묘한 두근거림 때문인가. 술이 주는 어떤 용기 때문인가. 연다는 말과 딴다는 말이 가지는 어떤 간극을 상상해본다. 연다는 것은 수평이나 딴다는 것은 수직으로 온다. 수평이 주는 평면성보다 수직이 주는 공간성이 어쩌면 더 역동적이니까.
톨게이트 지나자 허기를 느꼈다. 꿀꽈배기 스틱을 천천히 깨물었다. 창밖 상상계로 흩어지는 구름을 보면서 콕콕 씹었다. 싸락눈 튀어 오르는 소리를 내며 조각난 알갱이 미각을 자극한다. 나는 천천히 단맛을 보는 중이다. 통로 건너 좌석에 앉은 남녀는 이 버스의 종점 완도에 닿을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탕 세 알 건네주는 말끝 감기는 맛이 들큰 하다.
완도... 오래된 기억 속의 완도는 다섯 살 새벽 새뱃길에 보았다. 산동할배 며느리 친정이 완도였다. 설날 새벽. 오빠들은 종조부, 재종조부, 또 그 너머의 어른들이 살아있는 사랑방으로 세배를 나서고 언니들은 60명이나 되는 재간들 떡국 준비를 했다. 나는 오빠들을 따라 새배를 다녔는데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산동할배 집이었다. 울할배의 팔촌 형님으로 울동네 제일 연장자였다. 일찍 상처한 산동할배는 외아들 하나를 겨우 얻어 홀로 키웠다. 할배 팔촌 형님의 아들이니 나하고는 한참 멀다. 청춘을 타향에서 보냈던 아재는 빈손이 되어서야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다.
완도 아재의 아내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졌다. 곱슬끼 있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길 때는 꼭 물이랑처럼 출렁거렸다. 골격이 좋아 몸빼바지 속에 월남치마 넣고 밭에 엎드려 있으면 등판이 다도해 같았다. 손과 발이 빠르고 싹싹하여 가난한 살림에도 찡그린 얼굴을 본 적 없다. 새벽 새뱃꾼이 들이닥치면 강정과 감주를 내왔는데 시아버지 방 낮은 문턱을 넘어오는 아지매 입꼬리가 불린 미역처럼 부드러웠다. 바닥에 쟁반을 놓으며 해초 같은 완도억양으로 말을 하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도 냄새가 났다.
세상사 속절없이 주저앉은 아재를 너른 품으로 담아준 완도 아지매. 혹여 스무날 토문재에 머무는 동안 완도에 닿는 날 있다면 완도 아지매 닮은 물결에 뒹굴뒹굴 치대어볼까나. 세뱃돈 5원 주던 산동할배 손 위에 10원 더 얹어주던 완도 아지매. 이제는 모두 죽어버린 사람들이 산자의 길에 기억되는 건 내가 아직 그들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막을 건너가는 어린왕자처럼 나는 날마다 생의 바다를 걷는다. 생은 막막한 듯 해도 활어 같은 언어를 품고 있어 황홀하니까. 막막하여 길이 보이지 않을 땐 그림을 그렸다. 붓으로, 색연필로 도화지에 점을 찍었다. 하소연할 데 없는 감정들을 차곡차곡 점으로 찍었다. 바닥을 보며 찍는 점은 어느 순간 점이 아니었다. 점과 점이 만나 선을 이루듯이, 선과 선이 만나 면을 만들 듯이 삶의 시간을 채웠다.
노래 가사처럼, 내 안에 내가 참 많다. 어느 때는 뒷산을 올랐다. 팔부능선에 이르면 숨은 턱에 차올랐다. 뒷산을 오르는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차오르는 숨을 감추느라 속으로 삼켰다. 심장은 사정없이 펌프질하고 폐는 힘들다는 것을 감추었다. 그러다 깊은 숨을 뱉어내면서 소리를 동시에 질렀다. 내 몸의 소리가 내 귀로 들어왔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들의 거친 호흡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고통이 내게 위로를 주기도 한다. 힘든 사람이 같이 걷는 것만으로 힘을 얻기도 하니까. 같이 걸었던 시간은 옛일로 녹아버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르는 한때의 이름들을 부르며 해남으로 가는 버스에 있다.

<우울한 날엔 코케허니>

어떤 말은 종이에 베인 살처럼 아리다. 아무것도 아닌 듯이 지나버린 말은 예리한 자국을 남긴다. 말의 자국이 만든 골짜기는 두고두고 아프다. 골짜기에 빠진 감정은 무시로 다른 감정들을 사정없이 흔들어 버린다.
이전의 감정과 오지 않은 감정들이 뒤섞이는 혼돈의 날엔 걷는다. 감정에 조리돌림 당하지 않으려면 그 감정으로부터 나를 분리해야한다. 살아있는 것들이 숨어 버린 정오의 거리는 조용했다.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바다로 가는 택시를 탔다 시각시각 조여오는 공복에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이 탄산음료처럼 튀어 올랐다.
한낮. 물 위를 걸어가는 바람 소리가 풀어진 옷섶으로 파고들었다. 물살은 물살에 부딪치며 시린 잇몸을 드러낸다. 옷깃을 여밀 틈을 주지 않고 파고든 바람이 물기 없는 말처럼 아프다. 맨손을 빠르게 비볐다. 손바닥이 내는 사그랑사그랑 소리가 사랑으로 들렸다. 사랑이란 말을 겨드랑이에 가두고 옆구리에 팔을 바짝 붙였다. 빠져나가던 체온이 붙들린다. 풀어진 감각이 갯바위 거북손처럼 단단하게 뿌리 내린다.
사람들의 말소리로 웅웅거리는 커피집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우울한 날엔 청량한 풍미의 코케허니가 좋다. 파닥이며 날아오르는 코케허니 끝맛이 비틀거리는 정신에 어떤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내어온 커피에 코를 가까이 들이대어 향기를 끌어올렸다. 첫 향기와 끝 향기가 가지런한 꽉 찬 질서로 다가왔다. 새 모이만큼 앞니의 뿌리에 가두었다. 미각세포로 스며들기 전 실뭉치같이 뭉쳐진 향기를 비강으로 단숨에 끌어올려 눈을 감았다.
향기의 몽환을 잠시라도 즐기고 싶었다. 비강에서 관자놀이로, 관자놀이에서 두피로 번지는 아득함이 좋다. 흙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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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본도서 혹은 오배송으로인한 교환은 도서주문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신청하셔야 하며 이 경우 배송비는 웬디북에서 부담합니다.

(단, 팝업북과 CD가 세트인 책은 책의 특성상 7일 이내에 해주셔야 합니다.)

교환절차는 고객센터의 반품교환신청 페이지에서 신청을 해주시면 웬디북에서 새 책을 보내드리고 새 책을 받으실 때 교환도서와 맞교환 하시면 됩니다.

교환은 동일도서에 한하며, 다른 도서로 교환은 불가합니다.

운송도중 책이 손상되지 않도록 포장을 해주신 후, 포장 겉면에 “반품도서”라고 기재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팝업북 등은 조그만 충격에도 책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환이 불가한 경우
  • 1. 고객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
  • 2. 포장 상품의 포장을 해체한 경우
  • 3. 고객의 사용 또는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4. 물품 수령 후, 15일이 경과한 경우
  • 5. 동일상품으로 교환하신 후, 다시 교환하시고자 할 경우 (이 경우에는 환불처리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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