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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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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비가 오니
골반
저항
마비여, 마비여
더러운 손수건
덩굴의 겨울
내게 다가오는 비둘기
흐린 날 살구꽃
너무 슬프게는
눈 속에 묻힌 모과
니퍼로
단맛
땅콩을 삶으며
만발
모든 곡물 튀겨드림
비닐
강풍에 쓰레기
비야, 화이팅!
가위
굵은 팔
귀신과 최면
그림자를 보고 알다
단사호장
내 모종삽
몽키
뱀처럼
민들레와 제비꽃
병균
봄 싸라기눈
손조심
수세미를 기다리며
스프링
자색(紫色) 벚꽃 아래
연일 강풍
아
오래간만이다 522번
웃을 수 있다니
이 봄날
자라 목 자르기
재미있는 이야기
짜증
추운 날 벤치
팔휘
퓨전 설날
헛발질
흐를 것은 다 흘러야 하리
옛날이야기
흐린 날 새벽
흐흐흐
피자를 기다리며
밤에 버릴 것
배추벌레는 배추 위로
삐삐
만전춘
색연필 쓰냐?
체포령
이불을 말리며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며
정성
호우와 반바지

산문|반가사유상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오니기리와 회전 낙법과 피겨스케이팅과 바람과 별과 시와 꽃

시인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김영승
1958년 인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序」 외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반성』, 『車에 실려가는 車』, 『취객의 꿈』, 『아름다운 폐인』, 『몸 하나의 사랑』, 『권태』,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 『화창』, 에세이 『오늘 하루의 죽음』 등이 있다. 현대시작품상, 불교문예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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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팔휘와 톡휘와 달휘
처음 들어본 소리로 다시 태어나는 세계

시집의 독특한 제목은 대상을 향한 애정 어린 명명법에서 비롯되었다. 시인은 어릴 적부터 가장 흔하게 보아온 만만한 존재 ‘파리’를 발음상 보석 같다는 이유로 ‘팔휘’라 부른다. 토끼는 ‘톡휘’, 다리는 ‘달휘’가 된다. 얼핏 장난처럼 들리는 이 기묘한 명명은, 실은 대상에 덧씌워진 관념과 편견의 층을 걷어내고 존재를 온전히 다시 만나려는 치열한 시적 고투다. 시인은 “파리는 이제 나에 의해서는/팔휘로/새로 태어났다”라고 선언하며, “그 명명이/신생이며/영생”이라고 말한다(「팔휘」).
나아가 이 신선한 비약은 결코 관념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메추리알 장조림 속 “간장 한 종지”(「단사호장」)나 욕실을 고치는 “몽키(스패너)”, “더러운 손수건” 같은 누추한 생활의 자리에서 출발한다. 낡은 손수건을 “목련”(「더러운 손수건」)으로 여기고, 수도를 고치는 몽키에서 우주론까지 밀고 나가는 이 놀라운 힘은, 가장 세속적인 사물에서 가장 순정한 진실을 길어 올리는 김영승 시의 고유한 마력이다.

“웃을 수 있다니 좋은 일 아닌가?”
비참과 해학, 죽음과 생의 찬가가 한몸이 되는 순간들

이번 시집이 더욱 강렬한 울림을 주는 것은, 시인이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과 노화의 감각이 시편 곳곳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시력 저하로 굵은 사인펜으로 메모를 하고, 참외를 깎다 다친 손가락을 조심스레 들어 보이며, 왼쪽 귀에서 맑은 물이 두달째 흘러도 “흐를 것은 다 흘러야 멎으리”(「흐를 것은 다 흘러야 하리」)라며 덤덤하게 읊조린다. 그러나 시인은 고통에 짓눌리는 대신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특유의 해학으로 비틀어낸다. “가슴이 쫙 뽀개져 새빨간/초대형 가오리처럼 펄럭펄럭/유영(游泳)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을 볼 때마다 “진지 잡쉈슈?”(「흐흐흐」)만 한다며 삶의 비극성을 유쾌한 농담으로 뒤집는다. 심지어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의 죽음”(「재미있는 이야기」)이라며 껄껄 웃어넘긴다. “웃을 수 있다니/좋은 일 아닌가?”(「웃을 수 있다니」)라는 구절처럼, 비참을 온전히 통과한 자만이 낼 수 있는 이 숭고한 웃음은 독자들에게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집 말미에 수록된 산문은 이번 시집을 이해하는 중요한 입구다.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의 시적 열정과 필사, 천상병 시인에 대한 기억, 산책과 일상의 파편들을 엮어내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이리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총체가 나이리라”라고 벅찬 고백을 털어놓는다. 파리와 토끼, 비닐과 모종삽, 강풍과 마을버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아무도 몰래 써온 시까지, 그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끝내 다시 불러본 모든 것들이 모여 ‘김영승’이라는 하나의 시가 되었다.

자신의 삶과 시를 일치시키며 끝끝내 대지에 몸을 담그는 숭고한 영혼의 기록. 강풍이 불어도 꽃잎을 그대로 붙인 채 피어 있는 벚꽃처럼, 절망 속에서도 경이로운 웃음을 터뜨리는 이 단단한 시편들은 독자들의 팍팍한 삶 속에 눈부신 보석 ‘팔휘’로 오래도록 반짝일 것이다.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 이 희한한 발음 끝에서 우리는 다시 알게 된다. 시는 아직도 세계를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책 속에서

참 부르기 좋은
이름이다 발음

마비여, 마비여

그러나 대답이 없어
더 좋은 이름이다
그 발음이

가끔은 왼손이 쥐가 나는데
약간은 마비가 되기도 한다

이건 쓰르라미 소린가
걔도 무슨 발음을 하는데
생의 저 극(極)을 가는 소리이다
--- 「마비여, 마비여」 중에서

손수건을 왜 매일 새 걸 들고 나가냐
나는 한 일주일 들고 다녀도 괜찮다

나는 그 정도로 더러운 나의 손수건을
그냥 목련 같다고 여긴다
아직 피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 손수건을 빨랫비누로 직접 손빨래를 해서
넌다
그러면 목련이다

곧 꽃이 피면
꽃도
목련의 손수건이다
--- 「더러운 손수건 전문」 중에서

너무 슬프게는 하지 마세요

너무 슬프게는 하지 마세요
큰 호박꽃
큰 호박잎 밑
큰 호박꽃
호박은 달리어
굴러가네
오이꽃도 노랗게
수세미는 아직
깜깜한 새벽
큰 호박잎
마 줄기는 굵은 뱀처럼
나팔꽃은
넝쿨이 잘려 있네
너무 슬프게는 하지 마세요
--- 「너무 슬프게는」 중에서

기적일 이유가 전혀 없다
책상에 놓인 가위 건드렸더니 하염없이 돌아간다
가위의 접점 축이 되어 하염없이 빙글빙글
가위는 그냥 종이 자르는 문방용 가위
그 쇠구슬 반구(半球) 같은 돌기(突起)가
축이 되어
접점은 축이 되어
좌우대칭과
균형을 이루어 하염없이

내 육체의 정신의
접점이여
--- 「가위」 중에서

그렇게 기다리므로
별이 멀지 않다

아직 고공에 매달린 수세미는
얼어 터져 씨를 쏟았지만

얼어붙은 돌멩이 밑에 숨어
소곤거리고 있다

곧 흰 눈이 덮이면
저 검은 하늘도
수세미를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다보면
먼 데가 없다
--- 「수세미를 기다리며」 중에서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여한은 없다

그리고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그 모든 비참한 이야기도
맑은 시냇물처럼 흐른다
맑은 눈물처럼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의 죽음인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므로
미리 듣는다

내가 죽었다니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서

이 신음(呻吟)이
웃음이냐 울음이냐 바람
새는 것이냐 흐흐흐

그냥 흐흐흐
그러고 만다

가슴이 뽀개지는 아픔
그것이 나의 생의 찬가(讚歌)다 가슴이
뽀개져 쫙

갈라지는 아픔 가슴이
수직의 미소로 쫙 갈라져
오물거리는 이

아픔
--- 「흐흐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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