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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김호연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되었다.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 『연적』 『고스트라이터즈』 『파우스터』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2』 『나의 돈키호테』와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김호연의 작업실』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출간했다.

『서울의 선인』은 김호연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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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자칭 ‘천사’의 황당한 제안,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의인을 찾고 서울의 멸망을 막아라

국내 180만 부 판매,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된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서울의 선인』이 출간되었다. 『망원동 브라더스』 『불편한 편의점』 『나의 돈키호테』 등을 통해 우리 가까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애환과 꿈을 함께 들여다본 김호연 작가가 이번에는 서울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싹트는 신의와 그것으로 일궈지는 사회 정의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북한산 아래 오래된 동네, 미암동에서 20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며 별다를 것 없는 매일을 보내던 김재근 앞에 어느 봄, 피어싱을 주렁주렁 달고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는 재미교포가 나타난다. 본인을 ‘성스러운 가브리엘’, 줄여서 ‘성갑’이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이 천사이며 타락한 도시 서울을 벌하러 왔다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단, 신이 서울에 의인이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증명되면 그 결정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기에 ‘제1회 서울 의인상 수상자’인 재근에게 거금을 주고 그 일을 의뢰하겠다는 것이었다.
허무맹랑한 말인 줄 알면서도 급전이 필요했던 재근은 일단 제안을 수락하고,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서울 의인상 수상자들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지금까지 서울 의인상을 수상한 사람들은 재근을 포함해 모두 아홉 명. 수상 이후 특채로 경찰이 되었다가 수사 과정에서 장물에 손을 댄 사실이 드러나, 끝내 경찰복을 벗고 가업인 철물점을 이어받아야 했던 자신과 달리 여전히 의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할 터였다. 주어진 시간인 열흘 안에 재근은 서울을 구할 진정한 의인을 단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서울을 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비밀스러운 관계와 음모, 그리고 한 도시의 운명

재근은 형사 시절의 수사 기법을 떠올리며 행동 방침을 정한다. 1) 역대 서울 의인상 수상자들을 찾는다. 2) 그중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확인해 만난다. 3) 여전히 의로운지 혹은 타락했는지 1~2회 만남으로 판단한다. 4) 판단한 결과를 성갑에게 보고한다. 5) 잔금을 받고 잊는다. 역대 의인상 수상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재근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극소수의 의인과 대다수의 무심한 사람들은 치밀하고 성실한 악인들을 결코 이겨내지 못한다”는 한탄과 함께.
왜 하필 성갑은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누가 봐도 슈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재근 앞에 나타난 것일까. 의인을 찾는 여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얽힌 숨겨진 비밀이 점차 드러나고, 재근은 성갑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단순히 신의 사명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게 된 두 사람은 서울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온갖 사기와 악행, 탐욕으로 난무한 도시를 구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일지 이 소설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물음을 좇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상황에 대한 해답 또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책 속에서

“자네 뭐야? 누군데 내 뒷조사를 한 거야?”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그는 한발 물러나 간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천사예요. 타락한 도시 서울을 멸망시키러 온. 근데 위에서 마지막 체크를 하래요. 그러니까 여기에 아직도 의인이 남아 있는지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 리도 없거니와 녀석의 꿍꿍이에 말려드는 것 같아 답하지 않았다. _p.20

믿기 힘든 이유 따위는 잊고 잔금을 받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은 성갑과의 계약을 이행하는 일이었다. 나는 형사 시절의 수사 기법을 떠올리며 먼저 행동 방침을 정했다.
1. 역대 서울 의인상 수상자들을 찾는다.
2. 그중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확인해 만난다.
3. 여전히 의로운지 혹은 타락했는지 1~2회 만남으로 판단한다.
4. 판단한 결과를 성갑에게 보고한다.
5. 잔금을 받고 잊는다. 서울의 미래는 내 알 바 아니다. _p.47

“이게 얼마 만입니까? 형님. 정말 반갑습니다.”
다짜고짜 형님 형님 하는 게 탐탁지 않았지만 반갑게 그와 인사를 나눴다. 모임에서 딱 한 번 봤던 구상태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났다. 그는 한마디로 지명수배 전단에 나올 법한 인상의 소유자로, 당시에도 ‘반전 가득한 얼굴의 의인’이라고 화제가 됐었다. 쭉 찢어진 뱀눈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오랑우탄을 연상케 하는 하관의 강렬한 인상은 이제 나잇살이 붙어선지 그 날카로움이 어느 정도 중화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매서운 눈빛과 에너지 넘치던 모습도 한층 수그러들어 있었고. 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구상태의 얼굴은 인생을 잘 살아온 자의 것일까, 아니면 무너져 내린 자의 것일까? _p.69∼70

엄마가 하늘나라 가고 얼마간 침묵의 시간을 보내던 나는 신의 목소리 들었어요. 그것은 타락한 도시 서울로 가라는 것이었어요. 엄마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을 신이 내게 맡겼어요. 이 도시의 의인을 하나라도 찾으면 그대로 두어라. 하지만 단 한 명의 의인도 찾지 못하면 벌을 내려라. 이게 전부예요. 믿기지 않으면 믿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퍼즐의 일부니까 당신 부분만 채우면 돼요. _p.95

나도 모르게 남은 세 명 중 한 명이라도 의인으로 이 도시에 살고 있기를 빌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인이고 뭐고 할일을 해치우자, 였다면 지금은 왠지 모를 기대와 불안을 동반한 책임감이 나를 감쌌다. 서울이 천벌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이 결과는 어쩌면 내게, 그러니까 타락한 의인으로 살아온 내 인생에 어떻게든 영향을 줄 것만 같아서였다. _p.112

속이고, 사기 치고, 협박하고, 빼앗고, 때리고, 이용하고, 갈취하고, 부수고, 싸우고, 모멸하고, 무시하고, 억압하고, 짓누르고, 차별하고, 괴롭히고, 마침내 목숨을 앗아가거나 스스로 저버리게 하고…… 이 도시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다치거나 해를 입게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늘 긴장한 채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이지 않게’ 타인을 노려보며 살아야 했다. 극소수의 의인과 대다수의 무심한 사람들은 치밀하고 성실한 악인들을 결코 이겨내지 못했다. 어쩌면 성갑이 내내 의기양양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서울이란 비인간의 도시를 멸하는 건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을 느낄 만한 행동이란 거겠지. _p.121

“그거 아나? 사람이 말로 하는 게 제일 쉬워.”
“예. 말이야 쉽지,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다음이 글이야. 글도 처음엔 쓰기 어렵지, 쓰다 보면 글로 사람 속이는 것도 쉽다고.”
“예.”
“신문들만 봐도 그렇잖아. 어제는 이랬다 오늘은 저랬다.”
“예.”
“제일 힘든 게 행동이야. 행동은 직접 제 몸뚱어리 움직여야 한다고. 책임 소재도 바로 드러나고. 말이나 글은 번복하기도 좋고 속이기도 좋잖아. 근데 내가 직접 한 행동은 번복할 수가 없어. 바로 책임으로 돌아온다고.”
“맞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 아닌가, 자기 몸을 던져 칼을 맞아가며 사람을 구하지 않았나? 정치인들 허구한 공약보다, 법관들 제멋대로 판결문보다 훌륭한 행동이 자네 행동 아니었나?”
“…….”
“지금 그걸 후회한다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_p.134∼135

처음 성갑이 철물점을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엉뚱하고 재미있는 재미교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성갑이 내게 의인상 수상자를 점검해달라고 할 때는 곤란하고 의아했다. 하지만 녀석의 요청대로 서울 의인상 수상자를 만나다보니 결국 나의 과거를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그게 녀석의 의도였다는 걸. 이제 녀석의 과거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성갑은 과거를 외면하지 말고 함께 정리할 것을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돈과 피가 튀고 서울이 멸망하고는 부수적인 효과일 따름이었다. 나는 끝까지 녀석과 가기로 했다. _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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