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대령 왜곡의 결정적인 출발은 1948년 5월 10일에 있었던 박진경 대령 관련 ‘남로당 대책회의’ 사실을 4·3의 공식기록 ‘4·3정부보고서’에서 고의로 빠뜨린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누락은 남로당의 지시로 직속상관 박진경을 암살한 남로당 프락치 암살범 일당들을 마치 정의를 구현한 열사인 것처럼 둔갑시킬 수 있게 했고 제주도 내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더보기
공산폭동 진압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1월 23일 CNN 방송의 ‘문답 아시아’에 출연해 4·3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박진경은 김대중 대통령도 언급한 4·3초기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을 진압하려 제주도에 부임했다. 채명신 장군은 그의 증언4을 통해 박진경의 작전이 제주도민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더보기
왜곡 이유?
박진경의 제주도 재임 시기 1948년 5~6월은 4·3사건 초기 단계로 남로당 무장세력의 공세기였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에 따르면 박진경의 부임 기간 교전 중에 사망한 사망자 수는 25명이었다. 정부보고서는 물론 4·3연구소나 평화재단 등도 제주 민간인 사망자 대다수가 1948년 10월 이후 발생했다는 사실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박진경이 재임한 5월~6월에 대규모 학살이 있었던 것처럼 왜곡한 이유가 무엇일까?... 더보기
4·3사건 책임 전가
박진경이 4·3사건 왜곡의 표적이 된 이유는 미군정에 4·3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4·3평화재단에서는 계속해서 4·3사건에 대한 미국의 사과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 해왔다. 미국의 사과와 미 군정 당국의 과실 인정은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유격대에게 온전한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진경 대령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 또 이들의 영향으로 박진경 대령을 잘못 알고 있는 모든 분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실에 한발 다가서기를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