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철없던 어린 시절의 고백들에서
죽음 이후 1년, 마침내 어머니에게 돌아온 마지막 편지까지
어머니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생텍쥐페리의 일생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편지
1944년 7월 31일, 앙투안은 비행시간에 맞춰 구내 장교식당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왜 날 깨워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건가? 내가 나갈 차례였는데.”
앙투안은 김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훌쩍 밖으로 나갑니다. 이어서 그의 전투기가 이륙하는 굉음이 들려옵니다. 그는 지중해와 베르코르 산악지대 상공을 정찰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레이더가 프랑스 해안까지 비행기를 추적한 이후로 연락이 두절됩니다.
정적이 흐르다가 이제는 기다림이 됩니다.
레이더는 살아 있다는 신호가 될 만한 일말의 음파라도 포착하려 애씁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마치 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요?
-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의 서문에서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생텍쥐페리가 기숙학교에 다니던 십대 시절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어머니에게 보낸 100여 통의 편지를 그의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가 직접 책으로 엮은 것이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했던 귀족 가문의 처녀 마리 드 퐁콜롱브는 1896년 6월 장 드 생텍쥐페리 백작과 결혼하면서 생텍쥐페리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남편 장이 급작스런 뇌출혈로 사망하자, 그녀는 아이들의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다섯 남매를 자신 만의 교육 방침과 각별한 사랑으로 키웠다. 그 자신이 프랑스미술전에서 수상한 화가이자 작가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인생과 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그녀는 그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 남긴 편지의 수신자이기도 했다.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이후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던 마리는 마지막까지 차분한 어머니의 모습을 유지하다, 1년 후 자신에게 전해진 그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서야 오열을 터뜨렸다. 그리고 십년의 세월이 흐른 1955년, 그녀는 이 마지막 편지를 포함, 생텍쥐페리가 평생 동안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가장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기록들
우리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등을 통해 알게 된 극한의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숭고함을 노래했던 작가, 《어린 왕자》를 통해 알게 된 놀랍도록 섬세하고 독창적인 ‘작가’ 생텍쥐페리이다. 더 나아가 언제나 창공에서만 진정한 자유를 느꼈던 고독한 비행사이자 세상을 잠식한 불의와 의미 없는 전쟁에 맞서 싸웠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편지들 속의 생텍쥐페리는 주말 외출 때 쓰고 나갈 새 모자를 사고 싶어 어머니를 조르기도 하고, 수학 시험 성적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며, 우연한 자리에서 본 또래 아가씨들에게 느낀 두근거림을 농담에 섞어 고백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언제나 마음에 품고는 있지만 말로는 하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위로 받기를 원하는 등 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어리기만 한 아들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기에 더욱 진솔하고, 언제나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주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이기에 더욱 천진난만한, 이 편지들은 어린 소년이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마냥 사랑받던 자식이 어느새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가는 과정, 행복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부딪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변모되고, 마침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를 의식 있는 인간으로 살게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담겨 있는 성장 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왕자》 속 장미의 모델이었던 아내 콘수엘로 순신에 대한 애정, 어린 왕자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는 데 영감을 주었던 동생 프랑수아의 죽음 등 작가 생텍쥐페리에게 커다란 흔적을 남긴 사건들도 엿볼 수 있다.
모든 이들의 ‘어린 왕자’
이 책의 서문에서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아들이 작가이자 투쟁가, 성인이기 전에 한없이 다정한 인물이었으며, 그것이 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곳곳에 배어 있는 앙투안의 애정은 이 특별한 모자 사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랑 받을 귄리를 가진 모든 인간들을 향한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정신적 유대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했던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이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는 벌레를 뢺면 밟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서 다녔습니다.
산비둘기를 길들인다고 전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내렸지요.
사막에서는 영양들을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무어인들을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침묵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는 계속해서 인간을 길들이고 있습니다.
“길을 들인다는 것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묻는다.
그러면 여우가 대답한다. “서로에게 관계가 생긴다는 거지.”
- 어머니 마리 드 생텍쥐페리의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