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남자들이여, 국가를 위하여 아이를 낳아라!”
개인 위에 드리운 국가라는 거대한 그림자
근미래 21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의 전반에는 디스토피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환경오염, 기후변화, 식량 위기, 핵 문제, 성매매 문제, 질병과 팬데믹, 인구 감소,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더욱 심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개인에 대한 억압과 극우주의, 전체주의 등이 그것이다. 하나같이 무겁고 어려운 주제들이지만, 『징산제』는 어느 것 하나 회피하지 않으며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생각하라.’
책의 표지에 새겨진 “남자들이여, 국가를 위하여 아이를 낳아라!”라는 문구를 통하여 볼 수 있듯이, 남성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의 성전환을 의무화하고 출산을 요구할 때에 그 의도는 철저히 ‘국가의 존속’을 위함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는 전혀 작동하지 못한다. 징산제가 개인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고려 요소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징산제』가 그리는 국가는 위기 시에 언제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국가이다. ‘국민에게 당연으로 포장한 의무를 들이미는 국가’라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어쩌면 『징산제』는 불편함을, 나아가 불쾌감까지도 줄 수 있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수단으로 삼는 한편,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에서는 언제든, 누구든 희생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자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징산제』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하는 한편, 개인이 오롯이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막는 모든 제도와 폭력, 권력 구조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세상이 ‘비정상’이라 부를
이상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희망
작중 어느 인물은 노년에 접어든 나이에 뒤늦게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에 눈뜬다. 또 다른 인물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성욕을 느끼는 나르시시즘적인 ‘이상 성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징산제』는 다소 혼란스럽고 거부감이 드는 작품일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이 다양한 젠더 퀴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반의 기준으로 볼 때 이들은 모두 ‘변태’요, ‘비정상’이요, ‘루저’들이지만, 단순히 보편의 상식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구나 어느 상황과 위치에 놓여 있든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징산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희망의 하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곁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믿어주는 존재, 지지해주는 사람 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이웃일 수도,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징산제』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꿈꾸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공존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갈망한다.
『징산제』의 세계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가 곧 삶의 방식 그 자체”가 된다. 엉망이 된 세상에서도 우리가 서로의 곁에 존재하는 한 희망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징산제』가 우리에게 전하는 또 다른 희망이다.
줄거리
1장. 쇼마
소멸해 가는 농촌 마을에 살아가는 쇼마. 대대로 농부였던 조상들처럼 그 또한 평생 농부로 살아갈 것이다. 나고 자란 이 땅을 떠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어진 현실 바깥의 삶이. 때마침 시행되는 징산제는 쇼마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볼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쇼마의 가슴 속에 푸른빛 예감이 차 오른다.
2장. 하루토
징산제 소집 명령을 받았을 때 일류 엘리트 관료 하루토의 생각은 하나였다. ‘최고로 우수한 아이를 낳아서 돌아오겠다.’ 그런데 뜻밖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노숙자, 스트리트 갱 출신의 못생기고 인기 없는 산역 남자들, 한마디로 삼류 패배자들.
3장. 타케루
징산제가 싫고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녀석을 도왔을 뿐이다. 추운 겨울 돈을 구하며 애걸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타케루를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이것이 사람을 믿고 선의를 베푼 대가라면, 타케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4장. 기미유키
징산제에 응하면 돈을 많이 준다고 했다. 그 돈으로 집안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번쯤 여자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때 기미유키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여자가 된다는 일’이 자신의 아내 사쿠라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될지.
5장. 이즈미
징산제에 응한 후 성형수술을 받아 조각같이 완벽한 미녀가 된 이즈미에게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두렵고 어렵다는 것.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상처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즈미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