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좋은 양식, 옛이야기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꿈이 깃들어 있다
나를 일깨워 주고 일으켜 준 이야기, 내 삶의 이야기
오랜 세월 전해지는 이야기인 설화는 일반적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설화를 연구하는 저자는 오랜 세월을 이어온 전설들에는 세상의 큰 비밀들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겉보기로는 알 수 없는 원형적인 옛이야기의 속살을 찾아가는 일에 몰두하며 빠져든다. 속살 깊은 곳의 원형적인 의미 요소를 찾아내는 어려운 일. 저자는 옛이야기의 껍질을 벗겨서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운명적인 과업이라고 여긴다.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은 이야기에 깃든 속살을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에 깃든 재미와 의미에 어떻게 접속하게 됐는지를 저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업이다. 저자의 삶을 크고 작게 흔들어 놓은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는 소중한 깨달음과 함께 저자를 일깨우고 이끌어 준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풀어낸 옛이야기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생명력을 지닌다.
‘나를 일깨워 주고 일으켜 준 이야기들! 일컬어 나의 삶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전하며 옛이야기가 최고의 문학이자 최고의 철학임을 설명한다. 저자의 해석으로 새로운 속살과 만나는 경험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놀라움을 동반한 깨우침으로 마음을 흔드는 옛이야기의 힘을 깨닫게 한다.
고갯마루의 길, 장자의 며느리가 나의 손을 잡아 줄 것이다
옛이야기에 관한 여정은 떠나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길 떠나는 이는 장자의 며느리. 어떠어떠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중에서도 가장 흔한 이야기가 ‘장자못 전설’이다. 시주를 청하는 스님을 내쫒는 장자 몰래 쌀을 퍼서 스님에게 시주를 드리며 사죄하자 “지금 바로 길을 떠나 산마루를 넘되, 어떤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뜻 모를 말을 들은 며느리. 고갯길 산마루를 넘어서려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요란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결국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베풀 줄 몰랐던 인색한 사람이 하늘의 징벌을 받아서 쫄딱 망했다는 서사는 타인과 어울려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교훈을 준다. 여기서 저자는 장자의 서사는 이 전설의 일부일 뿐이며 이 전설 속 또 하나의 서사, 며느리의 얽힌 화두에 초점을 맞춘다.
‘며느리가 돌이 된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스님이 며느리에게 내린 금기의 해석은 일반적으로 신의 명령으로 이해된다.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이면서 돌아보라는 유혹이 기획된 하나의 시험. 하지만 저자는 신이 그리한 것이 아니라는 또 다른 해석을 펼친다. 지난 삶을 떨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고빗길에서 그 고갯마루를 넘지 못하고 뒤를 향함으로써 과거적 삶의 함정에 발목을 붙잡혀 쓰러진 것. 그 자리에 수장된 것은 누구의 강제도 아닌 스스로의 업보라고 단언한다. 저 한 편의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삶을 떨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곧 죽음과 같다는 것. 나아가지 못하면 다시 돌아갈 곳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천둥 같은 울림임을 전한다.
아기장수 설화, 우리 안의 비겁을 꿰뚫는 냉정한 성찰의 서사
우리나라의 여러 설화 가운데 가장 많은 각편이 채록 보고된 ‘아기장수 설화’는 신이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 의하여 또는 어머니 탓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늘의 신탁을 받고 태어난 존재가 억울한 죽음으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결말로 끝나는 이 비극적인 전설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전승해 온 것일까.
저자는 아기장수가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이한 능력에 주목하면서 이 설화의 좌절은 ‘가능한 성공’으로 이어져 현실을 향해 열려 있음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미래의 성공’을 말하기 위해 ‘과거의 실패’를 말한다는 것이 저자가 전하는 아기장수 설화의 비밀이다. 아기장수를 지켜 주지 못한 나약한 패배주의 때문에 세상을 바꿀 기회가 날아가고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또 하나의 속살. 그리고 자식을 죽인 부모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표상이며, 궁극적으로 ‘만약 네가 아기장수의 부모가 된다면 너는 어찌하겠느냐?’를 묻는 질문과 대면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우리 안의 비겁을 꿰뚫는 냉정한 성찰의 서사, 그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키워 나가고자 하는 다짐의 서사라는 것이 아기장수 설화가 의미하는 최종적인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