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과학자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데이터도 없고, 재현 가능한 실험도 없는 이 이야기가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학문의 세계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경험담은 증거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기로 했다. 왜냐하면 소년이 내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저씨, 증명할 수 없어도 진실인 것들이 있어요. 해가 아름답다는 것, 꽃이 향기롭다는 것, 누군가가 그리워진다는 것. 이것들은 방정식으로 쓸 수 없어도 분명히 존재해요.”
--- p.11
그런데 소년이 먼저 말했다. “아저씨들은 항상 어딘가로 가려고만 하네요. 지금 있는 곳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내 금잔화는 가시가 네 개뿐이라서 내가 지켜 주지 않으면 안 돼요. 하지만 지구에는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동물도 있잖아요. 그걸 두고 떠나려는 건, 조금 무책임한 것 같기도 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의당 맞는 말이어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 p.36
“아저씨, 저 불꽃이 아름다워요. 마찰이 빛이 되는 거잖아요. 부딪히는 것들이 꼭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소년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지구를 떠나기 전의 나는 마찰을 두려워했다. 논쟁, 감정,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하지만 화성에서 이 소년을 만난 것도, 지금 이 우주선 안에서 나누는 이 이야기들도, 모두 예측하지 못했던 마찰이었다. 그리고 그 마찰들이 지금 내 안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 p.54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하늘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면 되겠네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어, 오늘도 하늘이 있네!’ 하고 신기하게 여기면 되는 거잖아요.” 나는 그 말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신경과학적으로 말하면, 뇌는 익숙한 자극에는 반응을 줄인다. 새로운 것에는 집중하지만 반복되는 것은 배경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보는 하늘을, 날마다 숨 쉬는 공기를, 날마다 만나는 사람을 점점 보지 못하게 된다. 소년이 제안한 방법은 그 익숙함을 거꾸로 뒤집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매번 새롭게.
---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