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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6
나는 태어났다 13
가출의 장소들 20
낙하산 강하 39
클레버 크롬 53
모리스 나도에게 보낸 편지 56
가을의 뇨키 혹은 나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75
꿈과 텍스트 84
기억의 작업 89
‘엘리스섬’ 프로젝트 설명 106
어쨌든 죽기 전에 해야만
할 것 같은 몇 가지 115
옮긴이의 말 123
미주 135
수록 지면 151
저자 소개
저자 : 조르주 페렉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페렉의 부모는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40년 전사했고, 어머니는 1943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 시절 겪은 부모와의 이별, 특히 무덤조차 없는 어머니의 죽음은 페렉의 삶과 글쓰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고등학생 때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페렉은 서평을 기고하며 습작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여러 제목과 형태를 거쳐 첫 장편소설 『용병대장』을 완성했지만, 이 작품은 출간을 거절당했다. 이후 페렉은 1965년 『사물들』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1967년에는 레이몽 크노가 주도한 문학 실험 그룹 ‘울리포(Oulipo, 잠재적 문학 실험실)’에 가입하여 ‘형식적 제약을 따르는 글쓰기’라는 특유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작가 스스로 ‘자전적인 요소’와 ‘형식적 제약’이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의 토대를 이룬다고 밝힌 바 있다.
1978년 출간한 『인생 사용법』으로 메디치상을 수상하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나, 1982년 45세의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 동안 십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잠자는 남자』처럼 자신의 작품을 직접 영화로 만들거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며 전방위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작가 사후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모아 여러 편의 유작이 출간되었고, 『나는 태어났다』 역시 그렇게 빛을 본 작품 중 하나이다. 한편 페렉이 사라졌다고 믿었던 『용병대장』의 타자 원고는 1990년대 초 발견되었고, 작가 사후 30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 프랑스 쇠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사물들』, 『W 혹은 유년의 기억』, 『인생 사용법』 등이 있다.

역자 : 윤석헌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문학이 좋아 출판사까지 냈다. 다양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아니 에르노의 『사건』, 『젊은 남자』,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 『고마운 마음』, 조르주 페렉의 『나는 태어났다』,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 파트릭 모디아노의 『기억으로 가는 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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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조르주 페렉의『나는 태어났다』가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의 번역을 처음부터 다시 살피며 미흡했던 부분을 다듬고, 독자들이 페렉의 삶과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역주를 보강했다. 페렉의 자전적 글쓰기를 조금 더 정확하게 전하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검토했다.

『나는 태어났다』는 페렉 사후에 ‘자전적 글쓰기’라는 주제 아래 엮인 책이다. 메모, 단편, 연설, 비평, 편지, 자화상, 신문 기사, 인터뷰, 서평, 라디오 방송 원고 등 서로 다른 성격의 글들이 한 권에 모여 있다. 이 다양한 글들은 페렉에게 자전적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준다. 그에게 자서전은 삶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기억과 망각을 오가는 작업이었고, 정체성을 탐색하는 방식이었으며, 말할 수 없는 것의 주변을 맴도는 우회적이고 파편적인 글쓰기였다.

페렉은 자신을 각기 다른 네 개의 밭을 가는 농부에 비유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사회학적’, ‘자전적’, ‘유희적’, ‘소설적’ 글쓰기로 나눈 바 있다. 물론 그는 이러한 분류가 자의적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구분은 페렉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특히 ‘자전적 요소’와 ‘제약contrainte’은 그의 글쓰기 전체를 떠받치는 두 축이다. 페렉의 작품에서 형식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말하기 어려운 것을 우회해서 말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는 태어났다』에 실린 글들은 바로 그 자전적 글쓰기의 핵심으로 독자를 이끈다. 「나는 태어났다」, 「모리스 나도에게 보내는 편지」, 「기억의 작업」 등은 페렉의 독특한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W 또는 유년의 기억』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페렉의 작품에서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실과 공백이 어떻게 글쓰기의 형식으로 바뀌는지, 그리고 한 작가가 자신의 기원을 확인할 수 없음에도 어떻게 끈질기게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려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나는 태어났다』는 조르주 페렉의 글쓰기에 이미 매료된 독자들에게는 그의 작품 세계를 다시 읽는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고, 아직 페렉을 깊이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그 독창적인 문학 세계로 들어가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책 속에서

첫 문장
나는 1936년 3월 7일 태어났다.

문제는 ‘왜 계속하나?’도 아니고, ‘왜 나는 계속할 수 없나?’도 아니라, ‘어떻게 계속하나?’이다(세 번째 질문을 통해서 나는 앞의 질문들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p.15

그는 그 사람에게 말을 할까, 설명해볼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온종일 이 순간을 기다려왔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데리러 와 주기를.
---p.25

20년이 지나, 그가 떠올려보려 했을 때(20년이 지나, 내가 떠올려보려 했을 때),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세세한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p.37

바로 그 순간 선택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정확하게 삶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제게는 거의 낯선 것들을 신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바로 그때 알게 됩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내 상황을 완전하게 책임져야만 하는 순간임을 알게 되지요.
---p.45

우리 앞에는 허공이 있고, 단번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단번에 두려움을 거부해야 하고, 단번에 포기하기를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러고 나서 감행해야 합니다
---pp.49-50

이 책은 헛된 추적의 흔적이고, 그런 추적에는 진실을 찾으려는 글쓰기의 과정이 은연중에 비친다. 게임의 규칙은 아주 단순하지만, 실제 시합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더 복잡하다.
---p.55

그 작업을 통해 장소들의 나이 듦과 제 글쓰기의 나이 듦, 제 추억의 나이 듦을 동시에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되찾은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과 뒤섞이는 셈이죠. 시간은 이 프로젝트에 달라붙어, 그 구조와 제약을 이룹니다. 책은 이제 지나간 시간의 복원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pp.66-67

나는 지나온 길을 따져볼 수 있나? 언젠가 내가 실제로 목표를 세우기라도 했다면, 나는 몇 가지를 완수했는가? 지금 나는 예전에 내가 되고 싶어 했던 나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내 열망에 부응하는지 묻지는 않겠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순간, 더 앞으로 나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기에.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서 끌어가는 삶은 내가 원했던 것에, 내가 기대했던 것에 부합하는가?
---p.79

나는 (글 쓰는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것을 제외하고) 글쓰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것은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다른 것을 배우고 싶지도 않았다.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쓰기 위해서 산다.
---p.80

글쓰기는 나를 보호한다. 내 단어들과 문장들, 능숙하게 연결된 문단들, 교묘하게 계획된 장章들로 쌓아 올린 성벽 아래서 나는 앞으로나아간다. 나는 재간이 부족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보호받을 필요가 있나? 그런데 만일 방패가 굴레가 된다면?
---pp.82-83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경험은 의도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일을 거치며 유일한 글쓰기의 경험이 되었다. 그러니까 새롭게 드러난 상징도, 의미가 넘쳐나는 것도, 진실의 조명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텍스트들의 아주 깊은 밑바탕에 지나온 길이나 더듬거렸던 탐색이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오히려 말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현기증을 느꼈고, 저절로 생겨나는 듯한 텍스트에 매혹되었다.
---p.86

사실 제가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이 어린 시절이 제게 되돌아오는 방식입니다. 항상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즉 어떤 흔적처럼 글쓰기 속에 한순간 고정될 수는 있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어떤 것과 관련해서 이루어집니다. 현재가 어떻게 개입하는지는 모르겠어요.
---pp.102-103

저는 일체주의라 부르고 싶은 어떤 것이죠.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 이름만큼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문학 운동이지요. 자기 자신에서 출발해 타인에게로 나아가는 움직임 말입니다. 저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투영이자, 동시에 호소인 거죠!
---pp.104-105

내게 엘리스섬은 바로 유배의 장소, 말하자면 장소가 부재하는 장소, 흩어지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장소는 나와 관련이 있고, 나를 매혹하고, 나를 끌어들이고, 내게 질문한다
---p.110

이 사소한 불일치에, 미미하지만 집요하고, 은밀하며, 피할 수 없는 감정이 달라붙는다. 내 자신의 어떤 부분에 대해 어딘가 이방인이라는 감정, 즉 ‘다르다’는 감정인데,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기보다 ‘내 종족’과 훨씬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령 나는 내 부모가 말했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부모님이 갖고 있었을 어떤 추억도 공유할 수 없다. 그들의 것이었던 무언가, 그들을 그들로 존재하게 했던 무언가, 즉 그들의 역사, 문화, 신앙, 희망이 내게 전수되지 않았다.
---p.112

내가 엘리스섬에서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는 이미지, 극단적인 단절의 자각이다. 내가 질문하고, 문제 삼고,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비장소非場所, 이 부재, 모든 흔적과 말, 타자의 추구가 토대를 두고 있는 이 균열 속에 나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p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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